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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미 Jul 01. 2024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인내

먹을 것이라곤 장독에 묵은 간장과 누룽지밖에 없는 날들이 길어졌습니다. 엄마는 역전 근처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근처 여관 빨래도 맡았습니다. 솜씨가 야무지다는 소문을 타고 주변에선 일감이 더 들어왔습니다.


음식을 어떻게 하셨는지 알 방법은 없습니다. 더듬어 보면 어린 내 입에 꼭 맞았던 건 확실하지만 워낙 돈이 귀한 집이라 고작 김치와 된장찌개, 생선 튀김 같은 것들이 고작이었거든요. 특별한 요리 비법이 필요한 것이 아닌 데다 요리하는 걸 본 적은 없었습니다. 엄마가 해 둔 음식을 먹었을 뿐이죠. 하지만 엄마 빨래 솜씨는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체격도 좋고 힘도 있고 꼼꼼했던 엄마는 집도 윤이 나게 청소하는 편이고 빨래도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희고 깨끗하게 했습니다. 탈수기에서 꺼낸 빨래를 바로 빨랫줄에 걸지 않았습니다. 빨래를 들고 거실에 앉아 하나하나 마치 마른 옷처럼 개킵니다.


“엄마 널어야지?”

“널기 전에 한번 개서 발로 꼭꼭 밟은 후 털어서 널어 말리면 다리미질한 것처럼 주름이 없어지거든.”


차가운 빨래를 양말이며 속옷까지 손으로 탁탁 두드려 접어 그 위에 깨끗한 수건을 덮어 발로 한참을 밟았습니다. 다 밟은 옷은 손으로 힘 있게 털어서 빨랫줄에 널었고요. 엄마가 한 빨래는 희고 깨끗한 데다 주름도 없이 산뜻했으니 솜씨 좋다고 소문이 날만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수고해서 번 돈은 모았습니다. 헤프게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때를 회상하는 형제들은 아버지는 통이 크고 씀씀이가 헤펐지만 엄마는 인색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열심히 일해 모은 돈은 집과 전답을 살 만큼 모였고 소도 한 마리 샀습니다. 집은 구했지만 작았고 외양간이 없어 소를 키울 형편이 안 됐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ㅂ리 작은 아버지 집 외양간이 있으니 거기 맡겼습니다. 소는 잘 자랐고 곧 장에 내다 팔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는 장에 나가기 하루 전날 죽어버렸습니다. 엄마는 두고두고 이 일을 억울해했습니다.


그런다고 무너질 사람이 아닌 엄마는 다시 악착같이 일했습니다. 시내 목 좋은 곳에 가게를 얻을 만큼 돈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고를 쳤습니다. 그 돈을 몽땅 동생들에게 나누어주었거든요. 아버지가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냥 줬을 리는 없을 거야’ 생각하지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엄마가 고생해서 번 돈이니까요. 엄마는 울었습니다. 자식들 먹을 것도 맘껏 못 먹이고 번 돈이 고스란히 시동생들에게 갔으니까요. 억울해서 분통이 터졌습니다.   

  

엄마는 오랜 시간 친척집을 전전하며 ‘내 돈 갚으라’ 며 싸우고 다녔습니다. 집안이 편할 날이 없고 다툼이 많아지자 할머니는 작은집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돈을 받겠다고 친척들 집으로 다녔던 엄마.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한 번 다툼이 시작되면 소 얘기부터 가게 전세금, 혼외자에 대한 양육비와 그 외 재산에 관련된 문제들까지 와르르 쏟아져 나왔습니다.


고모도 꼿꼿이 서서 물러섬 없이 오빠가 거저 쓰라고 준 돈을 왜 갚냐며 대들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 손을 거쳐 나간 돈은 누구에게 갔든지 한 푼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엄마는 값나가는 물건이 있으면 뺏어왔습니다. 장롱부터 전집류 책까지 가져올 수 있는 건 다 가져왔습니다.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엄마의 노력은 아버지 품에서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데 엄마의 인내는 열매를 맺지 못했죠. 인내가 더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시절엔 여자에게 더 많은 희생과 인내를 요구했으니까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을 테고요.


집안 장남은 돈을 벌고 희생해 동생들을 돌보며 시집 장가도 보내고 살림 밑천도 장만해 주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였으니까요. 게다가 아버지는 혼외자도 있고 잊지 못한 첫사랑을 찾아가는지 자식을 찾아 가는지 알 수 없는 여정을 한 번씩 떠나는 사람이니까요. 아버지 형제들도 아버지를 돕고 나름 희생했으며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엄마는 그렇게 사는 게 힘겨웠습니다. 장녀로 태어나 꿈을 접고 장남에게 시집와 희생만 하면서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게요.     


 “그때 서울에 가수 된다고 간다 할 때 아버지가 보내줬더라면, 돈만 있었더라면. 혼자 살았더라면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간혹 신세 한탄을 했습니다. 넋두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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