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
얼마나 잤을까? 시계를 보니 벌써 반나절이 지나 있었다. 휴대폰에서는 착신 부재 소리가 계속 울려댔다. 수현은 본인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화장대로 다가갔다. 거울 하단부터 천천히 얼굴을 비춰보았다. 머리카락, 이마, 눈썹이 보이기 시작했고 조금만 더 올려다 보면 곧 깊은 눈망울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수현은 눈을 질근감고 얼굴이 다 들어가 보일 수 있도록 거울 전면에 앉았다.
그리고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면서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
‘제발, 제발 원래대로...’ 수현은 화장대 앞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망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우선, 걱정하고 있을 효주에게 연락이라도 해둬야지'
수현은 효주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효주야. 오늘 몸이 너무 안좋아서 몇일 병가를 내야할 것 같아. 그리고 혹시 퇴근하고 집에 좀 올 수 있어?>
<몸이 많이 안좋아? 회사 난리난거 알지. 천하의 이수현이 승진 첫 날부터 결근이라니... 내가 퇴근하고 약 좀 사가지고 갈게>, <응 고마워>
문자를 주고 받은 수현은 그동안 만나왔던 여럿 남자들을 떠올렸다.
누가 있을까? 어떤 남자가 내 모습을 보고 좋아 할 수 있을까.
‘아! 안민재! 그 사람은 지금 나한테 진심이니까. 별로긴한데 어쩔 도리가 없잖아?’
‘남현우 대표? 아니야.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상황이고, 이런 얼굴로 만날 수 없지'
수현은 휴대폰에 저장된 남자들의 전화번호를 뒤져 보았다.
늦은 오후, 효주는 퇴근 후 약국에 들렸다.
”어서 오세요“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보이는 여성의 약사가 효주에게 인사했다.
”몸살약 좀 주시겠어요? 삼십대 여자입니다“
”식 후 30분에 두알씩 드시면 됩니다. 많이 아프실겁니다“
”몸살이니까 아프겠죠?“
효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약사가 이상했다.
”수...수고하세요“
수현은 이상황에도 배가 고픈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배달앱을 통해 효주와 같이 먹을 초밥을 주문하고 효주가 오기를 기다렸다.
곧, 현관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효주가 도착한 모양이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효주가 나를 알아볼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을 열었고 그 사이로 효주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서 와"수현은 효주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수현과 마주한 효주는 그대로 멈춰 섰다.
수현의 옷과 악세서리를 하고 있는 낯선 여자.
“누구... 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