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야
수현은 팀원들과 마지막 회식이기에 오늘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절친 효주도 함께했다. 곧 비서가 필요할 예정이라, 효주를 추천할 생각이었다.
"자~ 주목하시죠! 오늘은 팀회식이기도 하고, 우리 부서에 기쁜 소식이 있죠?"
오대리가 분위기를 띄우며 외쳤다.
"이부장님... 아니, 전무님의 한 말씀 있겠습니다!"
수현이 피식 웃으며 마이크를 넘겨 받았다.
"식사 전에 이런 고리타분한 인사말은 딱 질색인데..."
팀원들이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 땐, 스스로를 한 번 살펴보세요."
듣다 못한 효주가 수현을 끌어앉고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 앞에 있는 술잔을 모두 들어주세요!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일도 아자아자! 건배!"
환호성과 함께 잔이 부딪쳤다.
효주는 수현에게 슬쩍 속삭였다.
"너! 승진했다고 아주 어깨뽕이 하늘을 찌르는 거 알지?"
"너는 발이 아프다고 하이힐 포기하니? 엄지발가락이 휘어져야 내 것이 되는 거야."
수현이 능청스럽게 받아치려는 순간, 식당 문이 열리며 안민재가 꽃다발을 들고 들어왔다.
"안민재! 저 인간, 여길 어떻게 알고!"
수현은 곧장 효주를 흘겨봤다.
"너지? 니가 알려줬지?"
"아니, 계속 너랑 연락이 안 된다고 하길래... 회식한다고만 했는데..."
"그렇다고 여길 알려줘?"
"그걸 못 참고 왔네. 널 엄청 좋아하긴 하나 보다."
민재는 수현과 짧은 눈인사를 나눈 뒤 팀원들에게 환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민재라고 합니다."
웅성거리는 팀원들. 민재는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기 계신 아름다운 여성분의 지인인데요. 마침 근처에 있다가 얼굴도 볼 겸 들렀습니다. 괜찮으시죠? 오늘은 제가 계산할 테니 마음껏 드세요!"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보다 못한 수현이 민재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이것 보세요. 안.민.재 씨, 정말 이러실 거예요?"
"오늘은 효주 축하해주러 온 건데요?"
"왜요? 이제 하다하다 효주까지 들먹이시네."
"모르셨어요? 오늘 효주 생일인 거?"
수현은 아차 싶었다.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가 효주의 생일이었지. 그래서 오늘 회식 자리에 가도 되냐고 물어봤구나. 미안함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됐고! 나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왜 내 친구 생일을 그쪽이 챙기는데요!"
민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잊으셨나 본데... 우리 친구거든요."
"여자하고는 친구가 될 수 없다면서요! 사람이 말과 행동이 다르네 아주!"
수현은 효주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이수현 씨?"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현우 대표?)
그였다.
(하필 이 타이밍에...)
"아... 안녕하세요, 대표님."
수현은 황급히 인사했다. 현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민재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남자친구분? 안녕하세요. 남현우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중앙지검 안민재라고 합니다."
"그럼, 마저 이야기 나누세요."
너무도 고맙게도 효주가 눈치껏 현우를 회식 자리로 모셔갔다.
회식은 계속되었고, 2차, 3차...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얼마나 마셨을까.
수현은 너무 힘들었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그런지, 눈앞이 흐려지고 모든 것이 물미역처럼 출렁거렸다.
효주는 비틀거리는 수현을 택시에 태웠다.
"잘 가, 수현아."
창밖으로 밤거리를 바라보던 수현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침.
본인의 침대에서 눈을 뜨고 다시 하루의 루틴을 시작한다.
(어제 너무 마셨어.)
수현은 휴대폰을 거울 삼아 밤새 상했을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누구지? "
고개를 돌려보기도 하고 끄덕여보기도 했다.
본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너는 누구? 너무 못생겼는데? 설마~ 에이!"
"나? 이게 나라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건 꿈이었다. 꿈이어야 했다.
"어제 무슨일이 있었던거지?"
"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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