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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레드오션 투쟁기 (7)

6. 레드오션 시장의 2등 기업 정신

by 테서스


2등 기업. 2등 기업. 콩라인 타는 기업. 콩라인 타는 기업.

지난 편에서 ‘홍진호’를 잠시 언급했었는데, 홍진호가 명언 하나를 남겼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2등도 자주 하니까 사람들이 기억해 주시더라구요.”라는 명언을.


이 글을 쓰는 나를 포함하여, 우리 대부분은 1등기업에 다니지 않는다. 삼성 계열사도 삼성전자와 삼성후자가 나뉘는 나라에서, 대한민국 직장인 대부분은 2등 이하 기업에서 월급 받고 있다.


2등 기업의 자질은 생존(生存)이다. 영화 ‘광해’의 대사처럼, 훔치고 빼앗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새끼만은 살리겠다는 근성, 그 근성이 2등 기업을 살아 있게 한다. 좀비처럼 움직이게 한다.


2등 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 또한 ‘생존특화’에 몰빵해야 한다. 정상인 코스를 착착 밟아 27~28살에 대기업 신입사원이 되고 4년마다 착착 진급한 ‘1등 정규직’과 달리, 다들 밑바닥 근성 장착하고 단맛 쓴맛 다 견디며 오로지 살아남아 월급 받아내는 것에 특화되어야 한다.


1등이 될 필요는 없다.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블루오션을 개척할 필요도 없고, 엘리트 코스만 밟아 온 최우수 비즈니스맨일 필요도 없다. 레드오션에서 허덕이는 기업과 직원, 그 조합만으로 ‘2등’을 차지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이런 근성러쉬(Rush)만으로 승리할 수는 없겠지. 조금 구체적인 얘기를 해 보자.



1) 레드오션 시장의 이익률


레드오션 시장의 기업들. 이 기업들도 돈을 벌긴 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손실을 보더라도 직원들 월급 챙겨 줄 정도는 벌어야 하고, 그 일시적인 손실이 지나가면 다시 이익을 내야 한다. 0.1%라도 남겨야 한다. 그게 회사의 존재 이유니까.


물론, 많이 벌면 좋다. 계속 레드오션이었던 건설업이라도 경기 좋을 때에는 아파트 자체개발로 영업이익 30% 찍어 주는 회사들이 생겨났었다. 내가 중고신입 생활 하던 2010년은 완전 불경기였지만, 이후 경기 좋아졌을 때에는 그런 날도 있었다.


다만, 이렇게 ‘쨍~하고 해뜨는 날’은 그리 길지 않다. 레드오션의 회사들은 대부분 오랫동안 낮은 이익률에 만족하며 버텨야 한다. ‘올 한해 적자는 안 봤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연말상여 따윈 저 멀리 딴 나라 이야기로 흘려들어야 한다.


레드오션 시장 회사의 이익률. 얼마가 적정할까?



통상적인 레드오션 시장의 순이익률은 5%이하다. 건설업 같은 경우 당기순이익이 매출의 5%면 ‘매우 양호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파트 호경기 때 말고 불경기에 미분양 흑자부도 나는 상황 아니면 매년 5%만 남겨도 엄청 잘 되는 건설회사다.


소위 TOP5에 드는 대형건설사들, 매우 특수한 기술을 갖고 있는 전문건설사들 아닌 한 5% 남기기 어렵다. 대부분 건설사는 (2010년 기준으로) 1~2% 정도 이익률을 보였다.


영업이익률 2%. 1조 팔아서 200억 남긴다. 현금 1조가 있다면 그걸 예금해서 이자 300억은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주식 등에 투자했다가 성공했으면 400~500억 벌었을 수도 있다. 물가상승률 등을 생각하면 “이 돈 벌려고 기업하나?”라는 말이 나올 만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부채 레버리지”라는 숨겨진 요인이 있다.


대부분의 건설회사들은 자기 돈으로 건물 짓지 않는다. 다 은행 돈 빌려서 짓는다. 선분양이 대세인 아파트 공사도 따지고 보면 결국 집단중도금대출을 통해 은행 돈 빌리는 것이다.


대한민국 건설사 대부분은 돈 빌려서 건물 짓고 그걸로 돈 번다. 전통적으로 부채비율이 높았고, 이자 등 금융비용을 상당히 많이 지출했었다.


간단히 예를 들어 보자.


총자산 1조, 자본대비 부채비율 210%인 회사가 있고, 그 회사의 순이익률이 2%여서 200억이 남았다고 했을 때.

이 회사의 실제 자본은 총 자산의 1/3이 안되는 3300억이다. 즉, 이 회사는 1조를 가지고 200억을 번 게 아니라 3300억을 가지고 200억을 번 것이다.


결국 (매출 대비 수익률이 아닌) ‘자본 대비 수익률’은 6%다. 주식시세차익 등과 비교하려면, 자산이나 매출액을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순자본”을 기준으로 비교해야 할 것이다.


나머지 2/3부채에 대해 발생한 차입이자를 연 10%정도로 계산하면, 660억 정도가 이자로 나갔다는 계산이 된다. 만약 이 회사가 장기적으로 순이익을 다 자본에 편입시키고 있다면, 총자산 1조가 모두 자본으로 채워지는 시점에서 이 회사의 순이익은 860억, 즉 8.6%의 수익률을 보일 것이다.



전형적인 레드오션인 건설업에서, ‘부채에 대한 이자비용을 포함한 자본 대비 이익률’은 8~9%로 올라간다. 은행 돈 빌려서 짓는 게 기본인 산업에서 금융 쪽이 가져가는 마진이 5~6% 수준이라는 얘기다.


그리고, 이건 ‘시공’에만 국한했을 때 얘기다. 별도의 시행사가 있으면 시행사도 자기 이익을 남겨야 하고, 시행사가 데려온 분양대행사와 임대대행사도 돈 벌어 먹으며, 마지막에는 부동산중개사도 자기 몫을 챙긴다. 심지어 등기 해 주는 법무사도 대형 아파트단지 하나 따내면 몇억 번다.


레드오션 시장의 이익률. 이걸 ‘각각의 사업주체’로 보면 매우 낮아 보이지만, ‘사업주체를 전부 하나 합쳐서 보면 상당히 높아진다. 아파트 호경기가 아닌 상태에서도 모든 사업주체의 이익을 다 합쳐 보면 총 사업비 대비 15~20%는 남는다는 얘기다.


앞에서 얘기한 ‘영업이익률 30%의 건설사’.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무차입 경영을 표방하는 건설사들이 은행금융이익 / 시행사 이익 등을 모두 ‘시공이익’과 통합하여 1개 회사가 모두 얻어냈기 때문이다. 즉, 버는 돈을 나누지 않고 혼자 다 먹으면 꽤 많이 남는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혼자 다 처묵처묵 하지 않더라도, 레드오션 시장은 각 참가 주체들에게 기본적인 수익은 보장해 주는 편이다. 예측가능성이 매우 높고, 일단 기본적인 업무능력을 갖추면 그 예측 범위 내에서 최초 기대이익 전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레드오션. 오래된 시장이라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인간의 생활에 필수적이었거나 현재 필수적으로 된 사업영역이라는 뜻이다. 진입장벽이 낮고 이익률 또한 신시장에 비해 상당히 낮지만, 안정적인 소비층을 확보할 수 있고, R&D비용이나 인건비를 절감할 여지가 많다. 또, 가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어, 이익률이 그렇게 꼬라박지도 않는다.


삼성전자처럼 몇십조의 순이익을 남겨야만 사업하는 것은 아니다. 레드오션 시장 대부분의 수익률이 낮다고 해도, 그 수익률은 이미 몇십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은행예금수익이나 물가상승률보다 더 높게 형성된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적정수익률”이다.


애플이나 삼성전자가 내놓는 신제품은 사실상 독과점 상태이기 때문에 가격을 올려 마진을 30%이상 챙길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너희는 돈에 눈이 먼 양아치야!”라고 반발할 가능성을 항상 가지고 있다. 하지만, 레드오션 시장의 상품들은 이미 오랜 시간 사람들에게 팔리면서 나름 표준가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적정수익률을 유지하는 한 사람들이 가격에 대해 반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이 적정수익률 속에는 이미 “회사의 도산위험”이라는 인자가 포함되어 있는 상태여서, 망하지 않는 이상 안전자산보다는 조금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또한, 해당 사업분야의 경력자도 많고 상호간 경쟁으로 인건비도 얼마 안 들기 때문에, 미친 듯이 인재발굴할 필요도 없다. 어느 정도 규모에 이르게 되면 모집공고만 내도 알아서 사람들이 모여든다(2010년의 나도 이렇게 모여든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경영판단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 소위 “고생”이라 말할 수 있을 것들까지 모두 “비용”으로 본다면, 레드오션 시장은 나름 “최소비용으로 안정된 수익”을 내는 시장이다. 2% 이익률이라고 무시할 게 아니다. 그 2%만 고정적으로 남겨 줘도 1년에 몇백억 버는 거다.



물론, 계속 2%씩 남기는 것도 절대 쉽지 않다. 어느 시장이든 ‘경쟁’이라는 게 존재하고, 경쟁이 심할수록 가격은 내려간다.


레드오션은 이미 포화 상태기 때문에 갑자기 경쟁 강도가 확 높아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쟁이 없어지지도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늘 경쟁자를 생각해야 하며, 경쟁구도 속에서 ‘적절히 낮은 가격’을 생각해야 한다.


적절히 낮은 가격. 어디까지 낮출 수 있을까?



2) 레드오션 시장의 대전제 – 싸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레드오션이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시장이라는 것은, 가격과 품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시장이라는 것이고, 그것은 수익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 입장에서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즉, 조금만 더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판매한다면 매출을 바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반면, 품질에서 약간의 하자만 있어도 확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옴니아 판매처럼 비싸고 하자많은 물건을 팔고 나서 배째라 식의 전략, 블루오션에서 독과점 시장 방어전략으로 선회했을 때 내세울 수 있는 전략은, 레드오션에는 통하지 않는다.


경쟁업체보다 더 싸게, 그러면서 품질은 동등하거나 최소한 동등한 것으로 착각하도록. 이것이 레드오션에서 살아남는 정공법이다. 뭐, 얘기하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니지?

블루오션 신봉자들의 말들이 거의 다 책을 팔아먹고 인세를 받기 위한 구라 수준인 것과 별 차이도 없다. 근대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극도로 추상화된 근본 전제는 그것만으로는 별 소용이 없다. 뭐, 세상 모든 테마는 이렇게 시작하는 거니까, 실망할 필요도 없겠지?


간단한 테마로 정리하자.

“싸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여기서 약간 늘리면 이렇게 된다. “같지만 싸다. 그러므로 승리한다.”


2010년에 내가 있었던 B건설사 방식으로 정리하면, “원가절감만이 살길이다.”


그리고, 이 논리는 단순한 상품판매뿐만 아니라 인사관리와 협력업체 관리 등 법제도 일반과 경영 전반에 다 적용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레드오션 시장에서 일하는 우리들 모두에게도 적용된다. 대리 월급을 받으며 업무능력은 부장급 이상인 직원, 다른 식당보다 500원 싸면서 반찬과 맛은 대등한 식당, 인근 아파트와 거의 동일하면서도 평당 10만원 더 싼 아파트. 이 모두가 레드오션의 승자가 되는 법칙이다.


단, 문제는 이 간단한 논리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무조건 싸면 안되고 위에서 나온 대로 “중등품질과 착각할 수준”은 되야 한다.

그리고, 이 중등품질 자체가 레드오션 시장에서는 꽤 높게 형성된다. 레드오션은 오래된 만큼 법제도의 감시도 심하고,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에 따른 통제도 심하기 때문이다.


건설업을 예로 들면, 무조건 싸게 만들겠다고 협력업체 후려치기를 하다 보면 강행법규에 걸려 감방간다. 원가절감한다고 직원 월급 안주면 근기법으로 감방가고. 품질 동등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겠다고 철근 대신 대나무 넣으면 건물 무너져서 감방간다. 아니면 날림공사로 하자보수소송 붙어서 100억 날리거나, 관계기관에서 준공승인 거부해서 재시공과 지체상금으로 100억 날린다.


불법영역까지 안가더라도, 직원 월급 적게 주면 일 잘하는 직원부터 스카우트되서 나가버린다. 새로 오는 사람들도 무언가 하자있는 사람들, 남는 사람들은 장기적인 근무태만… 최저가입찰로 협력업체 데려오면 한달만에 부도나서 결국 준공일도 못 지키고 지체상금 물린다. 개중에는 처음부터 부도낼 작정하고 선급금 받아 도망가려는 업체도 있다.


결국 이런 문제로 인해, 비용 줄이려고 지나치게 발악하다 보면 품질 동등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의외의 비용이 발생해서, 결국 비용이 경쟁업체보다 더 든다.

모든 영역에서 다 비용을 줄일 수는 없고, 품질동등 착각전술을 모든 상품에 다 적용할 수도 없다. 결국 현행법 테두리 내에서 얼마나 “덜 걸리면서”(어기지 않는 게 아니라, 어기되 최소한의 제재만 받고 최대한 빠져나가면서) 원가절감을 하고 대등한 수준의 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추상적인 얘기만 던져 놓고 끝낸다면, 블루오션 신봉자들의 “믿습니까”와 다를 바 없겠지? 세부적인 각론 얘기를 좀 하자. 물론, 각론에도 “이 사업을 하시면 필히 성공합니다” 따위 얘기는 없다. 그런게 있으면 내가 벌써 창업해서 돈 긁어모으고 있지, 회사 다니면서 이런 글 쓰고 있겠나?


각론은 챕터 바꿔서 다음 시간에 써야겠다. 이번 챕터는 좀 추상적인 얘기가 많았는데, 다음에는 B건설회사의 실제 사례를 놓고 “중등품질과 착각할 수준”으로 “같지만 싸다. 그러므로 승리한다”를 구현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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