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레드오션 제2계명 : 임금전략 - 일단은 저임금 (상)
‘기본’에 대해 언급했으니,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로 가 보자. ‘돈 문제’다.
뭐, 회사원 입장에서 돈(임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건 당연한 거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다만, 이게 ‘레드오션’인 이상 무조건 많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사업자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본 장(章)에서는 약간 사업자 입장에서 서술하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오너 되는 건 아니지만, 일단 월급 받는 사람도 월급 주는 쪽을 약간은 이해하고 있어야 하잖아?
다들 예상하시다시피, 첫 시작은 ‘저임금’부터 간다. 박터지게 경쟁하는 레드오션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거겠지.
1) 레드오션 후발주자는 일단 추종전략(저임금전략)
인사노무관리 관련서적에서는 임금전략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선도/동행/추종 전략이 그것이다.
뭐, 용어만 보면 무슨 내용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선도전략이 돈을 많이 주는 것이고, 동행전략은 대충 남들만큼 주는 것, 추종전략은 남들보다 적게 주는 것이다.
타이틀에서 이미 깔고 들어왔듯이, 오너와 회사 입장에서 1차적으로 좋게 느껴지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추종전략이다. 인건비든 뭐든 한 푼이라도 적게 주면 회사는 그만큼 남는 거니까.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직원들 월급을 적게 줬을 때 나타나는 역효과는 내가 여기서 줄줄이 예를 들지 않아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일단,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게 쥐꼬리 연봉에 익숙한 서민들이고, 우리 주위에 그런 친구들을 무수하게 깔아 놓고 사니까.
당연히 우리를 포함한 이들 대부분이 회사에 불만이 많다. “일은 더럽게 많이 시키면서 돈은 쥐똥만큼 주냐”는 말은,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딜 가나 다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직원 불만도 불만이지만, 월급이 적으면 유능하다고 자부하는 직원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그냥 혼자 유능하다고 착각하는 사람이야 보내도 상관없지만, 핵심인력으로 분류해 놓고 평소 일도 엄청 많이 하던 성실한 직원이 어느 날 사표를 던지고 다른 회사로 가버리면 정말 갑갑해진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선도전략이 좋은 것인가? 그건 또 아니다.
무엇보다도, 선도전략은 돈이 많이 든다. 초과이윤이 화수분으로 솟아나는 블루오션 개척자가 아닌 이상, 인건비 절감은 순이익과 직결되는 과제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레드오션은 순이익 자체가 상당히 적은 곳이라서, 조금만 줄어들고 늘어나도 크게 차이가 난다. 지금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가 주제인 이상, 선도전략은 아무래도 뒤로 밀릴 수 밖에 없다.
말 난 김에 (잠시 옆길로 새서) 선도전략 주장하는 분을 좀 디스해 보자.
예전에 문국현 씨(유한킴벌리 대표이사였다가 정치인으로 변신하신 분)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대통령후보 TV토론에서 근로자들의 생활수준 문제와 적정임금이 논점이 되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건비를 높이면 기업이 망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건비가 전체 매출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통상 5%미만인데, 이 5% 줄여 봐야 얼마나 줄어들겠습니까? 인건비 줄이는 걸로는 원가 1% 절감도 안됩니다. 결국 기업은 판매를 촉진하고 생산공정을 개선해서 이익을 늘려야 하는 것이지, 인건비 조금 줄여서 돈 벌겠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런 기업에는 미래가 없지 않을까요?”
전문경영인으로서의 경력과 노하우, 지식수준으로 따지면 나는 문국현 씨에게 감히 비교할 레벨이 못 된다. 게다가, 이 TV토론 당시 나는 직장인도 아닌 백수 상태였다.
그렇지만, 그 때 나는 문국현 씨가 대통령 되고 싶어서 “오버”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탁 까놓고 얘기하면, “편한데서 직장생활하더니 세상 다 만만해 보이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문국현 씨가 전문경영인으로 성장하고 이끌어 왔던 유한킴벌리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기업의 표상이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직원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고, 사회에 많은 것을 환원하며, 지구의 환경과 미래에도 꽤 큰 기여를 하는 회사. 그 이미지가 회사의 브랜드 가치가 되고, 그에 따라 우호적인 소비자와 충성도 높은 직원을 확보하며, 장기적으로 더욱 더 발전해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사회환원과 임금 선도전략이 가져오는 선순환의 모델 같은 회사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서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중견∙중소기업에게 이건 단지 “희망고문”일 뿐이다. 수능 전국 1등이 항상 말하는, “교과서만 읽고 예습복습 철저히 했어요.” 와 뭐가 다른가? 처음부터 학습능력 관련한 와꾸가 다른데, 수능 전국 1등의 공부방법론이 일반 학생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게다가, 기업 간의 경쟁이라고 하는 것은 시험처럼 시간의 평등이 주어지는 싸움도 아니고, 대한민국 개발기에 성장한 회사와 현재의 회사는 경쟁환경 자체가 다르다. 유한킴벌리 경영자들의 노력과 전문성은 높게 평가하지만, 그들이 기업을 시작할 당시의 대한민국과 오늘날 후발주자들이 경쟁해야 하는 대한민국은 경쟁수준으로 볼 때 진짜 하늘과 땅 차이다.
개발도상국의 초 저임금으로 사람 고용해서 물건 찍어내기만 하면 수출되던 시절의 기업과, 일반 근로자들이 자가용을 굴릴 만한 월급을 받아도 부족한 시절의 기업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나? 불평할 생각은 없지만, 경쟁이 거의 없던 시절에 공룡으로 성장한 다음에 이제 막 피터지게 경쟁하는 수많은 햇병아리들을 보고 “너네는 왜 그렇게 비인간적으로 사냐?”라고 얘기하면 안되지 않을까?
말 나온김에 좀 더하자.
전제적 권력을 휘두르던 정치권의 무조건적이고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급성장하고 지금 안정적인 수익을 누리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원가의 1%가 얼마 안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순이익이 10%인 회사에게는 원가 1%를 줄이는 것보다는 그 돈으로 직원 처우개선과 사회환원에 힘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 자체가 TV광고보다 훨씬 더 장기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홍보가 되고, 결국 그것이 영속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길이 되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다르다. 영속가능한 기업이 되면 물론 좋다. 하지만, 그건 결국 안정적인 수익이 받쳐 줄 때의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순이익 2%도 못 내면서 헤매고 불경기에서는 바로 적자나는 레드오션 후발주자들에게 있어서, 원가 1%절감은 당장의 순이익을 2배로 올리는 방법이고 장기적으로 생존해 가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인건비 절감, 저임금 전략은 결국 레드오션 후발주자들의 필수선택인 것이다.
열을 올려서 떠들기는 했지만, 물론 저임금 추종전략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이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저임금 추종전략에 불만을 가지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탓하는 일개 직원에 불과하다. “저임금은 지금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합리화를 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 불만이 생기고 가끔 “돈 받는 만큼만 일하자.”는 생각에 게을러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추종전략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줄여 나가야 할지, 찬찬히 고민해 보기로 하자. 이미 앞에서 얘기했듯이, 오너/관리자/실무자를 구별하지 말고 “우리 회사”라는 관점을 가지고서.
2) 선도/병행/추종전략의 개별성과 상대성 – 절대적인 고임금/저임금은 없다
국내 기업들 중 임금을 많이 주는 기업, 즉 선도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은 어디인가? 당연히 삼성, 현대, SK 등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선도전략을 구사한다는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미국이나 유럽계 기업들과 비교해서 돈을 많이 준다는 것인가? 즉, 전세계적 기준으로 판단하더라도 최고 수준으로 돈을 많이 준다는 것인가?
당연히 그건 아니다. 삼성이나 현대의 공장과 사무실을 미국에 갖다놓고서, 우리나라처럼 월화수목금금금에 상시적인 야근체제로 굴리면서 지금 국내에 주는 임금을 그대로 준다면 어떻게 될까? 구체적인 데이터로 비교하는 건 자료도 없고 귀찮기도 해서 생략하지만, 당연히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나 현대는 미국 현지 기업들의 근로조건이나 임금 수준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연히, 대한민국 근로자들이 미국 현지 기업의 임금을 받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상호 간섭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물론, 양 쪽의 언어를 다 구사하고 상당한 업무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양 노동시장을 모두 오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런 몇몇을 제외한 일반적인 대한민국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미국 근로자보다 훨씬 더 긴 근무시간과 노동강도 속에서도 “우리는 최고수준의 대우를 보장한다”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뭐, 삼성 현대를 폄하할 의도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임금에서 선도/병행/추종전략을 나누는 것은 관련 노동시장을 어느 정도 폐쇄된 범위로 확정짓고 나서의 일이고, 또한 그 확정된 노동시장의 범위에 따라 결정되는 상대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선도/병행/추종전략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상대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 기업 내부에서도 충분히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무슨 말이냐면, 저임금 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이라도 어떤 사람에게 어떤 방식으로 월급을 주느냐에 따라서 ‘받는 사람 입장에서’ 충분히 고임금으로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어떤 업종이 거의 완전경쟁 상태에 있어서(건설업처럼), 엄청나게 많은 회사가 있다고 하자. 이 업종의 평균연봉이 어느 정도 정해질 것이다. 완전 대박 피터지는 레드오션이라면, (2010년 기준으로) 사원 1800, 대리 2400, 과장 3000 정도 될 것이다.
이 업종에서 어떤 기업이 1500/2100/2700을 준다면, 이 기업은 ‘짠순이’다. 남들이 1800/2400/3000을 줄 때 1500/2100/2700으로 각 직급별 연봉이 -300만원 낮은 회사. 이런 회사는 당연히 ‘저임금 전략 회사’다. 즉, 추종전략을 구사하는 기업이다.
그런데, 이 기업의 내부사정을 살펴볼 때 ‘기업의 평균연령이 상당히 낮다’고 해 보자.
즉, 고등학교나 2년제 대학 졸업자에게도 바로 기회를 줘서 사원으로 채용하고,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을 진급연한 되기 전에 바로 진급시키는 형태로 운영해서, 27살에 대리를 주고 30살에 과장을 준다고 해 보자. 그러면 어떤가?
4년제 대학을 나와서 군대 갔다오고 27살에 사원으로 다른 평균기업에 취직한 사람은 1800을 받을 것이다. 그 때, 예로 든 짠순이 기업에서는 동갑내기 2년제 졸업생에게 2100을 주고 있다. 이 둘이 30살이 되었을 때, 4년제 졸업자는 2400을 받는데 짠순이 기업을 계속 다닌 사람은 2700을 받는다.
즉, 평균연봉은 더 낮은 짠순이 기업이라도, 직급체계와 전체적인 구성에 따라서는 더 ‘동일 연령대 / 동일 학력 수준의 타인에 비해 더 많은 임금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게 성립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2년제 대학 졸업자와 4년제 대학 졸업자가 엇비슷한 능력을 발휘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조직체계를 잘 갖추어야 한다. 학벌에 상관없이 능력있는 자를 뽑을 수 있는 인사시스템도 받쳐 줘야 하고, 사내교육이 잘 되어 인적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조금만 삐끗하면 (조기진급자가 많아지면서 최종적으로) 고위직급만 넘쳐나서 부장이 복사기 돌리면서 겉멋만 든 조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문제점을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경영이다. 그리고, 그 경영자의 지휘를 받아 일하는 사람도 그 경영효과를 극대화시켜 줘야 유능한 사람이다. “일단은 저임금”이라는 전제에 동의하되, 개별적으로 상대적인 추가보상(빠른 진급 등)을 마련해 주는 체계. 그리고, 미래의 추가보상을 확실히 믿고 현재의 저임금을 일단 수긍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 레드오션의 기업에게는, 이것이 현실적인 이상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