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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레드오션 투쟁기 (11)

9-2. 레드오션 제1계명 : ‘아이디어’가 아닌 ‘기본’ – (하)

by 테서스


(앞 ‘상’편에 이어 씁니다.)


2) 어떻게 배워야 하나


앞 ‘블루오션 실패사례’를 통해, 탁월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더라도 일단 기존 레드오션 시장의 기본적인 흐름과 경영노하우, 회사 프로세스를 배우고 시작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배워야 하나? 학원 다녀야 하나? 혹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어디 듣보르자브 가족 같은 기업 (가좆기업)에 지원서 들이밀어야 하나? 거기서 월화수목금금금 사축생활 하면서 부당대우 다 감수하고 일 배워야 하나?


회사 경영을 가르쳐 준다는 학원은 없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학원중독 사회라고는 하지만 ‘회사 일’을 가르쳐 주는 학원은 없다. 대기업 채용 공채를 통과하기 위한 노하우를 가르쳐 주는 학원은 많지만 정작 회사에서 배우는 일을 가르치는 학원은 없다.


(뭐 MBA 과정이 있긴 하지만… MBA 다니는 사람들 대다수는 이미 어지간한 회사 중견간부 이상 급이고, 임원 내지 본인회사설립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걸 ‘학원’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


물론, 꼭 취직부터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곧바로 창업자로 시작하며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 어느 길이 맞다고 딱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취직을 하든 / 바로 창업을 하든 간에, ‘마인드 셋팅(Mind Setting)’은 동일하다. 바로 [후발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레드오션에서 직원으로 일하든 창업자로 일하든 간에, 당신은 후발주자다. 신시장을 연 최초의 선두그룹에 소속되었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모두 후발주자다. 남을 따라잡고 모방하고 추격하는 것이 ‘기본’이다.


후발주자가 유리한 점은, 선두그룹의 성공사례와 관리기법을 그대로 모방할 수 있고, 기술개발비를 상당히 아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속한 이 나라, 대한민국이 후발주자 성공사례의 가장 좋은 본보기겠지.

대한민국은 어떻게 성공해 왔나? IT에 일찍 뛰어들어 성공한 것은 최근의 일이고, 기본적으로 이 나라는 덤핑에 가까운 저가판매, 저렴한 가격 대비 만족할 만한 품질, 무식하게 많은 노동시간으로 수출을 늘리며 성장해 왔다. 후발주자가 지켜야 할 기본을 착실히 지키며 고속성장을 해 왔다.


후발주자가 지켜야 하는 기본, 그것은 “싸게 만들면서 품질을 유지하고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본을 지키기 위해 (회사뿐만 아니라) 우리 각 개인들도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인사관리, 경영, 세금 문제, 법적 분쟁의 처리, 에티켓까지…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방법들을 쉽게 배울 수 있을까? 당연히 어렵다. 어려운 데에다, 돈과 시간도 많이 든다. 배워서 하려면 끝도 없다.


(앞에서 ‘창업을 하면서 직접 시행착오 겪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창업에 도전할 생각은 없다. 한 번 무너지면 두 번 다시 일어날 방법이 없는 나로서는 시행착오를 감당해 낼 자신감도 능력도 자본력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좀 더 안전하게 / 쉽게 배울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남 밑에서 일하는 것, 그게 내가 선택한 길이다.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그러면서 회사조직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수익을 내는지 일을 하면서 터득해 가려 했다.


물론, 남 밑에서 일한다고 다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업이 잘 된 현대사회에서 한 개인이 하는 일은 상당히 단순화되어 있고, 하루하루의 일이 바쁘다 보니 회사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쓸 시간도 없다. 인사, 법무, 기획처럼 회사 전반의 업무를 다 다루는 조직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이고, 각 단위부서에서 일한다면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다. 일반서민인 우리에게 남는 것은 시간 뿐이다.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술자리에서든 출퇴근 길에서든 하루일과 중에 눈치보면서 노는 시간에서든 조금씩, 우선 자기 회사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살펴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것이, 레드오션 시장의 기본을 알려줄 것이다.



터놓고 말해서, 아무리 바쁜 회사라고 해도 사무직이 하루 12시간 내내 문서작업만 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 점심시간, 문서 끝내고 잠깐 남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에 웹서핑을 하거나 신문기사를 보거나 하는 시간이 있다. 이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배우는가에 따라, 자기 회사와 업종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달라진다.


자기 회사 및 경쟁회사들의 재무상태를 알아보고, 업종의 평균이익과 자기 회사의 당기순이익을 비교해 보고, 매출증가세/이익률/인사조직에 대한 나름의 비전을 고민해 보는 작업을 10년 이상 계속한다면, 그냥 주어진 일만 하고 월급 외에 회사 돌아가는 상황에는 관심없는 사람과 분명히 차이가 날 것이다. 그것이 곧 자신의 힘이 된다.


현대사회의 조직은, 어느 것이든 간에 분업이 잘 되어 있다. 이런 체계에서 조직 전체의 움직임을 알려면, 자기가 스스로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조직이 알아서 미리 다른 분야를 교육해 줄 이유는 전혀 없다.



3) 건설회사에서 다른 업무 배워나간 이야기

개인적인 경험에 따른 예를 하나 들어 보자.


건설회사에서, 부도난 업체의 해지 문제로 업무처리를 한다고 하자. 좀 더 부연설명을 하면, 종합건설회사 입장에서 공사 일부를 하도급받은 업체에 대해 계약을 해지(타절)하고 현장에서 내보내는 업무다.


이런 경우, 보통 본사의 법무담당/회계담당/계약담당이 현장의 공무담당과 협조해서 같이 일을 처리한다. 계약서 몇조에 근거해서 해지예고공문을 보낸 후 그 기간이 경과하면 해지하고, 공사기성별로 공사금액을 확정하고, 후속업체를 선정하고, 채권자들 별로 공사금액을 정리한다.


이 때, 자기 영역이 아닌 사항은 당연히 잘 모른다. 현장 공무담당이 해지의 법률요건과 효과를 잘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고, 회계담당자가 공사기성율을 계산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우선 자기 일을 착실히 잘해서 분업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 후, 각 개인에게 남겨지는 문제는 이 업무 과정에서 “무엇을 남기는가” 하는 것이다.


회사 전반의 업무프로세스를 이해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라면, 계약서 조항과 민법 몇 조에 의해 해지를 하는지, 업체가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을 때 역발행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공사기성율을 산정하는 방식과 근거는 무엇인지 눈여겨보게 된다.


법무는 현장 공무담당자의 기성율 산정 방식을 보게 되고, 현장공무는 법무가 근거로 드는 계약조항과 공문작성법을 보게 되며, 재무의 회계처리 방식 및 외주팀의 후속업체 선정 절차도 다 볼 수 있게 된다. 즉, 자기 영역 이외의 업무도 약간은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쌓인다면, 다른 영역에 대해서도 반 정도 전문가가 될 수 있다. 회사에서 의도적으로 순환근무를 시키지 않더라도, 본사 지원실 소속이면서 현장업무를 알게 되고 / 현장담당자로서 본사 지원업무 처리방식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회사 업무 전반을 다 이해하겠다’는 마음 없이 그냥 자기 일만 하면 그만이라는 사람은, 다른 영역의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서류 써달라고 요구할 뿐 그 서류를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는다.

계약해지예고공문과 해지공문의 차이도 모르고, 왜 계약해지예고를 해야 되는지 알기 위해 계약서를 찾아보지도 않으며,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일도 아니고, 전화해서 물어보면 언제든지 가르쳐 주는데 뭐하러 그런걸 알아보나?”라고 말한다. 다음에 유사한 일이 생겨도 또 전화해서 물어보고 다른 부서에 협조요청할 뿐, 본인이 더 나아지는 것은 없다.


뭐, 회사 다니는 동안에는 별 문제 없다. 회사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으니 굳이 맡은 역할 이상의 일을 알 필요 없고, 다른 부서에 협조요청해도 같은 회사 사람인 이상 일단 연락받으면 (살짝 짜증을 내더라도) 공짜로 알려 준다.


그런데, 그게 창업 후에 자기사업을 할 때도 그럴까? 혹은,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다른 직종으로 전환했을 때도 그럴까? 직급이 올라가서 관리자의 지위에 섰을 때도 일 터질 때마다 전화해서 물어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no”라는 답변이 나온다면, 내일 당장 당신이 지구를 뒤흔들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고 해도 그걸로 창업하면 망한다. 약간 돈을 벌었다 해도, 결국 그 돈은 변호사나 회계사나 변리사의 배를 불려 줄 뿐이고, 당신 손에는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창업을 하든 회사 내에서 열심히 성장해 가든 간에, 오너와 상급자의 지위에 갈수록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회사 전반의 돌아가는 상황, 프로세스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기본”이 갖추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조직은 결코 그 기본을 교육시켜 주지 않는다. 교육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블루오션은 결코 우연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개척되는 것이 아니며, 혹시 열었다 하더라도 그걸 유지할 노하우를 갖추지 못했다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 레드오션의 기본에 충실하고 레드오션에서 착실히 성장했으며 끝끝내 살아남는 사람에게 블루오션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리고,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을 만큼 충실한 기본을 갖춘다면 블루오션이 열리지 않아도 계속 잘 살 수 있다.


자, 제 1계명을 기억하자. “기본”을 갖추어야 한다.

- 업계의 통상적인 상식 익히기

- 회사가 돌아가는 기본적인 구조 파악하기

- 관련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초적인 수준에서나마 이해하기

- 그리고 이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남는 시간들을 활용해서 자기 업종과 관련된 정보를 알아가기.


그렇게 해서, 중간관리자와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기본”을 쌓아 가야 한다. 하루하루 조금씩 시간을 아껴 자기가 종사하는 산업을 이해하고, 다른 직무를 맡은 사람들이 뭘 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비록 직급은 낮지만 전체 시야는 관리자 이상 ~ 오너 급으로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2023년 기준으로 추가하면)

물론, 제가 13년 전에 쓴 글에 나온 대로 한다고 해서 ‘오너(Owner)’가 되는 건 아닙니다. 회사 내에서 잘 나간다고 해 봐야 결국 임원인데, 임원 된다고 해서 회사 지분이 생기는 건 아닙니다. ‘회사를 자기 걸로 생각해라!’는 말은 Dog Sound일 뿐, 오너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오너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마인드를 갖고 살면 확실히 본인 성장이 빨라집니다. 하루, 한 주, 한 달로는 못 느끼지만 그게 1년 2년 쌓이면 확실히 시야가 넓어지고 같은 일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안 배운 일도 잘 할 수 있게 되고, 자기 분야에서는 더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13년 전에 제가 중고신입으로서 꿈꿨던 것들을 모두 이루진 못했지만, 그래도 연봉 앞자리 하나 추가하는 단계까진 왔습니다. 오너 지시를 직접 들으면 대략 어떤 생각에서 이런 지시가 나왔는지 추측하고 그 취지에 맞게 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진 왔습니다.


회사에 충성심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충성심 강조하는 차원에서 ‘회사 돈을 니 돈처럼 생각해라!’는 말 따윈 사뿐히 듣고 흘려보내면 됩니다.

다만, 각 회사원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본인이 비즈니스맨(Businessman)이라는 자각(自覺), 그리고 본인이 팔아먹는 상품은 ‘자기 자신의 노동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본인 스스로의 노동력을 팔고 있습니다. 그 노동력의 가치를 높여 가는 건 상품공급자인 여러분 자신입니다.

노동력 판매시장 자체는 시뻘건 핏물의 레드오션이지만, 그 레드오션에서도 ‘더 나은 상품’이 존재합니다. 그 더 나은 상품을 만드는 것은 ‘비즈니스맨인 본인’입니다.


구체적인 성공사례는 나중에 따로 서술하겠습니다. 일단은 13년 전 생각했던 ‘계명(誡命)’을 계속 이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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