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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레드오션 투쟁기 (13)

10-2. 레드오션 제2계명 : 임금전략 – 일단은 저임금 (하)

by 테서스


3) 저임금에 대한 만회 대책


이상적인 형태만 제시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좀 더 현실적인, 몸에 와닿는 대책도 필요하다. 즉, “우리 회사는 월급은 적게 주지만 그래도 다닐 만 해”라는 얘기가 나올 만한 별도 대책을 고민하고, 그걸로 저임금을 메꿔야 한다.


가끔 TV같은데 보도되는 “짠돌이 사장”의 행태로, “녹차 다섯 번 우려먹기”, “인스턴트 커피 자기돈으로 사먹기” 같은 게 나온다. 내가 듣기로는 100위권 안에 드는 중견건설사 중에도 이런 데가 있다고 한다.

이게 원가절감 효과가 있을까? 장부상으로는 몇십~몇백만원의 절감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진짜 원가절감일까?


개인적으로, 나는 커피를 상당히 많이 먹는 사람이다. 인스턴트 커피믹스 정도는 하루에 5~6개 소비한다. 그리고, 커피를 먹는 만큼 업무집중도와 효율이 높은 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어느 정도 회사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전제한다면, 커피믹스 자기돈으로 사먹는 거에 열받아서 일을 게으르게 하거나 회사 나가버리면 회사 입장에서는 완전 손해다. 돈 몇십만원 아끼려다가 유능한(나 자신의 개인적인 기준으로) 인재를, 회사의 미래를 잃어버리는 결과밖에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신입으로 입사했던 건설회사는 계열사로 보험회사를 가지고 있었다(앞에서 밝혔듯이 동부그룹이다). 금융 쪽 경기가 좋을 때라서, 보험회사 쪽 연봉이 건설회사보다 15%정도 높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입사동기 모임에서 “보험 쪽은 점심값을 각자 따로 낸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 때, 곧바로 드는 생각이 ‘우리는 점심을 다 비용처리해 주니까 건설 쪽이 훨씬 더 낫네’라는 것이었다.


가만히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점심을 자기 돈으로 사먹고 연봉 15% 더 받는게 훨씬 더 이득이다. 우리나라가 보릿고개 겨우 면한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지니계수가 0.2정도라는 나라에서 회사 근처 식당에 점심값 좀 주는 정도로는 연봉의 15%가 나갈 리 없다. 나름 대학까지 나온 사람들이 그 정도 계산이 안 될 리도 없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기합리화 경향이 있다. 일단 어느 직장이든 들어가면, ‘그래. 이 회사 한번 잘 키워봐야지. 그렇게 해서 나도 여기서 성공해야지.’ 라는 생각을 누구나 다 하게 된다.

자기 회사가 남의 회사보다 더 나은 점을 찾아보려고 하고, 당장 연봉이 좀 적더라도 ‘그래. 우리 회사는 이런면은 좋아.’라고 긍정적으로 보려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달도 안되서 바로 그만둘 만큼 마음에 안드는 회사가 아니라면 최소한 6개월 정도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니게 된다.


이 자기합리화 경향, 현상태를 유지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위험을 피하고 싶어하는 안정화 성향, 이미 익숙해진 지금 회사를 조금이라도 좋게 보려는 성향 – 회사의 오너, 중간관리자 입장에서는 이걸 노려야 한다. 돈을 좀 적게 주는 대신 다른 “무언가”로 그걸 대체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뭘로 대체해 주면 좋을까?


가장 생각하기 쉬운 게 “먹는 것”이다. 사람은 의외로 먹는 것에 약하고, 특히 “공짜로 먹는 것”에 더 약하다. 그게 괜찮은 음식이라면 더 쉽게 통한다. “괜찮으면서 원가가 싸게 드는 음식”을 찾아서 제공할 수 있다면, 당연히 직원 입장에서는 꽤 좋은 연봉보상이 된다.


점심/저녁의 원가를 낮추는 것은 의외로 쉽다. 일단, 직원 여러 명이 먹는 것이므로 단체구매가 된다. 직원의 수가 많다면 회사 내에 구내식당을 만들고 식재료 등을 직영구매하는 체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직원수가 적다면 회사 근처에 성실하고 맛깔나게 음식하는 집 몇 개를 선정해 월 단위 고정계약을 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뭉치면 내려간다”는 구매법칙이 있지 않은가? 개인별로 따로 사먹는 것보다 회사 직원들이 대량으로 구매하면 아무래도 더 싸게 된다.


물론, 밥 먹여 주는 걸로 생색내면서 “밥까지 먹여주는데 뭔 연봉인상이냐” 는 식으로 행동해서는 당연히 안 된다. 그건 군대에서 철밥통 지키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고, 이윤추구의 최선봉에 선 기업인들이 할 소리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직원들 스스로 “자발적인 합리화”를 할 수 있게 복지제도를 운영하는 것이지, 복지제도가 저임금을 변명하는 수단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먹는 것 외에 다른 대체수단은 뭐가 있을까?


모호하게 얘기를 좀 하자면, “기업문화”도 대체수단이 될 수 있다. 사원-대리급도 책임지고 큰 일을 진행하게 해 주는 분위기, 눈치 안보고 사내연애를 해도 되는 분위기,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아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편하게 근무할 수 있는 분위기 등등.


이런 기업문화는 각 개인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어서, 어떤 분위기가 적합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IT나 건설회사처럼 소비자와 직접 부딪치는 부분이 적은 기업이라면 편하게 일하는 분위기가 좋지만, 판매 중심의 서비스업이라면 옷을 대충 입어도 신경 안쓰는 기업문화는 회사 운영에 치명적이다. 사내연애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회사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사랑싸움이나 사내불륜으로 사단이 나면 멀쩡한 사람들이 다 이직해 버릴 수도 있다. 이런 건 상황에 맞추어 잘 판단할 수 밖에 없는 법이다.


다만, 내가 계속 반복 강조하고 있는 “레드오션에서 살아남아 성장하는 기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기업문화”의 요소는 몇 가지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일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 사심없이 일하고 겉으로 보이는 사생활도 깨끗하며 소탈한 상급자, 개인생활에 개입하지 않는 분위기.

“여기서 일하는 게 재밌다”라는 말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지만, 결국 그 말을 하는 사람이 회사의 미래를 만든다.


가장 이상적으로 좋은 형태는 “비전을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하는 한 어떤 위기도 다 이겨낼 수 있고, “우리”는 업계 최고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며, 그 결과 “당신들” 모두가 최고회사의 임원이 되고 거액의 연봉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존경받게 된다는 비전. 가능하다면 이게 가장 좋다.


하지만, 비전공유는 모호한 목표를 제시하는 만큼 약발이 금방 떨어진다. 너무 자주 사용하면 자극에 둔감해져서 들어도 못 들은 척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너무 먼 미래의 비전이 아니라 당장 눈 앞에 달성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도 1년에 2차례 정도만 강조하는 방식으로 해서 사람들이 등 돌리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비전을 전파하는 방식,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참고) 4) 레드오션에서의 예외적인 선도전략


앞에서 이미 “고임금/저임금은 상대적인 것이고, 한 가지 전략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차별화하고 차등화하여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레드오션에서는 일단 전체적으로 저임금 전략이 기본일 수 밖에 없다는 점, 직급체계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선도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런데,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역발상의 역발상으로 레드오션 시장에서 선도전략을 사용할 수 있을까?

레드오션에서 선도전략을 사용해서 성공한 사례를 하나 들어 보자.



독자들께서 PC게임을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게임을 엄청 좋아한다. 내 인생의 1/12 정도를 차지할 기간인 8년 동안, 평균 하루 8시간 이상 게임을 한 것 같다(이 기간이 고시공부 한 기간과 거의 겹친다). 요즘도 시간이 나면 게임을 하고 있고, 아마 나중에 나이들어 퇴직하면 게임하면서 소일할 것이다.


이렇게 게임을 하다 보니 PC방을 자주 간다. 당연히 PC방의 서비스와 컴퓨터 사양 같은 것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그러다 보니 성공하는 PC방과 실패하는 PC방을 비교하는 일도 많았다. 수많은 PC방들이 무한경쟁을 하는 곳, 자영업자들의 진정한 레드오션인 신림동 고시촌에서 여러 곳의 PC방을 봐 온 것이다.


실패하는 PC방의 형태는 뻔하다.

어두컴컴하고 담배연기 자욱한 분위기, 퀴퀴한 냄새, 지저분한 화장실, 땟국물이 흐르는 바닥과 끈적끈적한 키보드, 누군가 국물에 이것저것 버려 놓은 컵라면 용기, 졸고 있는 야간알바, 구석에서 야동 보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들(다른 말로 고시생)…

이런 PC방은 대부분 저가정책을 펴지만, 진짜 저렴한 비용으로 야동 볼 게 아니라면 이런 PC방에는 가지 않게 되고, 어느 날 간판만 남게 된다.


그러면, 성공하는 PC방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대충 실패하는 PC방과 정반대다. 깨끗한 환경, 잘 정리된 PC, 깔끔하고 풍부한 양의 게임과 각종 영화 등의 컨텐츠, 쾌적한 실내 공기, 뭔가 필요할 때 부르면 바로 달려오는 알바, 매너 좋은 손님들. 이런 PC방은 무리한 저가정책을 쓰지 않고 오히려 다른 곳보다 돈을 더 받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모인다. 한두시간 정도 게임하는 라이트 유저들이 많이 모이지만, 게임폐인들 중에서 나름 돈을 여유롭게 쓸 수 있는 “젊고 나름 깔끔하게 입고 다니면서 학력도 좀 되는 백수 게임폐인(다른 말로 고시생)”들도 여기에 상주하면서 PC방 사장님의 주머니를 불려 준다.


자, 그럼 여기서 위 두 가지 경우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알바”다. PC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컴퓨터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서 잘 돌아가게 유지하고, 담배 재떨이나 라면국물 빨리 치워서 공기도 깨끗하게 만들고,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가지고 있는 인터넷 검색능력을 활용해서 메인컴퓨터에 재밌는 영화와 최신게임을 가득가득 채워 놓는 주체 – 바로 “알바”의 차이다. 직원의 차이가 레드오션 시장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지은 것이다.



신림동에서 가장 성공한 PC방으로, 지금(2010년 기준) 관악구 일대에만 4호점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가지고 있는 모 PC방의 경우, 이 알바 능력의 차이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찍 간파했다.

그래서, 이 PC방에서는 알바들의 수당을 상당히 많이 줬다. 내 기억에 시간당 최저임금이 3천원 전후였을 때였고 대다수 PC방이 알바들에게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2천 5백원을 줄 때였는데, 여기는 알바들에게 시간당 4천원~5천원을 줬다.

대신 알바들을 면접 봐서 컴퓨터 관련 능력이 어느 정도 되거나 (여자 알바의 경우) 외모가 단정한 알바들만 뽑았고, 알바 팀장을 통해 주기적으로 교육을 했으며, 별도로 주문한 알바복을 지급해서 근무시간 동안에는 이 사람들이 알바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손님들이 바로 알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이 PC방은 가격이 더 비싼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많이 몰리는 PC방이 되었다. 담배냄새에 쩌든 PC방을 싫어하는 여자 손님들이 남자친구와 함께 찾아오는 곳이 되었고, 장시간 게임을 즐기는 게임폐인 중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람들이 10여명씩 상주하는 곳이 되었다. 시끄럽게 떠들거나 며칠씩 안 씻어서 냄새 풍기는 비매너 손님들은 자동 척결되었다.


최종적으로 PC방 주인은 돈을 많이 벌어서 해외로 이민 갔고, 알바 팀장은 1호점의 점장으로 승진해서 각 가맹점을 총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었다.



이 해피한 사례는, 내가 지금까지 강조해 온 레드오션 공략법과 방향을 달리한다. 나는 주로 “저렴한 가격”에 따른 경쟁력을 강조해 왔는데, 이 PC방은 “품질 향상”을 통해 레드오션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이윤을 얻겠다는 전략을 세웠고 그에 따라 성공했다. PC방 사업이라는 시장이 가지는 고유의 특수성을 잘 읽어내고 거기에 맞는 전략을 세운 것이 들어맞은 것이다.


사후약방문이기는 하지만, 이 PC방 사례에서 드러나는 “시장 고유의 특수성”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각 상품(시간당 PC이용료)의 기본단가가 낮아 가격인하의 메리트가 부족하다.


둘째, 업종 종사자(알바)의 평균임금이 최저임금 이하로 책정될 만큼 아주 낮은 수준이다


셋째, 업종 종사자(알바)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있어 심리적 기피업종이다


넷째, 종사자의 사기저하로 인해 부가 서비스 측면이 타 업종보다 부족한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특수성에 기반하여, 가격인하보다는 부가 서비스의 향상을 통해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고, 부가 서비스 향상을 위해 업종 종사자들의 임금을 대폭 올린 것이 성공요인이다. 물론, 주인이 이런 거 생각 안하고 장사수단이 뛰어나서 직감적으로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PC방 주인의 선도전략은, 해당 업계 전체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인건비로 승부하는 “업계 전체적인 추종전략” 하에서 시도된 것이다. 즉, 관련업계를 호프집-마트-피자집 등의 알바업계 일반으로 보면 겨우 병행전략 수준의 임금을 준 것이지만, 이것이 PC방 사업이라는 영역에서는 전폭적인 임금 인상이 되었다. “PC방 알바는 게임폐인들이 생활비 벌려고 살짝 일하는 것”, 혹은 “알바 중에서도 편하게 앉아서 영화나 보고 시간 때울 수 있는 편한 알바”라는 인식을 바꾸고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해당 레드오션의 특성이 위 PC방 시장의 특수성과 비슷하게 나타난다면, 선도전략이 더 좋은 전략일 수 있다. 결국 1)계명인 “기본에 충실하자”에 따라, 해당 시장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기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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