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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레드오션 투쟁기 (14)

11-1. 레드오션 제3계명 인사관리전략 – 진흙 속 도자기 (상)

by 테서스

레드오션의 인사관리 : 끝없이 진흙 속을 뒤지고, 그 진흙을 도자기로 바꾸는 작업 – (상)


1)레드오션에 있는 사람들의 유형 구분


흔히 “인사는 만사(萬事)”라고 한다. 사람만 잘 쓰면 망할 회사 없고, 사람만 잘 쓰면 생판 모르는 영역에서도 대성공할 수 있다. 사람이 미래고, 사람이 희망이며, 사람이 알파이고 오메가이다.

그런데, 누차 얘기했듯이 우리는 “레드오션”에서의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 인사관리 또한 레드오션에 맞아야 할 것이다.


레드오션에 맞는 인재. 어떤 사람일까?


하버드에서 MBA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7개 국어에 능통하며 각국 법률과 경제현황에 정통한 초 슈퍼 울트라 캡숑 짱 인재는 우리 레드오션 종사자와 무관하다. 이유는 당연히 ‘비싸니까’. 시장에 공급하는 상품과 용역이 ‘중등품 중 가장 저렴한 제품’인데 그걸 생산하는 사람들 인건비를 많이 줄 수는 없잖아.


하버드 MBA 졸업 인재는 연봉 5억~10억 원할 것이고, 그런 인재에 줄 연봉이 있으면 은행에 저금해서 이자 받거나 / 대출금 빨리 상환해서 버리는 게 낫다. 그런 사람 데려온다고 해서 이 핏물의 레드오션이 혜자스런 블루오션으로 바뀌지 않고, 대단한 혁신이 일어나 매출 영업이익이 2배로 뛰는 일도 없다. 그냥 그 돈 아끼는 게 더 이득이다.


우리 레드오션 종사자들이 찾는 인재는 이 핏물의 시장에서 저임금을 받는 사람들, 즉 “우리들” 중에 있다. 가끔 저 위의 독과점 회사들, 즉 대기업으로부터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우리들 중에서 인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인재들과 우리들을 조화롭게 잘 융화하고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본격적인 논의를 위한 기본 전제로, 레드오션 시장에 종사하는 일반적인 종사자들을 크게 분류해 보자.


몇몇 예외도 있겠지만, 내가 보는 자의적인 기준으로는 통상적으로 레드오션의 중소~중견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을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생계유지형

: (레드오션 기업에서 쥐꼬리만한 월급 받는 게 싫지만) 다른 회사로 옮길 수가 없어서 그냥 다니는 유형


② 이직준비형

: (역시 쥐꼬리만한 월급 받는 게 싫지만) 다른 회사로 옮기기 위한 전 단계로, 경력을 쌓고 있는 유형


③ 승진추구형

: 상대적인 고속승진을 통해 더 큰 보상을 받으려는 유형. 즉, 연봉 적은 것에 불만인 건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지만 ‘이 회사 내에서’ 빠르게 승진하여 인생 후반부에는 높은 직급과 적절히 높은 연봉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유형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긴 하겠지만(예를 들어, 개인적인 신뢰 때문에 무조건 충성하겠다는 사람들 등), 지금까지 본 바로는 레드오션 중소기업에서는 이 3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일반적이다. 일을 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직장인의 숙명인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사람들은 숫자가 매우 적어서 따로 유형화할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일단 이 분류를 수긍하든 안하든, 다음 얘기를 진행해 보자.



2) 세 가지 유형 간 이해관계 조정


위 분류를 따를 때, 업무능력을 기준으로 본다면,

②번 이직준비형과 ③번 승진추구형 사람들이 능력 면에서 해당 레드오션 업종 종사자 평균보다는 뛰어나거나, 적어도 스스로는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①번 생계유지형 사람들은 아무래도 업무능력 면에서는 부족할 것이다.


업무능력의 차이는 회사 내 행동의 차이로도 이어지는데,


①번 생계유지형 사람들이 제일 소심하다. 가급적이면 아무 일도 안 하거나 반복적인 일만 하려는 성향을 보이며, 시키는 일을 최소한으로 하고 끝내려고 한다.


②번 이직준비형은 나름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성실한 편이나, “성실한 척” 하는 경우가 많다. 즉, 위험이 뒤따르는 업무를 가능한 한 회피하려고 하고, 남들 앞에 생색낼 만한 일들을 가려서 하려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③번 승진추구형이 아무래도 가장 열심히 일할 것이다. 고속승진이라는 것도 결국 회사가 살아 있어야 가능한 것이므로, 회사의 위험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누군가 위험을 방치할 경우 질책하거나 직접 일을 맡아 하는 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좋게 보이기 마련이다.


다만, 이 분류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유형으로 행동하게 된다.

특히,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②번 이직준비형과 ③번 승진추구형 사이를 오락가락하게 된다. 그리고, ②번 이직준비형이었던 사람들이 목표로 했던 이직에 면접 탈락하거나, ③번 승진추구형이었던 사람이 업무실패나 진급누락을 겪게 되면 갑자기 ①번 생계유지형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어떤 방향으로 동기부여가 되느냐 – 회사의 미래를 믿을 만 한가, 적극적인 노력에 대한 보상이 따르는가, 자기가 원하는 시기에 보상을 주는가 – 에 따라 회사 내 유형분포가 바뀌게 된다.


이렇게 쓰면, 눈치빠른 독자들 몇 분은 앞으로 내가 할 말을 이런 식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즉, “적극적인 성과에 대해 빠른 보상을 해 주는 체계를 만들어서 ③번 승진추구형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눈치만 보는 ②번 이직준비형과 무능한 ①번 생계유지형은 해고하든지 가급적 안 뽑는 방식으로 줄여나가자”는 방안을 생각하실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적어도 레드오션 시장에서 10년 이상 계속 존속하려고 하는 기업이라면, ③번 승진추구형 사람들을 너무 많이 확보해서는 안 된다. 승진추구형 인재가 많아지면 그것도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 인사관리전략은 “레드오션 시장”, 순이익이 쥐꼬리만큼 발생하는 시장에서의 인사관리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승진추구형 직원들만 골라내서 데리고 있다면, 또 그들의 성장욕구에 맞춰 계속 조기진급 시켜 주고 적당히 급여 올려 주고 잘한다잘한다 으쌰으쌰 버프 넣어 주면…

2~3년 내에 인건비가 50% 이상 폭증하고 대리급 이하 직원은 하나도 없는 사태가 오게 된다. 레드오션 생존전략의 2계명인 ‘저임금전략’이 5~6년 만에 망가지고, 부장급 직원이 복사기 돌리며, 회사 직원 중 이사~상무 이상 직급을 가진 집행임원이 25%에 육박하는 현상을 겪게 된다.


능력이 되는 사람들,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혹은 장기적인 보상을 바라게 되고, 그 보상에 맞추어 주다 보면 인건비 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능력 있는 사람들을 많이 모은다고 효율적인 조직이 되는 게 아니다. 각자의 능력이란 그 방향이 다르고 개개인의 성향도 달라서, 능력 있는 사람이 많으면 시너지 효과가 날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능력자들 간에 분쟁이 생겨 서로 역효과가 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진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옛 속담대로 되는 것이다.


회사, 특히 극단적인 짜내기를 통해 한계수익을 추구해야 하는 레드오션의 회사들에게, 민주적 경영이란 최악의 방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똑똑한 민주주의보다는 멍청한 전체주의가 더 강하다”.

사회∙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민주주의가 우리 생활과 문화의 기본이 되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영역에서는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이 있어야 하고 그에 맞는 조직체계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③번 승진추구형 인재를 너무 많이 보유하여 자기들끼리 싸우는 조직은 그 자체로 생존역량을 깎아먹는다.


방향을 제시하고 큰 위험을 제거해 가면서 끌고 나가는 사람은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통상적인 업무를 처리해 갈 사람들을 많이 배치하는 것. 그게 조직 전체의 측면에서 보면 더 효율적이고 더 싸게 먹힌다.

특히, ‘성숙산업’이라 불리는 레드오션 업종에서는 이미 대부분의 일들이 정형화되어 있고 기존에 하던 대로 따라하면 최소한의 이익은 보장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산업에서는 상위권 인재를 많이 확보할 필요가 없다. 어디 갈 데 없어서 매일 출근해야 하지만 시키는 일은 그럭저럭 해내는 정도 사람이면 충분하다.


즉, ①번 생계유지형 사람들이 레드오션 회사에 필수적으로 가장 많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②번 이직준비형 사람들이 꼭 회사에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들이 회사에 다니는 기간이 2년이 될 지 5년이 될 지 모르겠지만, 업종 전반적으로 처우가 다 낮은 상태에서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니게 될 가능성이 높고, 또한 회사 다니는 동안 주는 월급보다 더 많이 부려먹으면 그만이다.

②번 이직준비형은 일단 학벌이든 자격증이든 기타등등 뭐든 나름 능력이라고 내세울 만한 게 있는 사람들인 데다 아무런 실력발휘도 못하면 이직에도 제한이 온다. 그래서, 최소한 이직에 도움 될 만한 경력/경험 분야 업무는 열심히 하려 한다. 그걸 잘 활용해 해당 능력을 발휘할 만한 적당한 포지션에 세워서 몇 년간 일을 시키면 된다.



물론,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회사 측이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나오면 다들 알아차리게 된다. “너는 무능하니까 주는 월급에만 만족하면서 찬밥만 먹어”, 혹은 “너는 곧 나갈 인간이니까 진급은 포기하고 살아” 라고 미리 선을 긋는 것은 당연히 금기사항이다.


사람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뀌는 존재다. 그 사람에 대한 평가도 완벽하지 않다. 회사 내부 기업문화뿐만 아니라 외부 요인도 많이 작용한다.


그냥 하루하루 시간만 때우고 월급만 챙기려는 사람이라도 어떤 계기가 오면 열성적으로 주도해 나가는 모습으로 바뀔 수 있고, 회사의 미래에 자기 인생을 걸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라도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둔형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 겉보기엔 완전 성실한 듯 보이던 사람이 사실 알고 보면 일하는 흉내만 내면서 딴사람들에게 책임을 다 떠넘기는 민폐형 인간일 수도 있고, 지각과 결근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 중요한 일을 척척 처리하는 슈퍼맨일 수도 있다.


“경영에는 정답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인사관리에는 더더욱 정답이 없다. 다면평가니 스코어보드니 하는 수치화된 측정 툴이 있기는 하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수치화하거나 정형화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결국 인간이 조직생활을 하는 이상 끝까지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3가지 유형 모두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되, 조기진급 노리는 승진추구형 인재가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하되 생계유지형/이직추구형들을 적절히 배치하고 각 인재유형 간 상호간 시기∙질투나 무시하는 일이 최소화되도록 관리하기.


다른 많은 챕터에서 그렇듯이, 결론은 늘 모호하다.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러하듯이 나도 일반론 이상은 얘기할 수 없다. 일반론을 현실에 옮기는 것은 결국 현실을 살아가는 각자의 몫이니까.


이 다음에는 ‘후광효과 배제’를 먼저 살펴보고,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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