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이력서 쓰기 + 면접 준비 부분에서, [자기 한 일을 간단명료하게 요약서술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너무 원론적인 얘기죠.
이 원론적인 얘기를 하면, 아마 몇 분은 이렇게 반문(反問)하실 겁니다. “지금 회사에서 너무 평범하고 성과 안 나는 일만 시켜서 이직하려고 하는데요. 이런 허드렛일만 한 걸 요약서술한다고 해서 이직이 되나요?” 라고.
그렇습니다. 모든 회사원이 슈퍼엘리트 초사이어인 급 대활약을 펼칠 수 없고, 프로이직러가 되길 꿈꾸는(?) 경력직들이 모두 화려한 실적을 뽐낼 수 없습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을 하다 그 일상에 지쳐 이직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저 또한 처음에는 그러했습니다. 아니, 저는 다른 분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열악했었습니다. 중간에 3년 놀다가 다시 중고신입으로 재취업한 터라 처음 1년 반 정도는 “이러이러한 일을 했습니다”라고 내세울 만 한 게 없었죠.
내세울 만한 일. 그건 결국 이직을 꿈꾸는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결국 현재 직장에서 맡은 일을 잘 해야 하구요.
이 원론적인 얘기 또한 무척 모순적이죠? “아니 C발 지금 있는 회사가 접같아서 떠나려는 건데 지금 회사에서 맡은 일을 잘 하라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장난해?” 라고 얘기하시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모순(矛盾). 영원히 끝나지 않는 창과 방패의 대결입니다. 회사 떠나고 싶어서 이직 노하우 찾아야 하는데 그 이직 노하우가 회사 일을 열심히 하라는 모순, 이거 분명히 앞뒤 안 맞긴 합니다.
그러나, 모순 속에 답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다 꿰뚫는 창”과 “다 막는 방패”의 대결에서도, [창으로 방패를 찔렀을 때 방패의 3/4 정도가 관통되지만 어쨌든 완전히 뚫리지는 않았으니 막기는 막았습니다.] 라는 타협점(?)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프로이직러들의 모순에도 적당한 타협 답안이 있습니다.
그리고, 경력직은 이직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이직’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직 자체가 승진 + 연봉인상 + 복지개선 3콤보의 수단이 되기도 하죠. 즉, 프로이직러는 이직 자체를 본인의 성장수단으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이직으로 성공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실현하려면, 결국 일을 잘해야 합니다. 즉, 이직하기 이전 회사에서도 “일잘러”로 이력서에 기재할 만한 성과들을 내야 하고, 이직에 성공해서 옮긴 새 회사에서도 최단시간 내에 “일잘러”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 성과로 또 다시 이직하면서 연봉 직급 더 올려야죠.
[현재 회사에서 본인의 무기가 될 만한 성과들을 쌓아 가면서 그걸로 이직하고 또 이직한 회사에서 다시 성과를 쌓아 가는 것.]
그게 프로이직러입니다. 프로스포츠 저니맨(Journeyman) 중에서 ‘즉시우승 가능 전력’으로 손꼽히는 선수들처럼, 새로 입사하는 회사에 즉시 도움을 주고 새로 맡은 일 다 처리해 내야 프로이직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되는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작게, 사소하게 시작한 습관이 몇 년 쌓이면서 서서히 업무역량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늘 그렇듯이, 추상적인 얘기는 줄이고 좀 더 구체적인 걸로 들어가 봐야겠죠. 소목차 붙이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1) 몰라? 모르면 군생활 끝나냐?
소목차를 좀 강하게 뽑았습니다. “모르면 군생활 끝나냐?”
대한민국 남자 대다수는 저 말 들으면 경기 일으킵니다. 저도 그 중 한 명이구요. 아주 그냥 치가 떨립니다.
뭐, 대한민국 전반적으로 군대문화가 매우 강하고 / 그 군대문화 때문에 부작용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군대문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좋소기업은 소위 ‘꼰대기업’으로서 직장 내 성희롱 및 갑질 문제 터지면 각 노동청의 따뜻한(!) 직권조사를 받기도 하죠.
자, 그런데 말입니다.
저 말을 조금 부드럽게 바꿔 쓰되, 직장생활에 응용하면 어떨까요?
제가 방송법무이던 시절, 기획팀 바로 옆자리에 있었는데요. 어느 날 기획팀장님과 그 팀 막내사원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 기획팀장 : ㅇㅇ님 ㅁㅁㅁ에 대해 보고해 봐요.
- 막내사원 : 저 그거 안 배웠습니다.
- 기획팀장 : (웃으면서) 야 그런 말 하면 안 돼. 회사에서 일 시키는 건 니가 지금 알고 있는 거 정리하라는 게 아니야. 모르면 이것저것 찾아보고 그 찾아본 걸 정리해서 보고하라는 뜻이야.
- 막내사원 : 아, 알겠습니다.
당시 저 기획팀 막내사원은 입사 1년이 안 된 상태였습니다. 즉, 아직 신입 티가 나는 (면접 때는 우주초천재퐈이야열정맨이었지만 이제 정상인으로 돌아온) 초보 회사원이었습니다.
경력 20년 넘고 곧 임원 될 것 같은 기획팀장님이 웃으면서 한 말. “모르면 찾아보고 보고해.”
이 말을 인격무시 싸가지밥말아먹은 톤으로 바꾸면 “모르면 회사생활 끝나냐?”로 바뀝니다. 상대가 신입사원이고 / 아직 많은 걸 배워야 하며 / 기획팀장님 쪽이 모범적인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으니 부드러운(?) 말로 순화되는 거지, 기본적으로는 “몰라? 모르면 찾아봐. 니 자리 컴퓨터에 인터넷 연결된 게 어디 쇼핑몰 아이쇼핑하라고 있는 건 줄 아냐?”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우리 나라만 있을까요? 군대문화에 쩌든 헬조선에서만 이렇게 “모르면 회사생활 끝나냐? 찾아보고 정리해 와!”라는 현상이 발생할까요?
제가 외국계 회사를 다녀 본 건 아니지만, 외국계 회사도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 각 직원들 책상에 놓여 있는 컴퓨터에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건 “모르면 찾아보라.”는 의미입니다. 모르면 찾아보고 알아봐야 되는 겁니다.
위 사례에서는 ‘입사 1년 안 된 신입’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경력직’이면 어떨까요? 경력직이 “안 배웠습니다. 그래서 못합니다.”라고 대답하면 어떨 것 같나요?
물론, 경력직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다 알고 척척 해내지는 않습니다. 특히, (앞에서 제가 말했듯이) 저처럼 건설법무에서 방송법무로 넘어간 사람들은 더더욱 아는 게 부족합니다. 해당 회사의 업무 속성과 상관행과 적용법리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습니다. 거의 90% 이상은 모르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경력직이 누구한테 가르쳐 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안 배웠으니 좀 가르쳐 주세요. 배우기 전까지는 못합니다.” 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런 소리 해서도 안 됩니다. 경력직으로 입사했으면 모르는 일을 찾아보고 스스로 알아내야 하며 스스로 처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직을 꿈꾸는 회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직하고 싶다면 새로운 회사에서 어떻게 빨리 적응하고 빨리 인정받을지 고민해야 하고, 그 고민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새로운 회사에서 모르는 일을 접했을 때 스스로 알아내어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자체적인 훈련을 하고 나서 이직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모르는 일은 당연히 어렵죠. 모르는데 어디서 뭘 찾아봐야 할지 막막합니다. 한 방송인의 유명한 드립 [아니 모두 경력만 뽑으려고 하는데 신입은 어디 가서 일 배우라는 거야?] 라는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치는 느낌이 듭니다.
일 배우는 거 아닙니다. 본인 스스로 터득하는 겁니다. 그게 되면 신입이 곧 경력이고 프로이직러가 되는 겁니다.
이러면 당연히 “어떻게 안 배웠는데 스스로 터득하냐?”는 반박이 있을 겁니다. 모든 걸 다 스스로 터득할 수는 없죠. 신입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배우긴 배워야 합니다.
그 신입 단계가 지나면. 팀장이든 선임이든 간에 윗사람에게 일을 배워 약간이나마 흐름을 알 때가 되면.
그 때부터는 스스로 찾아가면서 일 하는 게 좋습니다. 안 배운 일을 ‘검색’으로 해결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또 추상적인 논의로 가는 것 같으니, 사례를 들겠습니다. 제가 속한 법무 직군 사례입니다.
(2) “안 배운 일”을 잘 해내기
1990년대까지는 “안 배운 일 하기”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제가 있는 법무 직종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어려웠어요. 네이버 지식인 검색 정도로는 법무 직종의 절차적인 사항을 알아보는 게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네이버 지식인 자체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2010년 중반이 되면서 인터넷에 올라온 ‘전문지식’의 분량이 점점 더 늘어났습니다. 로펌 사무장, 법무사, 노무사, 은퇴한 등기공무원, 행정사 등등 분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추가 보완을 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로스쿨’이 생겼죠.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면서 인터넷 상담 건수도 함께 증가했고, 이런 인터넷 상담을 홍보수단으로 삼는 로펌도 꽤 늘었습니다.
즉, 법무 일은 “인터넷 검색”으로 상당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무료 인터넷 검색에 더해 “유료검색”까지 활용한다면 어지간한 건 ‘나홀로 법무’로 처리 가능할 만큼 인프라 구축이 된 상태입니다.
제가 2015년 정도에 소액사건 직원대리로 법정 출석했을 때 일인데요.
소액사건답게 하루에 50개 이상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고, 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앞 앞 사건인가 진행할 때, 판사님이 꽤 놀랍다는 듯 한 마디 하시더군요.
“할머니 이거 할머니가 직접 쓰신 거예요?”
그 사건의 원고는 대략 80세 가까우신 할머니셨습니다. 국민학교(어쩌면 소학교) 졸업을 안 하셨고, 한글은 깨쳤지만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분이셨습니다.
사건 내용은 대략 60년 전 부모님 명의로 되어 있던 토지가 정당한 거래 없이 명의이전되었고 / 이 명의이전이 무효이므로 원래 명의자 및 그 상속인에게 반환되어야 한다는 취지인 것 같던데요. 제가 기록 읽어 본 건 아니라서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만 대략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80세 다 된 할머니가 정리하셨습니다. 물론 민사소송법 규정까지 다 확인하기는 어려워서 판사님이 법률구조공단에 재접수할 것을 추천하긴 했지만, 최소한 사실관계 정리만큼은 완벽했던 것 같습니다. 단독소액사건 담당하시는 판사님이 놀랄 만큼 잘 정리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법이란 그런 겁니다. 사실관계만 정확히 정리하고 밝힐 수 있다면, 국민학교 졸업 못 한 80세 할머니가 전직 대법관을 상대로 소송해도 승리할 수 있는 것. 그런 겁니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구요.
그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당연히 모릅니다. 그 할머니가 진짜 땅 찾았는지, 아니면 끝내 못 찾고 돌아가셨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는 확실합니다. 그 할머니는 정규교육을 뛰어넘어 “자기 스스로 공부하고 발전하는 방법”을 아시는 분이었다는 점. 그것만은 확실합니다.
80세 가까이 되신 무학(無學) 할머니도 할 수 있는 게 법무 일입니다. 대학에서 법 배우고 실무에서 1년 이상 굴러먹은 사람이 “안 배워서 못합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없습니다. 해서도 안 됩니다. 법률 찾고 판례 찾고 각 행정사례 찾고 인터넷 뒤지고 정보검색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경력직”이라면. 자기 스스로를 하나의 상품으로 포장하여 노동시장에 팔고 그 가치를 높이기 위해 무단히 노력하는 “프로이직러 지망생”이라면.
“안 배웠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모르는 일은 찾아서 하면 그만입니다. 99%는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 가능하고, 진짜로 판례가 없거나 견해대립이 극심한 1%에 대해서는 현황 보고하고 외부 변호사 자문 받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저 1%에 대해서도 나름 감(感)이 옵니다. 80세 국민학교 졸업 못 한 할머니가 본인소송 방식으로 등기무효확인 및 소유권확인 소송을 할 수 있듯이, 일반인도 변호사 급 판단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프로이직러”가 됩니다.
이번 챕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 챕터에서도 “이직한 경력직의 업무 방식”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