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에서 잠시 언급했었다. 아버지 C는 "언젠가 내 인생을 글로 써서 책으로 내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70년대 헬조선식 사회생활에 맞추느라 먹었던 술이 어느새 알콜중독 수준까지 가 버렸고, 나름대로 합리적이었고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국졸'의 낙인에 갇히다 보니 책을 펼치지 않았었다. 말년에는 섬망증상이 치매 급으로 심해졌고 시력도 많이 떨어져 글자를 읽는 것조차 힘들어 했었다.
아마 어느 순간부터는 인생을 글로 쓰고 싶다는 꿈 자체를 잊어버렸을 것이다. 몇 년 간 연락 끊고 살아서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반면 나는...
아버지의 기대 때문에 시작했던 법학 쪽 일은 대충 무산되었다. 그나마 10년 이상 시간을 들이긴 했으니 법 관련된 걸로 먹고 살긴 하고 50대가 가까워지면서 나름 준수하게 사는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이걸로 꿈을 이뤘다고 보긴 어렵다.
내 적성에 맞았던 수학-과학 쪽은 완전히 담 쌓고 지냈다. 그냥 '문송합니다' 그 잡채다. 가끔 과학 쪽 최신기사를 찾아보긴 하지만 그건 진짜 취미 수준일 뿐이고 대부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꿈. 고등학교 시절 내 유일한 취미였고 즐거움이었던 '소설 읽기'가 어느새 '소설 쓰기'로 바뀐 꿈. 20대 후반에 간 군대에서 행정병의 권한을 남용하면서 군대 PC로 소설 쓰던 시절의 꿈.
그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웹소설에 첫 작품을 올린 지 4년 넘었고 아직 상업적인 히트작은 없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직장생활로 생계 유지하고 가족들 생활비 마련하는 와중에 틈틈이 글 쓰면서 계속 소설쓰기에 도전하는 중이다.
사람의 인생은 짧다. 그 짧은 인생에서 10년 20년 정도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만큼 행복지수가 올라간다. 그 일이 본업이 된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그냥 취미로 몇십 년 즐기는 것도 괜찮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즐거운 일을 찾았다. 아버지의 한(恨)이 서려 있던 '검사의 꿈'이 산산이 부서진 대신, 그 자리에 나 자신의 꿈을 채워넣었고 그 꿈을 향해 하루하루 걸어가고 있다.
뭐, 솔직하게 말하자. 내 소설쓰기의 꿈이라는 게 그리 고상하지는 않다. 원래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순수문학 쪽으로도 별 관심이 없었으니 '고상한 글쓰기'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런 글 쓰려고 노력할 이유도 없고.
지금의 나는 19금 소설을 쓰는 하꼬작가일 뿐이다. 나름대로 상업적 성과를 올리려고 19금 장르로 진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 고객의 취향에 맞추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 마음대로 사회비판도 했다가 갑갑한 설정 넣었다가 독자들과 싸우다가 기타등등 좌충우돌 하는 중이다.
그렇게 미생(未生) 단계인 작가 지망생이지만. 남의 인생을 글로 요약하고 포장하기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그래도 아버지 인생을 요약해 봤다. 언젠가 소설로 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일단 인생 자체는 요약해 봤다.
아버지가 보신다면 그리 마음에 들어 하시진 않을 것이다. 자서전이라는 게 보통 자기 기준에서 과장할 거 과장하고 줄일 거 줄여야 하는데, 그런 거 없이 대부분 사실 중심으로만 나열해 버렸으니까. 인생 후반부의 안 좋은 모습까지 다 언급해 버렸으니까.
사실 내 입장에서도 그렇게 마음에 드는 글은 아니다. 어찌됐든 나도 아버지의 한(恨)을 구현하기 위해 법대에 갔었고 사법시험도 꽤 여러 번 도전했지만 끝내 망가졌으니, 나로서도 과거를 돌이키는 게 그리 기분좋지는 않다.
아버지가 원했던 글은 아니겠지만. 나 또한 그렇게 상쾌한 느낌의 글은 아니지만.
일단은 있는 그대로 정리했다. 한때 집안의 영광이었던 대학 본고사 시절 국어영역 요약문제 풀듯이 사실 그대로를 나열하며 요약 정리했다.
언젠가는 이 글에 살을 덧붙이게 될까? 영화 '국제시장'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힘든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미화하게 될까?
베트남전 수송병이 역전의 용사로 묘사되고 안동 뒷골목의 소년이 화려한 협객으로 재탄생하게 될까?
고엽제 경증 환자로 심혈관계열 질환과 섬망-치매증상에 시달리던 말년의 모습이 '국가를 위해 싸운 영웅의 고통'으로 미화될까? 나 자신이 그런 미화작업을 하게 될까?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정리할 뿐.
프롤로그에서 나 자신을 소시오패스(Sociopath)라고 썼었고 이건 상당부분 사실이다. 나는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거의 공감하지 않는다. 내 가족(아내와 딸들)의 아픔과 고통이 있다면 그 가해자를 완전히 박살내고 죽여 버릴 수 있지만, 내가 가족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은 그냥 '따위'로 취급한다. 나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정신적으로 가족 범위에서 배제시키면 모두'따위'에 들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셜록홈즈 급 '고기능 소시오패스'인 것도 아니다. 난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하게 본모습을 숨기며 살아가는 회사원일 뿐이다. 내 소시오패스 본성은 연쇄살인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에서나 드러나고 일상생활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젊은 날의 꿈과 목표에 많은 영향을 줬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날. 그래도 국가유공자라고 관에 태극기 덮어 주고 대통령 이름 들어간 근조 깃발 세워 주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장례 치르던 날.
그 사람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검사 아들'의 망상에 빠져들기 전 합리적이고 용감하고 패기 넘쳤던 시절을 되새기게 되었다.
젊은 시절을 온전히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그 아들에게 해 줬던 얘기만큼은 상당 부분 다시 기억해 냈고 또 글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그 기록을 남겨 둔다. 육신은 싹 다 불에 타버리고 가루만 남았지만 젊은 날의 정신력과 의지는 가상의 인터넷 공간에 영원히 남을 수 있도록 정리해 둔다.
모든 인생을 자세히 기록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은 기록해 둔다.
몇 년에 한두명이라도 그 기록을 읽어볼 수 있도록 계속 보관해 둔다.
인간의 덧없는 꿈이 조금이라도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글자로 바꾸어 새겨 둔다.
잘 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