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vieretmars May 24. 2024

에필로그: 에꼴 마흐테넬 첫 학년 끝 &여행

첫째가 태어난 뮌헨으로…!

에꼴 마흐테넬 첫 학년이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동안 에꼴 마흐테넬에서 두 번의 Sortie 외출을 했는 데, 한 번은 극장에 연극을 보러 갔었고 다른 한 번은 처음으로 영화관을 가서 20분 정도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왔다. 보통 Sortie를 하게 되면 몇 주 전에 공지문을 부모님께 주고 부모 중에서 같이 동반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다. 남편은 항상 바쁘고 나는 둘째를 집에서 케어하느라 참여를 못해서 아쉽지만 다행히 첫째는 부모가 같이 오는 아이를 부러워하거나 뭐라고 한 적이 없다. 그래도 다음 학년에는 한번 같이 Sortie 동행하고 싶다.


학년이 올라가면 Sortie 하는 횟수가 올라가고 다양한 체험들을 하게 된다. 기독교 사립학교는 교회를 가기도 하고 다양한 종류의 Sortie 가 있다. 우리나라도 내가 어렸을 때는 부모 참여가 가능했는 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이제 에꼴 마흐테넬에 더 이상의 방학은 없다. 두 달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것으로 아이의 첫 학년은 마무리된다. 아마 이 방학쯤에 어떤 반에 어떤 아이들과 같이 다음 학년을 보낼지 공지가 뜰 것 같다.


그렇게 마지막 방학의 끝을 달릴 때쯤 나와 첫째는 첫째가 태어난 도시, 뮌헨을 가기로 했다. 코로나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짐을 싸서 어딘가에 쫓기듯 파리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오고 자주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뮌헨은 2년을 못 가게 되었다. 파리에 와서 아이가 기관에 다니고 둘째를 임신하는 동안 아파서 어딜 갈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끊은 비행기 티켓은 꽤 비쌌지만, 오랜만에 첫째와 단 둘이 하는 여행이라 설레었다. 아이는 몇 주부터 "엄마, 독일어로 안녕하세요가 뭐야?"라고 물으며 "Servus"를 계속 연습했다.


뮌헨에 도착하자마자 첫 난관에 봉착했다. 내 캐리어 바퀴가 하나 없어졌는 데, 남편 말로는 누가 일부러 나사 뺀 거 같다고 한다. Service center로 가서 독일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하냐니 우리가 나왔던 출구 쪽에서 클레임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지금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한다니. 첫째에게 “엄마가 너무 미안한데 온 만큼 다시 가서 이거 부서진 거 신고해야 해.” 하니 첫째는 “엄마, 뭐가 미안해? 가자”라고 했다. 이런 대답을 할 줄 생각도 못 했던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클레임을 걸고 호텔에 오니 원래 도착 예정 시간보다 3시간 늦어졌다. 짐을 풀고 시내로 나왔다. 항상 여행에 갈 때면 그 도시의 책방을 가서 기념할 만한 책을 산다. 우리가 뮌헨에 살았을 때 자주 간 책방으로 가서 아이가 책을 고르고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셨다.

첫날밤, 아름답게 밤으로 물든 뮌헨 시청을 보고 "엄마, 너무 예쁘다" 하며 광장을 뛰어다닌 아이에게 "너랑 내가 자주 왔던 곳이야. 여기 크리스마스 마켓도 왔었지, "라며 얘기해 주었다.

자주 가던 이태리 카페, 레스토랑, 빵집 등을 가며 맛있는 것을 먹어보고 그 주변에 있던 우리가 살던 거리도 가보며 아이에게 "기억이 나? 우리 여기 살았고, 엄마가 여기 빵집 자주 갔었잖아."라고 얘기하지만 아이의 기억은 프랑스에서 살던 기억밖에 나질 않는다.

마지막 날에는 친한 친구들과 다 같이 Deutsches Museum에서 만나기로 했다. 코로나 당시 레노베이션을 해서 지하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는 데,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친구들이 한 명씩 도착하는 데, 우리가 서로 안 본 그 2년 사이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과 같이 오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뭉클했다. 점심을 먹고 헤어지는 그때 발걸음이 안 떨어졌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잘 지내라며 선물을 교환했다.

한창 날씨 좋았던 뮌헨은 우리가 갔던 그 주말엔 비가 내리고 우박이 내렸다. 친구들은 날씨 참 못 골라서 왔다고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뮌헨은 날씨가 항상 이랬다. 아이도 우박이 내리는 데 걷는 게 싫다며 호텔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난 "루이야, 난 네가 걷기 시작할 때부터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햇빛이 나면 더욱, 밖으로 나가서 산책하고 놀았어." 라며 "우리는 상황이 어떻든 즐기는 거야. 엄마는 우박이 와도 행복한데?"라고 말했다.


첫째도 "엄마, 그럼 나도 괜찮아. 행복해!"

이번 뮌헨에 다녀오며 느낀 것은 이제 독일은 내 터전이 아니구나. 그리고 '아, 우리는 날씨나 상황에 제약받지 않고 오히려 그런 상황을 즐기며 살았는 데, 프랑스에 살면서 그걸 잊고 있었구나.'였다.


아이는 부쩍 커버린 키만큼 내면도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같이 성장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