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꼴 미흐테넬은 4시 20분이면 하교가 시작된다. 아마 아이들은 4시쯤 안에서 하교 준비를 하고 있을 것 같다.
4시 10분-15분 사이에는 가족, 픽업 대신해 주는 아르바이트생들 혹은 누누들이 학교 앞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난 보통 4시쯤 집을 출발해 가정보육하는 둘째를 유모차에 태워 걸어간다. 비 오는 날에는 자동차를 타기도 하지만 비가 많이 오는 하루는 유모차 끌고 첫째는 손을 잡고 오면서 나는 우산을 쓸 수 없어 비에 쫄딱 맞는다. 첫째 학교 가는 길은 조용하다가도 학교 근처로 가면 북적해진다.
처음에는 하교를 하러 가는 이 시간이 좋기도 하면서 싫었다. 첫째와 같은 반 아이들이 다 같이 나오는 모습을 보면 너무 귀엽다. 첫째의 환한 얼굴,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잘조잘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하다. 한편 부모들하고 프랑스어로 얘기하는 게 아직 부담스럽기도 하다. 빠르게 자기 말만 하는 프랑스인들 정확한 발음으로 얘기 안 하면 못 알아들어 대화가 안 되는 나와 그들. 처음에는 얘기를 피하려고 했는 데 몇 주 지나고 나서는 몇 부모들하고 짧은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 대화를 한 부모는 첫째 같은 반 A양의 엄마. 그 엄마는 아이가 2살 1살 아이 둘이 더 있는 데, 둘 다 크레쉬에 자리가 없어서 자기가 돌본 다고 했다. 두 명 다 다행히 수요일만 보낸다고 했는 데, 나도 둘째의 자리가 걱정이 되긴 하다. 여기는 스태프의 부족 때문에 크레쉬 자리 나는 게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빨리 직장으로 가고 싶다는 그 엄마는 약사였다. 방과 후에 뭐 하는 거 있냐고 물어보는 데 난 별거 없다고 하니 A는 내년부터 영어나 미술 학원을 보낼 거라고 했다. 사교육은 여기도 마찬가지구나 싶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얘기를 했지만 대부분 "Bonjour ça va?" 하고 쓱 지나쳐 버린다.
두 번째 대화를 한 부모는 같은 반 B군의 부모. 눈이 마주쳐서 "Bonjour"라고 했는 데, B의 아빠가 나한테 "니하오"라고 했다. "전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얘기하자 B의 엄마는 놀라 "한국어로는 안녕하세요라고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봤다. 누가 나한테 니하오라고 하는 건 오랜만이고 그게 첫째 같은 반 친구 B의 아빠의 입에서 나오다니 놀라웠다. 첫째와 B, 그리고 나와 B 부모랑은 잘 어울리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그냥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보지, 니하오라고 아는 척을 하다니. 아는 척이 무지함이 되어 버렸다. 그 이후 B의 엄마랑은 간혹 얘기하지만 그저 짧은 대화만 이어졌다.
세 번째 대화를 나눈 부모는 같은 반 C양의 아빠. 현재까지 가장 자주 얘기한 분이다. C의 아빠는 네팔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네팔 내전 시작 중에 부모님이 프랑스로 이민을 결정했다고 한다. 현재 심장외과 의사인 그는 주로 학생을 가르치거나 네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보곤 한다고 했다. C의 엄마랑은 매번 얘기할 기회가 없었는 데 내향적인 성격이라 다른 부모랑 얘기하는 걸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그녀는 둘째를 낳고 2주가 안돼서 스키니진을 입고 하교하러 나왔는 데 친정 부모가 왔는 데도 불구하고 나오는 걸 보고 프랑스는 산후조리가 없구나 생각했다. 그녀와 딱 한번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 데, 둘째 낳은 걸 축하해 주며 얘기를 했다. 알고 보니 곧 복직한다고 했고 C 때는 생후 2개월에 복직했다고 했다. 그 이유는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3개월 밖에 안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C가 학교 개학 후 몇 개월동안 울었던 이유가 여기 있나 싶다.
네 번째 대화를 나눈 부모는 이사 오고 잠깐 다닌 크레쉬부터 친구였던 D군의 아빠. 우연히 길에서도 몇 번 마주쳤지만 남편이랑 주로 대화를 나눴다. 학교에서도 주로 남편과 대화를 나누고 D군의 엄마는 내향적이라 그런지 나랑 얘기하고 싶지 않은지 기회가 없었다. 여하튼 D군의 부모는 맞벌이를 하는 데, 하교할 때는 주로 아르바이트생이 와서 얘기할 일이 없기도 했다. 이 하교 아르바이트생은 자주 바뀌는 데, 대학생들인 것 같았다. 하교 아르바이트생을 영어 프랑스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해서 하교할 때 아이들한테 영어로 말하는데 내 생각엔 하교시켜 집으로 바로 가서 과외를 하는 것 같다. D군이 놀이터에서 노는 걸 본 적이 딱 10분. 첫째의 제일 친한 친구 D군이 놀이터에서 놀지 않아 섭섭해 하지만 새로운 아이들도 만나면서 다양한 놀이를 하는 것도 경험이라고 항상 말해준다.
파리 같았으면 하교 길에 누누하고 얘기할 때가 많았을 텐데 그래도 여기는 부모들이 다 무엇을 하는 지 부모들이나 조부모들이 하교하러 오신다. 그래서 부모님들하고 얘기해보면 프랑스 가정에서 어떻게 자라는 지 방학이나 노는 날에 무엇을 하는 지 얘기도 할 기회가 있다. 이런걸 보니 나도 프랑스에서 학부모가 되는 데 잘 적응해 가는 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