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첫 명절이 설날이듯이 이들에게 첫 명절은 부활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월은 프랑스 전역에 초콜릿으로 가득하여 아이들을 유혹한다. 첫째랑 슈퍼마켓이나 길가를 갈 때면 "엄마 저기 봐봐" 하고 자기도 하나 가지고 싶다는 내색을 비치지만, "아직 부활절이 남았잖아. 그리고 한번 초콜릿 먹는 데 초콜릿 전문점 가서 사자." 하면 알았다고 한다. 첫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습관이 되어 있어 떼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신기하고 설득할 수밖에 없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프랑스는 초콜릿 전문점들이 많아서 슈퍼마켓 보다 약간 비싸지만 맛있고 다양한 모양의 초콜릿을 볼 수 있다.
이번 부활절은 토-월까지 쉬는 데 첫째가 아파서 목요일부터 계속 쉬게 되었다. 둘째의 중이염이 끝나자 첫째의 긴 감기로 인해서 중이염이 시작되었고 열이 나기 시작했다. 첫째의 사촌 누나는 중이염이 너무 자주 걸려 난청이 와 수술을 했다고 한다. 이런 케이스가 잦다고 프랑스 소아과 의사가 그러니 참, 이유가 뭘까.
부활절 시작 전에 초콜릿 마들렌이랑 초콜릿으로 구디백을 만들어서 하나씩 나눠 주려고 했는 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은 생일이 되면 구디백을 반 친구들한테 돌린다고 하던데 여기는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하시는 한국 분들은 몇 있다. 아쉬움이 가득할 때쯤, 부활절 휴일이 시작되기 전 첫째와 제일 친한 친구 A 아빠한테 연락이 왔다.
"이번주 부활절 토, 일, 월 중에서 어느 날이 제일 좋아요? A 가 첫째를 초대하고 싶다네요. 같이 정원에서 부활절 달걀 찾는 거 해요."
* Chasse aux œufs 라고 초콜렛 달걀을 이곳 저곳에 숨겨 놓고 찾는 부활절 대표 게임이다. 보통 각 도시에서 이 게임을 호스트하기도 하는 데, 파리에는 15구에 하는 것도 있는 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온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주최하는 것도 있고 하니 부활절 2-3주 전에 인터넷으로 찾아 보는 것도 방법!
사실 A의 부모와 우리는 몇 개월 동안 서로 집에 초대하느냐에 대해서 자주 얘기 했었다. 하지만 겨울 동안 인플루엔자 및 코로나, 그리고 장염으로 인해서 아이들과 부모 다 아픈 날들이 이어져 가고 방학이 지나 이제 학기가 끝나가게 되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이번 만남은 꼭 이뤄져야 한다고 서로 얘기했다.
A와 첫째의 인연은 크레쉬에서 시작되었다. 이사 오고 나서 한 두 달 정도 가량 하루 종일반을 보내고 싶었다. 파리에서 크레쉬 자리가 나지 않아서 세 살이 넘도록 Halte garderie 오전반만 다녔던 터라 걱정이 되었다. 물론 첫째는 잘 적응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다른 애들이랑 밥도 먹고 낯선 곳에서 잠도 자고 하는 걸 한 번도 해보지 못 한 채 학교를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시청과 몇 번의 연락 끝에 사립 어린이집에 자리가 났다고 했다.
크레쉬가 끝나고 항상 첫째가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어보는데, 언제 부턴가는 "A 랑 재밌게 놀았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학교 배정이 발표되었을 때, 우연히 선생님들한테 "첫째는 ㅇㅇ 학교 가요."라고 했는 데 그걸 안 A 아빠가 ㅇㅇ 학교장한테 전화해서 "첫째 하고 A 하고 같은 반 시켜주세요."라고 했다. A 도 참 수줍은 많은 아이인데 A도 어느샌가부터 첫째의 이야기를 많이 했더랬다. 학교에 적응을 잘하는 의미로 같은 반 시켜달라고 부탁한 A 아빠에게 감사하다. A와 첫째는 지금까지도 서로에게 제일 친한 친구다.
A의 집으로 가는 날까지 몇 밤을 자야 가는지 얘기하고 거꾸로 샘을 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A의 집에 가는 날. 그 전날부터 Osterzopf라고 독일에서 부활절에 먹었던 빵을 구워서 포장을 했다. 첫째는 A에게 주려고 사둔 것들을 모아 주었다. 둘째가 잠을 자는 바람에 나는 가지 못하고 첫째와 남편만 A의 집에 다녀왔다. 첫째는 돌아와 A의 집에서 뭐 했는지 무슨 장난감 있는지 조잘조잘 얘기하고 가져온 초콜릿들을 자랑했다. 남편은 커피 한 잔 얻어 마시지 못한 채 돌아오긴 했지만 첫째가 너무 행복해하고 첫째와 A 둘은 엄청난 장난꾸러기라고 부모들끼리 놀라서 웃었다고 한다. A의 부모는 맞벌이하는 데 금융업 쪽에 있어 너무 바빠 A와 A 친구랑 있는 모습을 처음 봐서 놀랐을 거다. 하하.
A와 첫째는 아마 서로에게 우정이라는 게 뭔지를 알게 해 준 인연인 것 같다. 학교에서도 둘이 자주 붙어서 놀고 서로 하교하는 길에 얼마나 장난꾸러기인지. 귀여운 아이들. 다음 부활절까지 이 우정이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