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어미 소가 되고 난 후 외양간에는 활기가 넘쳐났어. 외양간에서 들리는 울음소리가 돼지우리의 꿀꿀이 소리를 이길 정도였지. 소리는 송아지가 젖을 먹어서인지 늘 허기져 있었어. 소리를 몰고 들로 산으로 가서 꼴을 먹이고, 틈틈이 풀을 베어도 소리의 먹성을 당해내지 못했지. 소리와 송아지의 사료도 더 많이 사서 쌓아두어도 금방 동이 났어.
언제부터인가 정기적으로 청아네 바깥마당으로 용달차 한대가 드나들었어. 동네 사람들은 용달차를 ‘딩기차’라고 부르고, 운전수를 ‘딩기아저씨’라고 불렀지. 동네 사람들은 딩기차가 들어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 딩기차가 들어오는 날은 청아네 바깥마당에 동네 사람들로 북적였지. 짐칸 안쪽에는 딩기나 사료가 쌓여있고, 바깥에는 가끔씩 돼지나 소가 실려 있었지. 사람들은 돼지 딩기도 사고, 소의 사료도 샀어. 부탁한 돼지나 소도 사고, 혹은 팔기도 했어. 또 딩기아저씨는 부탁받은 생필품도 사다 주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 떠도는 소문, 이웃 동네 경조사, 가축들의 값이 얼마나 나가는지도 전해 주었어.
소리의 송아지는 무럭무럭 자랐어. 청아는 봄여름내내 소리와 송아지를 돌보느라 시간을 보냈어. 송아지가 많이 자라서인지 소리도 많이 차분해졌어. 청아는 이제 편하게 외양간으로 들어가 소리의 털을 빗겨줄 수 있게 되었어. 송아지를 만지지도 못하게 하던 소리가 송아지의 털을 빗겨주어도 가만히 바라봐 줄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
청아는 바가지로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사료를 퍼서 소리의 구유에 부어 주었어. 여물통에 물도 가득 담아 주었지. 큰집 오빠가 찾아왔어.
“오빠야, 우짠 일이고?”
“송아지 많이 컸나?”
“억수로 많이 컸다. 두 달도 안 돼서 젖떼고, 인자 사료도 많이 먹고, 풀도 조금씩 먹는다아이가.”
“우리 집은 인자 소 한 마리밖에 안 남았대이. 어제 다른 소들은 다 팔아뿟다.”
“억수로 서운하겄네. 안 울었나?”
“서운하제. 밤새 울었다아이가. 아버지가 큰형 대학교 등록금을 내야 한다고 팔았다 카더라. 소값이 떨어져서 한 마리 팔아갖고는 안 된다고 세 마리나 팔았다아이가.”
“어제 딩기차 왔을 때 팔았는갑네.”
“새끼 밴 거 한 마리만 놔 두고 팔았삔기라. 서운해 죽겄다. 몇 년이나 키워 갖고 억수로 정이 마이 들었던 긴데. 휴우.”
“진짜 서운하겄다. 안그래도 어제 엄마가 소값이 반값으로 떨어졌다카더라고. 소리를 사올 때 값이나 지금 소리랑 송아지랑 함께 파는 값이 똑같다고 억수로 속상하다카던데. 소 키우느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사료값은 사료값대로 나간다고. 소리 사 올 때 빚 낸 것도 그대로 있다 카면서 엄청 한숨을 크게 쉬더라고. 오빠 너거 소 파는 것을 보고 그리 말했는갑네.”
“동네 소들도 인자 별로 없다. 소 있는 집은 몇 집 안 된대이. 소꼴 먹이러 다니는 것도 인자는 재미도 없다아이가.”
“그렇겄네. 우리 소리는 절대 팔면 안된다고 내가 어제 엄마한테 말했다아이가. 오빠 니도 우리 엄마 보며는 소리는 절대 팔면 안 된다고 말 좀 해 준나.”
큰집 오빠가 돌아가자 청아는 엄마가 소리를 팔아버릴까봐 걱정이 되었어. 청아는 꼴도 더 열심히 먹이고, 풀도 더 많이 베어다 두고, 더 잘 돌보면 엄마가 소리를 팔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청아는 방학내내 소리와 송아지를 데리고 이른 아침에도, 오후에도 더 열심히 꼴을 먹이러 다녔어.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뜨거운 여름날이었어. 청아는 소리와 송아지를 몰고 산을 다녀왔어. 퇴근하신 엄마가 집에 계셨지. 퇴근 후에도 논이나 밭에 가시던 엄마가 그날은 집에 계셨던 거였어.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 있어서 한낮 같았지.
“엄마, 밭에 안 가셨어예?”
“오늘 딩기차 오는 날이다아이가.”
“소리 사료도 얼마 안 남았어예. 좀 많이 사야 될 것 같아예. 송아지 사료도예.”
잠시 침묵이 흘렀어. 엄마가 청아에게 말했어.
“청아야, 막걸이 좀 사 온나. 내일 밭 갈 때 아재들 새참 할라니까 두 되는 필요하대이.”
엄마는 한 되짜리 양은황주전자 두 개를 청아의 양손에 들려주고,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었어. 막걸리는 학교 앞 가게에서만 팔았기 때문에 다녀오려면 40분은 족히 걸렸어. 무거운 막걸이를 들고 오려면 중간에 몇 번 쉬었다 와야 하기 때문에 1시간은 걸리는 거리였지. 청아는 양손에 주전자를 들고 씩씩하게 걸어갔어. 막걸리 심부름은 늘 청아가 했기 때문에 익숙했어.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큰 독에 들어 있는 막걸이를 퍼서 주전자에 가득 담아 주었어. 무거운 주전자를 들고 오는 길은 너무 힘이 들었어. 청아는 막걸이의 양을 줄일 요량으로 주전자 주둥이를 입에 대고 부어 마셨어. 목이 타서 또 한번 홀짝하고 마셨지. 양쪽 주전자로 조금씩 마시면서 오다 보니 발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어.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청아는 깨달았어. 엄마가 심부름을 시킨 이유를 말이야. 대문을 열면 멀리 보이는 소리의 외양간이 비어 있었어. 소리도 송아지도 보이지 않았지. 분명히 딩기차가 소리와 송아지를 싣고 떠난 거였어.
“소리야. 소리야.”
청아는 큰 음성으로 소리를 불러 보았어. 그리고 동구밖까지 달려갔지. 딩기차는 흔적도 없었어. 청아는 동네 어귀에 주저앉았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지. 엄마가 소리와 송아지를 팔아버린 거였어. 이제 소리를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청아는 삶이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었어. 소리의 얼굴, 움메하는 모습, 풀을 뜯는 모습, 되새김질하는 모습, 워낭소리, 어린 송아지, 그리고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아련하기만 했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소리를 몰고 산을 올랐었는데, 도대체 소리는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디에서 살아갈까?
청아는 동구밖에서 어둑해질 때까지 주저앉아 울고 있었어. 냇물이 동네 어귀를 돌아돌아 청아의 슬픔만큼 넘실거리며 흘러가고 있었지. 언니가 청아를 찾으러 동네 어귀로 왔어.
"청아야, 가자. 이러고 있으면 병난대이. 집으로 가재이."
언니가 청아를 안아주며 달랬어.
집으로 돌아온 청아는 저녁밥도 먹지 않고, 윗방에 들어갔어. 몇날며칠을 울었어. 꾹꾹 눌러 쌓아 놓았던 소리와의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보았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어. 청아는 소리와 참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소리가 미웠던 적이 없었어. 친구가 없어 외로웠던 청아의 친구가 되어 준 소리가 늘 고마웠었어. 외딴 섬 같았던 청아에게 찾아와 함께 뛰고, 노래하고, 위로해 준 고마운 친구였어. 슬픔의 강물이 넘실거리고, 찬공기로 냉랭하던 청아의 마음에 따뜻한 물이 흐르고, 따뜻한 바람 불게 해 준 것이 소리였어. 청아는 눈물로 축축해진 배개에 고개를 묻고, 간절히 빌고 빌었어.
"부디 소리가 송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
친구였던 소리와의 아름다웠던 추억으로 인해 주변의 친구들에게 서툴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수 있었어. 청아는 외로운 시기때마다 또 다른 친구 소리와 함께하면서 지금까지 세월을 세월을 쌓아 온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