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어미 소가 되다

소리와의 추억 10

by 소리


가을이 무르익어가고 있었어. 청아는 소리를 몰고 서리가 내릴 때까지 이른 아침과 오후, 하루 두 번씩 함께 산을 올랐지. 찬서리가 내리고 파릇한 풀들이 노랗게 말라가면 더 이상 소리를 데리고 산으로 갈수가 없었어. 논에서 벼를 추수하고 타작하는 동안에는 소리를 데리고 논으로 갔어. 소리의 고삐를 논 바닥에 말뚝 박아 놓고, 논에서 어른들을 도와서 일을 했어. 청아는 벼를 수확할 때는 새참 심부름을 하고, 타작할 때는 볏단을 나르는 일을 도왔지. 어린 동생들까지 온 가족이 총 출동해서 한 단씩이라도 나르면서 거들었어.


벼를 베어서 한아름 되게 묶어서 단을 만들고, 두 볏단을 사람 인(人) 모양으로 줄지어서 논에 세워 놓았어. 그리고 며칠을 말렸지. 볏단이 너무 마르면 벼이삭이 타작도 하기 전에 떨어지기 때문에 어느정도 마르면 타작기가 들어오기 좋은 논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어. 타작기가 설치되면 대게 남자 어른이 볏단을 펴서 기계에 넣었어. 아이들은 볏단을 나르거나 볏짚을 모으는 일을 했지. 알곡은 자루로 모이고, 볏짚은 따로 떨어져서 쌓이고, 먼지는 타작기 굴뚝으로 치솟아 사방으로 흩어졌어.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멀찍이 고삐를 말뚝 박아 놓은 소리까지도 먼지를 뒤집어 썼지. 타작하는 날은 바람이 먼지와 함께 온 몸을 간지럽히는데 살이 까끌거려서 청아는 그 바람이 무서웠어. 타작하는 날에 소리는 볏짚으로 원없이 배를 채웠어. 벼추수가 끝나면 겨우내내 소리가 먹을 수 있는 볏짚은 충분히 준비가 되었어.


소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자 청아는 소리의 털을 빗겨주고, 몸에 붙어 있는 소똥도 떼어 내고, 몸을 닦아 주면서 몸단장을 해 주었어. 소리의 외양간은 칼바람을 가장 잘 맞는 장소였어. 꿀꿀이의 우리는 삼면이 시멘트벽으로 막혀 있었지만, 소리의 외양간은 두 개의 면이 트여 있었기 때문이었어. 청아는 소리의 외양간 바닥에 볏짚을 푹신하게 넣어 주었어. 엄마가 건넌방 아궁이불로 쑤어 놓은 따뜻한 여물을 청아가 한바가지 가득 퍼서 소리에게 부어 주었지.


“소가 새끼 뱄으니까 여물을 더 많이 퍼 줘야 한대이.”


엄마가 말했어. 소리가 새끼를 밴 거였어.


“새끼는 언제 낳는데예?”


“4월이면 낳을기다.”


소리가 새끼를 배었던 거였어. 청아는 소리가 어미 소가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어. 아직 새끼 소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미 소가 되다니, 어린 청아의 마음에는 새끼 밴 소리가 안쓰럽기만 했지. 청아는 따뜻한 여물을 한 바가지 더 부어 주었어. 겨우내 구유에는 더 많은 사료와 여물로 채워졌어. 아침이면 얼어 있는 여물통에 뜨거운 물을 부어 녹여 주었어. 여물과 사료, 볏짚으로 먹이를 대신했던 추운 겨울이 지나갔어. 소리는 겨울을 지나는 동안 배가 남산만하게 불러왔어. 그러나 큰 눈망울과 긴 속눈썹은 그대로였고, 머리에 난 털은 아직 거칠고 길었지. 배가 불러올수록 소리는 사람의 기척이 나면 뒷걸음쳐서 벽에 몸을 바짝 기대었어. 낯선 손님이 방문이라도 할 때면 고삐 매인 몸으로 외양간 안을 를 몇 바퀴씩 돌기도 했지.



매화로 뒤덮인 아름다운 우리산으로 자꾸만 눈길이 가는 삼월의 둘째 날이 되었어. 이 날은 늘 그러했듯이 청아가 새학년으로 진급하는 개학날이었어. 청아는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났지. 첫날부터 청아는 부반장이 되었어. 청아는 걱정이 태산이었어. 지난해까지는 오전 수업만 했기 때문에 일찍 하교할 수 있었어. 그러나 새학년이 되어서는 오후에도 수업이 두 시간 더 있었기 때문에 귀가 시간이 늦어져서 소리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었어.




청아는 학교가 파하면 곧장 집으로 달려와서 소리와 시간을 보냈어. 학교생활을 고주알미주알 들려주면서 볏짚도 가져다 주고, 사료도 부어주고, 물도 길어다 주었지. 학교 친구들이 보았다면 다 놀랐을 광경이었어. 학교에서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청아가 수다스럽게 소에게 말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소리는 여물을 먹고, 외양간 구유 앞에서 청아는 그날의 학교생활을 읊어 주었어.


개학한지 한달이 지난 무렵, 사월의 어느 날이었어. 청아는 그날따라 잰걸음으로 길을 재촉했어. 동네에 들어서서는 뛰다시피 집에 도착했지. 마음이 바빴어. 집으로 돌아온 청아는 청마루에 가방을 던져 놓고, 소리에게 다가갔어. 구유 앞에서 큰 눈망울로 반가움에 청아를 바라보며 움메하고 울어주던 소리였는데 그날은 외양간의 한가운데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어. 소리의 표정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 같았지. 청아는 걱정이 되어 외양간 앞에서 소리를 바라보 말했어.


"소리야, 와 그라는데? 어디 아프나?"


소리는 청아는 바라보지 않고 힘을 주며 서 있었어. 그때였어. 소리의 아랫쪽으로 송아지의 머리가 나오는 것을 청아가 목격했어. 머리가 나오고, 앞다리와 뒷다리가 나오며 툭 하고 떨어진 것은 송아지였어. 소리는 송아지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들어 몇 번을 움메움메하고 울었어. 그리고는 송아지의 몸을 핥아 주고 있었어. 갓태어난 송아지가 고개를 몇 번 흔들더니 일어서려고 용을 쓰고 있었어. 송아지가 일어서다 앉고, 일어서다 앉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드디어 일어섰어. 그리고 다리를 후덜거리면서 성큼 성큼 걸어서 외양간에서 나오더니 금새 하늘 향해 뒷발질을 하더니 안마당을 뛰어다니기 시작했어. 세상에! 태어난 지 몇 분밖에 안 된 송아지가 뛰어다니다니 놀라울 뿐이었어. 아기는 일 년이 되어야 겨우 걷기 시작하는데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거였어. 청아는 경이로운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지.

“언니야, 소리가 새끼를 낳았대이. 내가 새끼 낳는 것을 직접 봤다아이가.”


청아는 소리가 새끼를 낳는 장면과 갓 태어난 송아지가 펄쩍펄쩍 뛰어 다니던 모습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어. 모두 신기해했지.


소리가 어미 소가 된 거였어. 송아지가 생기자 소리는 많이 울어 댔어. 사료도 많이 먹고, 물도 남김없이 먹어 치웠어. 송아지를 보호하려는 것인지 청아에게까지도 난폭하게 굴어서 송아지 털도 빗겨주지 못했어. 송아지는 서서 고개를 쳐들고 젖을 먹었. 하루에도 몇번씩 아직 새끼같은 소리의 젖을 물었지. 아는 송아지가 소리의 젖을 물때마다 소리가 혹시 아프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어. 소리는 송아지를 끔찍히 사랑했어. 송아지의 몸을 햝아주고, 목으로 끌어안기도 하고, 잠을 잘 때에도 송아지와 머리를 맞대었고, 늘 붙어 있었어. 송아지가 외양간에서 나와 시야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움메움메 울었지. 말썽꾸러기 소리가 모성애 가득한 어미 소가 었던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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