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다
소리와의 추억 9
청아는 그날도 혼자서 소리를 몰고 우리산으로 갔어. 소리는 익숙해진 길을 경쾌한 걸음으로 올라갔지. 산허리에 도착하면 고삐가 풀린 소리는 오후 내내 맛난 풀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어. 가끔씩 앉아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움메움메 울기도 하고, 누군가를 간절히 부르듯이 고개를 들고 외마디로 휘휘휙거리기도 했어. 되새김질을 하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지.
청아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어. 청아가 아는 노래는 모두 다 소환해서 노래를 불렀지.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 해놓고 조약돌로 소반 지어
언니 누나 모셔다가 맛있게도 냠냠'
동네가 떠내려 갈 듯 큰 소리로 야호하면서 메아리도 불렀어.
"야호, 야호, 야호."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메아리도 부르다가 나무 위에 앉아서 낮잠을 청하기도 했어. 다리를 뻗어 줄기에 얹고, 등을 기둥에 기대고 앉으면 뜨거운 공기가 산바람을 타고 청아의 얼굴을 간지럽혔지. 그러면 슬슬 눈이 감겼어.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의 워낭소리는 자장가가 되었지.
우리과수원은 청아가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어. 고목이 된 포도나무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열매를 맺었지. 돌보지 않은 탓에 잔가지가 많다보니 알굵은 포도송이를 발견하기는 어려웠어. 머루처럼 작아도 온전한 포도송이를 발견하면 준비해 온 자루에 담았어. 튼실하게 맛이 들은 사과도 고이고이 담았어. 집에 가져가서 가족과 나눠 먹으면 저녁간식으로 안성맞춤이었어. 과실수 하나 하나에게 말을 걸고, 잘 자라기를 빌어주면서 실한 과일 하나씩 따서 먹으면 달콤함이 더위도 잊게 해주었어.
산타기를 좋아하는 청아는 소리를 따라 이리저리 산을 돌아 다니기도 했어. 들꽃이나 산열매가 달린 가지채로 꺾어서 언니에게 선물해 주었어. 언니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피어나는 꽃이나 열매를 보면 무척 행복해했어. 중학교에 다니는 언니는 예전처럼 자주 산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청아가 꺾어다 주는 작은 자연을 소중하게 여겨 주고, 늘 미소지어 주었지.
소리와 청아는 이제 우리산을 차지한 주인이 되었어. 사실 청아는 2학기 개학을 하고 나서는 이른 아침에 한번, 오후에 한 번, 하루 두 번씩 소리를 데리고 우리산에 올랐어. 오전 7시에 언니가 통학버스를 타고 읍내로 갈 때, 청아는 소리를 몰고 산에 올랐지. 산에 올라 한 시간 이상의 시간을 보낸 후에 집에 가서 아침을 먹은 다음 초등학교 다니는 여동생과 병설유치원에 다니는 남동생을 데리고 학교에 갔어. 방과 후에 다시 소리를 몰고 우리산으로 오르기를 매일 반복하고 있었어.
청아는 이제 소리가 보이지 않고, 워낭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걱정하지 않았어. 소리가 보이지 않을 때 ‘그곳’으로 가면 어김없이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어. 우리산의 한 능선을 넘어가면 아버지 산소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었어.
청아는 그날도 걱정 없이 이리저리 다니며 산앵두를 꺾고 있었어. 산앵두나무 가지가 땅으로 뻗어 있고, 아주 작은 나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청아가 원하는만큼 산앵두 가지를 꺾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어. 초록초록한 이파리에 빨간 산앵두 열매는 너무나 예쁘고 탐스러웠어. 언니가 너무나 좋아하는 새콤달콤하면서도 예쁜 열매였어. 많이 꺾어서 생일을 맞은 언니에게 선물을 줄 요량으로 온 산기슭을 다 뒤졌어. 집에 갈 시간이 되었어. 소리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워낭소리도 들리지 않았지. 그러나 청아는 걱정하지 않았어.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아버지 산소로 가면 되는 거였어.
가벼운 마음으로 매실나무 숲을 뚫고, 소나무가 우거진 산의 한 능선을 넘어서 아버지 산소에 도착했어. 그런데 소리는 없었어. 언제나처럼 소리가 산소 옆에서 떡갈나무 잎을 뜯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지. 도대체 소리가 어디로 간 것일까? 또 한 고개를 넘어 공동묘지로 간 것일까? 청아의 생각이 갑자기 복잡해졌어. 그동안은 아버지 산소에만 가면 소리를 만날 수가 있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소리로 인해 청아는 눈앞이 캄캄했지.
청아는 공동묘지로 가서 소리를 찾아보기로 했어. 산앵두 가지가 든 자루를 어깨에 메고 고개를 넘어갔어. 소리는 없었어. 땅거미는 내려앉았지. 저 멀리 보이는 앞동네는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환했지만 산은 이미 어둑어둑해진 뒤였어. 조금만 지체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둠이 몰려 올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청아는 집으로 향했어. 오늘 찾을 수 없다면 내일 찾으면 된다고, 소리에게 아무일도 없을 것이라도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슬픈 마음과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어. 엄마의 호통치실 모습을 떠올리자 청아는 풀이 죽었어.
어깨가 축 쳐진 모습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섰을때 청아는 눈을 의심했어. 와양간에 소리가 있었어. 소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여물통의 물을 마시고 있었어. 청아는기쁨반, 서운함반으로 크게 말했지.
"소리야, 소리야. 니 언제 왔노? 나한테 말이라도 하고 오제!"
소리는 고개를 들어 청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지.
청아가 고삐를 잡고 ‘이랴이랴. 좌라좌라, 우랴우랴.’ 하면서 당기고, 때리면서 방향을 잡아주어야 찾아오던 집이었는데 소리가 혼자서 집으로 돌아와 있었던 거였어. 청아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지. 소리가 어느새 부쩍 자라서 혼자서도 집을 찾아오게 되어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