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의 추억 7
청아가 소리를 몰고 우리산으로 향했어.
웃땀을 지나 대나무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넓은 밭이 펼쳐져 있었어. 목화밭, 고구마밭, 참깨밭, 들깨밭, 콩밭도 있었지. 이 밭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청아네 밭이 있었지. 감자를 캐고 난 후에 심어 놓은 참깨와 들깨가 무성한 밭이었어. 밭가에는 아름드리 버찌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봄에는 예쁜 벚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달콤새콤한 버찌를 먹을 수가 있었어. 밭 위에는 큰 연못이 있는데 높고 넓은 연못둑에는 들꽃이 만발하고, 잡초가 무성했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못 안에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잉어 떼가 가득했었지만 지금은 자생한 생물들의 천국이 되어 있었어. 연못가에는 단감나무와 납작감나무가 몇 그루 흐드러져 있고, 그 옆으로는 샘이 하나 있었어. 샘이 넘치면 아래로 흘러 연못으로 들어갔어. 샘은 산에서 흐르는 물과 지하수가 어우러져서 시원하고 맑은 물이 가득차 있었지. 식수로 사용하던 물이었어.
연못 바로 위에는 집이 한 채 있었어. 청아가 다섯 살 때까지 살던 집이야. 넓은 축담 위에 디딤돌이 하나 있어. 디딤돌을 밟고 올라서면 청마루가 있고, 방이 세 개가 있어. 안방과 윗방, 건넌방이 있지. 방마다 나무 등잔대 위에 사기로 된 석유 등잔이 놓여 있었어. 심지에 불을 붙이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속의 방을 환하게 비춰 주었었지. 안방과 건넌방에는 샛문이 하나씩 있는데 문을 열면 바로 정지로 연결되는 장지문이었어. 정지에는 아궁이가 있고, 그 위에 큰 쇠솥이 얹어져 있었지. 실겅이 있고, 부뚜막 위에는 석유곤로가 한 개 놓여 있어서 요리를 할 때 사용했었는데 녹슨채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어.
부엌문을 열고 나가면 돼지우리가 있고, 그 옆에는 뒷간이 있었어, 곡식을 저장하던 고방과 불지피기 위한 나무를 쌓아두던 헛간, 거름이나 재를 모아두던 잿간이 있었어. 뒤안을 돌아가면 바로 산이기 때문에 가파랐어. 가파른 산을 한 층 깎아 만든 딸기밭이 있었어. 복분자나 산딸기도 주위에 많이 있었지. 주변은 바로 산이었어. 눈에 뛰는 나무로는 동네에 흔한 오동나무가 큰 키를 자랑하고, 산초나무, 제피나무, 떡갈나무, 망개나무, 깨금나무, 개복숭아나무, 칡덩쿨 등등 많은 나무들이 펼쳐져 있었지.
집 옆으로는 큰 밭이 3층으로 되어 있었어. 바로 청아가 말하는 우리과수원이야. 1층은 사과나무가 심겨져 있었는데 아오리, 부사, 홍로, 배사과 등 너댓가지 종류의 아름드리 사과나무들이었지. 밭가에는 한아름이 넘는 버드나무 한 그루가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위용있게 서 있었어. 햇빛에 반짝이는 버드나무 이파리들은 청아가 상상하던 바다물결 같았어.
2층은 포도나무밭이었어. 시멘트로 만든 기둥같은 큰 지지대를 네 모퉁이에 세우고, 철사를 얼기설기 얽어서 포도나무가 가지를 잘 뻗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했어. 몇 년 동안 못돌본 탓에 잔가지가 자라서 머루같은 포도송이만 몇송이 맺혀 있었지.
3층에는 배나무가 예닐곱 그루 있었어. 고목이 되어 버린 배나무는 죽을 힘 다해 열매를 맺었는지 가족들이 한겨울 동안 넉넉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배들이 탐스럽게 달려 있었어.
과수원 뒤로는 높고 넓은 산이 펼쳐져 있었어. 한쪽에는 매실수와 살구나무로 가득했고, 다른 한쪽에는 밤나무가 무리지어 있었지. 그 주변은 모두 소나무나 떡갈나무들이 둘러싸여 있었어. 산 위로 올라가다 보면 곳곳에 있는 머루나, 산앵두, 다래, 으름이 간식거리가 되었고, 산허리쯤에는 보리수나무 군락이 있어서 보리똥을 맘껏 따 먹을 수 있었어.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가득했지.
한 여름에 소리를 데리고 우리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 산밑에는 이파리가 무성하고 열매가 돋아나는 밭이 많았기 때문이야. 그 사잇길을 걸어 소리가 밭으로 들어가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산으로 곧장 오르도록 하는 것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그러나 청아는 "이랴이랴, 좌라좌라, 우랴우랴, 워워.' 하면서 소리를 잘 몰아서 우리산을 향해 올라 갔어.
드디어 소리를 몰고 우리산에 있는 집까지 무사히 도착했어. 소리를 몰고 지나온 길을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어. 청아는 어릴 적에 살던 그리운 산 속의 집에 매일 기쁘게 오를 마음이 있었어. 청아는 다섯 살, 언니는 아홉 살 때까지 산에서 살았어. 청아는 언니가 하교하면서 가방을 메고, 빨간 색열필로 100점이라고 쓰여진 시험지를 흔들며 뛰어서 올라오던 모습이 눈에 선했어.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반가웠던지 언니를 바라볼 때 그 모습이 어른거릴 때가 많았지.
돌보지 않은 집마당에는 풀이 소복했어. 소리를 마당에 풀어 두고, 청아는 아름드리 사과나무 위로 올라갔지. 굵고 튼튼한 가지 위에 앉아서 기둥에 기대어 낮잠을 잘 생각이었어. 나무 위에서 낮잠을 자는 것은 청아의 특기 중에 하나였어. 주먹만한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는 나무는 더없이 좋은 휴식처였어. 사과를 보면 리어카에 사과를 가득 싣고 가는 아버지를 따라 학교 앞 가게나 문방구로 사과를 팔러 가던 생각이 났지. 사과를 따서 큰 고무다라에 담그고, 수세미로 사과 때를 벗긴 다음 물기를 빼고 팔러 가는 거였어. 친구들이 문방구에서 청아가 열심히 때를 씻어낸 사과를 사서 먹었지. 아버지가 건강할 때는 가을이면 온 가족이 사과, 배, 밤을 수확하느라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주 많았었어.
청아의 눈이 스르르 감기려는 때에 소리가 연못가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지. 소리가 연못에 머리를 숙이고 물을 핥아먹고 있었어. 갑자기 앞다리가 아래로 밀려 내려가는 거야. 청아의 감기던 눈이 번쩍 떠졌지. 사과나무에서 펄쩍 뛰어내려서 소리에게 달려갔어. 이미 소리가 연못에 빠진 뒤였지.
눈앞이 캄캄해진 청아는 소리가 물에 빠져서 죽어버릴까봐 겁이 났어. 청아는 소리에게 소리쳤어.
"소리야, 소리야, 힘내, 힘내, 내가 구해줄께!"
그때 선생님이 여름방학 전에 물놀이안전수칙을 말씀해 주셨던 것이 기억났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 물에 바로 뛰어 들어가면 두 사람 다 죽는다. 줄을 던져 주거나 힘이 빠져 물 위에 떠오를 때 건져내야 한다.’ 라는 것 말이야.
청아는 줄이나 끈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어.
"칡넝쿨, 칡넝쿨, 돌맹이, 돌맹이."
청아가 되뇌이며 칡넝쿨을 잘라 오기 위해 크고 날카로운 돌맹이를 찾고 있을 때였어. 물 속에서 발버둥치던 소리가 연못가에 두 앞다리를 올려 놓았어. 미끌린 토사 두렁이 아니라 단단한 풀숲 위로 앞다리를 굽혀서 올렸어.
"움메움메, 휘휘휘. "
소리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나오려고 용을 썼어. 연못 속에 잠겨 있는 뒷다리가 디딜 곳을 찾았는지 앞다리를 펴서 오르기 시작했어. 드디어 소리가 연못 밖으로 빠져 나왔어. 소리도 놀랐는지 한참을 연못가에 서 있었어. 그리고는 집마당으로 뛰어 올라가더니 자리를 잡고 앉았어. 놀란 소리가 안정을 찾기 위해서인지 머리를 배에 파 묻었어. 청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소리의 배에 기대어 앉았지. 청아와 소리는 새로운 세상에 도착한것처럼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어. 햇살도, 바람도,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까지도 달라 보였어. 청아는 소리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마냥 더욱더 사랑스럽게 느껴졌어.
개구쟁이 소리와 외톨이 청아는 더욱더 가까워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