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외양간

소리와의 추억 8

by 소리


더욱더 가까워진 청아와 소리는 부쩍 성숙해진 모습으로 동네로 내려와 청아네 집에 도착했어.


청아의 집은 기왓집이었어. 바깥마당으로 들어서면 지붕보다 한참 더 높이 솟아 있는 아름드리 땡감나무가 서 있었어. 작고 둥근 감은 이른 가을에 따서 곶감을 만들기에 아주 좋은 크기의 감이었지. 홍시도 아주 맛있었어. 나무가 너무 높아서 수확하지 못한 감들은 매년 까치밥이 되었어. 그옆에는 헛간이 있고, 헛간 옆에는 생리적인 일을 처리하는 측간이 있었지. 뒷일을 보기 위해 안채에서 나와 바깥 마당 끝에 있는 측간까지 가는 것은 최대의 숙제였어. 특히 밤에는 종이귀신이 나타날까봐 가족 중 누구라도 한 명을 데리러 가야해서 가족 모두의 일이 되었지.


바깥마당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어. 대체로 남자 아이들이 몰려 와서 놀았지. 야구, 자치기, 땅따먹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사방치기, 개뼈다귀놀이도 하고 줄을 매달아 배드민턴을 하기도 했어.


한쪽 돌계단으로 올라가면 텃밭이 있어. 밭가에는 뽕나무, 드릅나무, 제피나무가 서 있었지. 안쪽에는 고목이 되었지만 열매를 맺는 배나무와 사과나무, 자두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었어. 다 아름드리 나무들이었어. 자두 나무아래에는 목욕탕 지붕이 있어서 그 지붕에 올라 앉아서 자두를 따 먹곤 했어. 봄에는 오디, 여름에는 자두, 가을에는 사과와 배를 지척에서 따 먹을 수 있어서 청아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밭에는 머위가 피고 지며 번식해 가고, 봄에는 고구마 순을 심어 가을에 고구마를 수확했지. 고구마를 수확하고 나면 배추와 무를 심었고, 그 밭 모퉁이에는 대파와 쪽파가 늘 가득했었지. 구석에는 도라지와 더덕을 심어 놓아서 매년 꽃이 피었어. 겨울이면 땅을 깊이 파서 짚을 깔고 월동무를 보관했어. 긴긴 겨울 밤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실 오시는 날이면 월동무를 땅 속에서 꺼내어 깎아서 시원하게 먹곤 했었지. 추운 겨울 밤에 한껏 몸을 웅크린채로 밭으로 올라가서 막아놓은 짚뭉치를 빼내고, 땅속 깊이 쌓아 놓은 무를 꺼내어서 가져다 드리는 일은 청아의 몫이었어.


바깥 마당에서 보면 대문이 두 개가 있는데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과 사랑채로 들어가는 대문이었어. 사랑채로 들어가는 대문은 측간과 가까이 있었어. 사랑채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두 개 층으로 되어 있었지. 낮은 층은 사랑마당이었고, 높은 마당에는 대봉감나무가 세 그루 심겨져 있고, 사이에 가죽나무가 한 그루씩 있었으며며 안쪽에는 원형의 섬으로 만든 연못이 하나 있었어.


축담은 넓고, 디딤돌이 세 개가 있었지. 대청마루가 있었는데 그곳에는 사랑방 두 개가 나란이 있고, 건넌방 앞에는 쪽 마루가 있었어. 사랑방과 건넌방은 모두 양쪽으로 방문이 있어서 안채 쪽으로 나갈 수가 있었어. 그리고 안채 쪽으로 문을 열면 아궁이가 한쪽 큰사랑방과 건넌방에 한 개씩 있어서 불을 지필 수가 있었고, 부뚜막이 있고, 솥이 얹어져 있으니 요리도 가능했지. 사랑채 정지 벽에는 닭장을 달아 놓아서 닭들이 높이 날아올라 잠을 청하고 아침이면 달걀을 한 개씩 낳아 놓았지. 정지문이 없었기 때문에 사랑채 정지는 안채 마당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어. 아침에 일어나 닭장에 손을 넣어 따끈한 달걀을 꺼내오는 일은 늘 설레었지.


우물곁으로 난 담장으로 난 샛길이 안채와 연결되어 있었어. 안채로 가는 샛길에는 농기계를 보관하는 광이 있는데 판문으로 되어 있었어. 돌아서 안채로 들어가면 나락을 보관하는 고방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조각문 열두 개를 블록을 쌓듯이 쌓아서 문을 닫았어. 한자로 일에서 십이까지 쓰여 있어서 한자 공부하기로는 그만이었지. 사랑채 큰 사랑방에는 목욕탕이 하나 붙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농기계를 잔뜩 쌓아 두는 광으로 둔갑해 있었어.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을 열면 양 옆으로 나락을 저장하는 고방이 나란히 있었어. 습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다리가 높이 있었고, 양쪽으로 쌓아서 닫는 조각문이 열 개씩 있었어. 한쪽은 사랑채에 붙어 있는 목욕탕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다른 한쪽은 수돗가와 장독대로 연결되어 있었어.


수돗가에는 큰 마당가에 있는 것과 같은 아름드리 땡감나무가 안채 지붕보다 훨씬 높게 치솟아 있었지. 수돗가에는 시멘트로 만든 수조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좋아하는 잉어를 넣어 두던 곳이었어. 연못에서 잉어를 키운 다음, 잡아 와서 수조에 넣었다가 요리를 해 먹었어. 수돗가에는 크고 둥글고 깊은 맷돌이 있어서, 콩도 갈고, 추어를 갈기도 했어. 수돗가에서 두 계단을 오르면 장독대가 있었는데 독 안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 장아찌가 가득했고, 대봉 홍시를 보관하는 독이 있어서 겨울에 꽁꽁 언 홍시를 아이스크림처럼 꺼내 먹곤 했었지.


장독대 옆에는 또 하나의 목욕탕이 있었어. 이 목욕탕 지붕 위에 자두나무 가지가 뻗어 있어서 지붕 위에 앉아서 자두를 따서 먹는 맛은 일품이었지. 이 목욕탕 안에는 큰 욕조가 있었는데 바닥 한쪽에는 쇠솥이 움푹하게 붙어 있었어. 목욕탕 밖에 있는 아궁이에서 나무로 불을 지펴 물을 데워서 따듯하게 목욕을 할 수 있었어. 물을 욕조에 퍼 나르고, 불을 지펴 목욕을 하는 번거러움 때문에 겨울에는 새해맞이 목욕만 했었지. 목욕탕 바닥 모퉁이에는 앉은뱅이 독이 몇 개 있었는데 이 독에는 모래가 가득 담겨 있었지. 가을에 수확한 밤을 밤송이만 제거한 후에 모래 안에 보관하면 그 다음해 봄까지도 신선하게 먹을 수가 있었어. 특히 알밤은 제삿상에 필수였기 때문에 제삿날이면 밤을 모래 속에서 꺼내어서 깎아서 제수로 사용했어.


목욕탕과 안채 사이의 샛길은 뒤안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어. 안채의 왼쪽 끝은 정지였어. 정지도 판문으로 되어 있었지. 아궁이 두 개와 쇠 솥 두 개가 얹어져 있었어. 넓은 부뚜막이 특징이었어. 밥상 하나를 얹어 놓을 수도 있었지. 장지문이 있는데 문을 열면 바로 안방이었어. 정지에서 차린 밥상을 안방으로 바로 들여 놓을 수 있었어. 정지 기둥 두 개의 허리을 연결해서 만든 찬장이 있었는데 미닫이 문으로 되어 있었지. 찬장에는 반찬과 조미료통이 들어 있었어. 아궁이 맞은편으로 2층으로 된 커다란 실겅이 있었어. 그 옆으로는 불을 지필 때 사용하기 위해 장작, 나뭇가지, 불쏘시개를 모아 두는 헛간같은 공간이 있었지. 아궁이와 실겅 사이에 다락방이 하나 있어서 정미된 쌀이나 잡곡을 넣어 두고 사용했어. 주방 용품을 넣어두는 창고로도 사용했지.


안방과 윗방, 건넌방이 있었어. 윗방은 가운데 방이라고 불렀지. 안방의 구들은 가장 따뜻한 곳이었어. 안방에는 콩나물시루가 있었고, 겨울에는 큰 독안에 고구마를 보관했지. 가운데방 앞에는 안마루가 크게 되어 있었는데 여름이면 밥상을 펴서 식사를 하고, 모기장을 치고 온 가족이 같이 잘 수 있는 넓은 대청이었어. 건넌방은 작은방이라고 불렀어. 안방과 가운데방은 정지의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면 온돌이 연결되어 함께 따듯해졌지만 건넌방은 따로 아궁이가 있었어. 작은방은 앞문과 옆문이 있는데 옆문을 열면 아궁이가 있있어. 쇠솥이 얹어져 있어서 겨울에는 솥에 물을 가득 담고 불을 지펴 방도 데우고, 데워진 물로는 세수를 했지. 곰탕을 끓일 때도 이 솥을 사용했고, 소의 여물을 끓일 때도 사용했어. 바깥에 있는 아궁이다 보니 겨울에는 추운 길고양이의 따뜻한 집으로 사용되었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다가 튀어나오는 고양이 때문에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


안마당은 아주 넓었어. 사랑채 뒷벽과 안채 사이의 공간이었지. 안마당 안쪽에는 벽돌로 높여 만든 텃밭이 하나 있었는데 매실수, 단감나무, 단성감나무, 석류나무가 한 그루씩 심겨져 있었어. 해마다 가지가 번지는 구기자나무도 있었어. 더덕, 도라지, 고추와 오이, 가지를 심어서 반찬으로 사용했었지. 안마당 한켠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수국, 다알리아, 장미, 수선화, 봉숭아, 맨드라미, 채송화, 성황 등등 여러 종류의 꽃들이 만발했어.


텃밭 옆에는 돼지막이 두 개 있었는데 안쪽은 돼지가 없어서 장작이나 나무, 불쏘시개로 사용할 나무들을 쌓아두었고, 안마당과 가까운 돼지막에는 꿀꿀이 한 마리가 몇 년 동안 새끼를 낳고, 또 낳으면서 오랫동안 함께 살고 있었어 . 돼지막 맞은편에 소막이 두 개 있는데 돼지막과 마찬가지로 안쪽은 헛간으로 사용하고, 바깥쪽은 소리가 사용하는 소리의 외양간이었어.


소리의 외양간 옆은 큰 도장이 있었어. 문은 판문이었어. 외양간 두 개 길이의 넒은 도장이니까 많은 물건들이 보관되어 있었어. 청아의 키보다 큰 독들이 여러개 있었는데 정미된 쌀이나 보리들이 가득 담겨 있었어. 청아에게는 보물창고 같았지. 가을에 수확한 사과를 쌀이 가득 담긴 독 안에 보관해 두었어. 한 겨울에 쌀 속에 있는 사과를 꺼내어 먹는 달달함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곶감이나 감말랭이, 고구마말랭이, 가래떡과 쌀, 강냉이 뻥튀기, 말린 나물들이 보관되어 있었어. 명절음식도 도장에 보관해 두었기 때문에 삐걱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늘 청아가 먹을 것을 쥐고 나올 수가 있었어.


뒤안에는 대봉감나무가 몇 그루 있어서 가을이면 생감을 따서 독에 보관하면 겨우내 홍시를 먹을 수 있었어. 세 아름도 더 되는 상수리나무 한그루와 밤나무가 몇 그루 있었어. 가을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떨어진 알밤이나 상수리를 줍는 것이 즐거움이었어. 그 뒤로는 대나무 숲이 있었지. 대나무숲 가에는 크게 자란 앵두나무 몇 그루가 있어서 봄이면 예쁜 꽃이 피고, 여름에는 빨간앵두가 대나무 숲에서 청아를 유혹했지. 대나무 숲을 헤치고 따먹는 새콤달콤한 앵두맛은 대나무숲의 스산함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었지. 바람이 불면 대나무 우는 소리 때문에 음산해지곤 했지만 앵두의 유혹을 뿌리치게 할 순 없었어.


소리의 외양간은 청아네 집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중앙에 위치해 있었어. 안채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소리의 외양간이 정면으로 보였어. 외양관 문은 큰 통나무 하나를 걸어둘 뿐이었어. 소리를 기둥에 매어 두면 외양간 안에서는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었어. 통나무로 된 구유가 있어서 풀이나 사료를 부어 주고, 한쪽에는 물을 부어 주는 여물통이 있었지. 소리는 언제나 큰 눈으로 온 집안을 둘러보곤 했어. 해가 서쪽으로 넘어갈 때는 햇살이 모두 소리의 외양간으로 몰려왔어. 밤이 되면 소리는 누워서 잠을 청했지. 가장 늦게 잠이 들고, 가장 일찍 일어났어.


소리가 피곤하면 앉아서 쉴 수 있고, 청아가 늘 다가와서 말을 걸어 주며 사료와 물을 부어주고, 풀과 짚을 구유에 채워주는 곳, 그리고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는 곳, 바로 소리의 외양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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