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은 방학동안 소리를 몰고 산으로 들로 다닌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있었어.
그날은 정골로 소 떼를 몰고 가기로 한 날이었어. 정골은 동네에서 가까웠지만 산은 높았어. 청아네 동네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두메산골이었어. 사방 어디를 가든지 산이 있었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하늘이 호수처럼 보이는 곳이었어. 사람들은 가마솥 두껑만 덮으면 가마솥이 되는 지형이라고 해서 가마실이라고 불렀지. 청아네 대청마루에서 마주 보이는 산은 늘 허리춤에 구름이 쉬어 가곤 했지. 산이 험해서 새들도 울고가는 곳이라고도 했어. 청아는 사방으로 산을 구경할 수 있는 동네가 너무 좋았어. 그런데 이제 소리와 함께 산들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기슭을 타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더욱 신났지. 그래서 더욱 동네를 사랑했어.
정골로 오르기 전날에 모두 빈병 한 개씩 가져오라는 지령이 내려졌었지. 산속에 묘지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잔디씨를 훑기로 했기 때문이었어. 다들 빈병을 한 개씩 가져왔어. 부지런하고 욕심많은 아이들은 큰 병을 가지고 왔지만 청아는 작은 병을 챙겨갔어. 방학 때 잔디씨를 훑어서 학교에 가져가면 용돈벌이가 되었어. 다들 기대에 찬 얼굴에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로 소를 몰았어. 그동안 청아는 잔디씨를 훑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 잔디밭에 앉아서 오랫동안 잔디씨를 훑는 것은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어. 청아는 묘지에 가면 잔디씨를 훑기보다는 누워서 하늘의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노래도 하고, 아버지가 책을 사다 놓고, 늘 보며 부르던 시조창도 불러 보았지.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희놈은 상긔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시조창이 끝나면 동시를 읊어 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어. 구름 위에 앉아서 이리저리 다니며 세상을 구경하는 상상을 하거나 양 팔을 넓게 펴고 날아다니는 상상도 해 보았어.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거나 누워있는 청아를 가만히 바라보는 상상도 해 보았지.
그러다보니 청아는 잔디씨를 한 홉도 훑어본 적이 없었어. 그러나 그날은 동네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니까 한홉이라도 훑어보리라는 다짐반 기대반으로 소리의 고삐를 잡고 따라갔어.
드디어 산꼭대기로 올랐어. 소를 풀어 놓고 다들 묘 한기씩 차지하고 앉아서 잔디씨를 훑기 시작했어. 청아는 큰집 오빠 옆에서 잔디씨를 훑고 있었어.
“오빠는 우째 이리 잘 훑노? 돈도 많이 벌었겄네.”
“열심히 하면 되제. 나는 한 되도 팔아 봤다아이가. 내 돼지 저금통장에 종이돈하고 동전하고 꽉 찼대이. 개학하면 배 따서 저금할라고.”
“오빠는 진짜 대단하대이.”
그날처럼 큰집 오빠가 존경스러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청아는 그날은 꼭 한 홉이라도 훑어보리라고 다짐을 했지.
동네 아이들은 보물을 찾는 것처럼 열심히 잔디씨를 훑고 있었어.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고함소리가 들려왔어.
“이 개시키들아. 소나 잘 보고들 있제 뭐하고 있노? 죽을라고 환장했나?”
무시무시한 욕설이 섞인 말들이 쨍쨍하게 들려왔지.
“저 시키들, 압수골 아들 아이가. 정골 올 때마다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 와서 안 올라카다가 왔더만은 또 패싸움하게 생겼네.”
소떼 중 한 마리가 저 산을 넘어 압수골까지 넘어 갔던 거야. 맞은편 산꼭대기로 올라온 압수골 아이들이 소를 때리면서 우리 쪽으로 몰았어. 돌팔매질도 했지. 아아, 소리가 아니길 간절히 바랬어. 그런데 매질에 놀라서 달려오는 소는 소리였어. 소리가 놀라서 달려오니 평화로이 풀을 뜯던 소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했어.
“땡땡, 휘휘휘, 움메움메.”
워낭소리와 소들의 놀란 소리가 뒤섞여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어. 송아지들은 더욱 놀라 어미소의 뒤꽁무니를 치면서 달려오는 바람에 청아는 놀라서 심장이 쿵쿵 뛰었어. 소리 때문에 다른 소들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아 마음이 괴로웠지. 소들이 묘지 주변으로 다 모인 다음에야 소들이 진정을 하고, 안정을 되찾았어.
“저 시키들, 가만 안 놔 둔다. 갔다 오자.”
아니나 다를까! 동네 아이들 모두가 산비탈을 내리달려 맞은편 산꼭대기를 향해 질주하는 거야.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어.
“오빠야, 와 가노? 싸우지 마라.”
청아가 소리쳤지만 소용이 없었지. 청아만 묘지에서 소떼들을 지키고 있었지. 청아는 속으로 기도했어.
‘제발, 제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태산같은 걱정에 휩싸인 청아의 마음은 전쟁터였어. 왜 소리는 저 산을 넘어간 것일까? 아니지. 아무것도 모르는 소가 무슨 죄가 있겠어. 되려 소리가 불쌍하게 느껴졌어. 심한 매질을 당했으니 얼마나 놀랐을까하는 생각이 드니까 소리의 머리를 쓰다듬고, 볼을 부벼 주었어.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제발 큰 싸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었어. 저 산 너머 무시무시한 마을이 있다는 것을 청아는 그날에야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
씩씩거리면서 돌아온 아이들은 모두 묘지 위에 큰 대자로 누었어.
“겁 많은 시키들, 싸우도 못하고 도망갈 기면서 약을 와 올리노?”
“다음에는 본떼를 보여 줄기다.”
“그것들 욕은 억수로 잘하더라. 그 동네 시키들은 욕쟁이들만 있나.”
“맞다. 몸싸움은 우리보다 못하는 것들이 욕만 배웠나.”
다들 한마디씩 했지. 한참을 누워서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 소떼를 몰고 동네로 내려왔어. 아이들은 잔디씨가 절반도 채워지지 않은 병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지.
청아는 그날밤 언니에게 말했어.
“언니야, 나 앞으로 동네 소몰이 안 따라다닐라고. 소리 데리고 우리산에 나 혼자 가면 되지 뭐. 그기 낫겠어.”
청아는 '소리때문에 패싸움이 있었다. 앞으로 소리를 데리고 혼자 소먹이러 가야겠다.' 라고 일기장에 기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