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별이 된 이후 엄마는 산업단지에 있는 공장으로 일을 다니기 시작하셨어. 일찍 출근하셨다가 퇴근하시면 논일, 밭일, 집안의 농사일을 하셨지. 혼자서 사남매를 키우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거야. 방학동안 언니는 어린 동생들과 집안일을 돌보고, 끼니를 담당했지. 언니는 김치도 담그고, 밭의 푸성귀로 반찬도 만들었어.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밥을 지었는데, 밥을 다 펀 다음 남은 불씨로 만든 누룽지를 긁으면 그것만큼 훌륭한 간식도 없었지. 청아는 언니가 준비해 주는 밥상을 늘 맛있다며 한그릇씩 뚝딱 헤치웠어. 언니는 그런 청아를 예뻐해 주고 고마워했지.
청아는 그날도 어김없이 소리를 몰고 동네 어귀로 나갔어.
대장이 된 큰집 오빠에게 물었어.
“오빠야, 오늘은 어디로 가노?”
“돼지고개로 갈라고.”
“돼지고개? 거가 어딘데?”
“문바우골은 전에 한 번 가봤제? 문바우골 지나서 한참 더 올라가면 된다 아이가.”
“엄청 멀리 가네.”
대장 소가 앞에 서고, 일렬종대로 줄을 세웠어. 대장 소가 앞에서 느릿느릿하게 가니까 다른 소들도 느릿느릿 걸어갔어. 워낭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지. 다른 소들은 고삐를 잡지 않아도 순하게 잘도 갔지만, 소리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 고삐를 꼭 붙들고 따라갔어. 동네를 벗어나 넓은 차도에 도착했을 때였어. 갑자기 소리가 뛰기 시작했어. 대장 소까지 제치고 달렸어. 소리의 고삐를 붙들고 끌려가던 청아가 넘어지면서 고삐를 놓쳐 버렸어. 무릎이 깨져서 피가 고이고 따금거렸지. 절뚝거리며 달려갔지만 소리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어. 눈물이 흘러내렸어. 숨이 차고, 걸음은 지쳐버렸지. 도대체 소리는 왜 이렇게 청아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 뒤돌아보니 소떼들이 유유자적하게 땡땡 소리를 내면서 걸어오고 있었어. 청아도 저 무리와 함께 느릿느릿, 여유롭게 걸어가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지.
문바우골 근처에 도착했어. 문바우골로 올라가는 길섶에 모내기가 끝나고 초록이 짙어진 다랑이논이 있었지. 그런데 소리가 모를 맛나게 뜯어 먹고 있는 거였어. 그 모습을 본 청아는 울고 싶었어. 소가 절대 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어. 이제 맛난 꼴을 찾은 소리가 먹이를 포기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어. 소리를 논에서 끌어내기 위해서 고삐로 배를 몇 번이나 세게 치고, 코가 비뚤어지도록 고삐를 힘껏 잡아 당겼지. 겨우 논으로부터 소리를 떼어내자 소 떼가 도착했어.
“우짜근노?”
“큰 일 났대이.”
“어른들이 엄청 뭐라카긴데!”
다들 걱정이 되었는지 한마디씩 했어.
“오빠야, 나는 집에 갈라고. 오빠 니는 다른 소들 데리고 돼지고개까지 잘 갔다 온나.”
'너무 걱정 마래이. 내가 작은 아지매한테 잘 말해 줄라니까."
"응, 고맙대이."
청아는 혼자 소리를 몰고 집으로 향했어. 소리는 청아의 깨져서 아픈 무릎과 속상한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은채 풀을 뜯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경쾌하게 집으로 돌아왔어.
엄마가 퇴근하셨지. 청아는 엄마에게 소리가 모를 뜯어 먹었다고 말했어.
“소를 단디 봐야제. 니는 도대체 뭐하고 있었노? 소가 논에 못 들어가게 해야 된다고 누누이 말 안했나?”
엄마가 청아의 등짝을 세게 쳤어. 청아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흘러내렸어.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어.
“계신기요? 댁 네 소가 우리 모를 뜯어 묵었다케서 왔다 아이요.”
“아이고, 우리 아가 소를 잘못 봤는갑소. 미안합니대이. 미안합니대이. 우리 집에 소 볼 사람이 없어갓고, 어린 아가 보다가 보니 그리 됐다 아임니까! 미안합니대이. 그란데 얼마나 묵었던기요?”
“그리 많이 묵지는 않았는디요... 한 스물 포기 된다 아임니까!”
“미안합니대이. 오늘 당장 심어 놓을라니까 그리 아이소. 지금 바로 우리 논에 가서 모를 패 갖고, 댁네 논에 갖다 심을랍니더. 미안합니대이. "
"괘않습니더. 뿌리 있는데까지 싹다 뜯어 먹어갖고 이식해야 돼서 찾아 왔고예. 이식해 주시며는 뭐 괜않치예.
"지금 바로 이식해 줄깁니더. 이거는 찐옥수순데 가져 가서 좀 드이소.”
엄마는 바깥마당까지 나가서 인사를 하고 또 하셨어. 엄마는 그 길로 리어카를 끌고 논으로 향했어. 청아도 따라갔지. 청아네 논에 있는 모를 스물 포기 깊이 패서 리어카에 싣고 문바우골까지 갔지. 땅거미가 내려앉아 어두워진 길을 말 없이 걸어갔어. 하루종일 공장에서 일하신 엄마는 저녁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소리가 뜯어 먹은 모를 이식해 주었어. 다시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눈물이 빰을 타고 흘러내렸지. 청아는 앞으로는 소리를 더욱더 단단히 지키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