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스팸메일인지 알고 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1년 전 FutureMe 앱을 통해 나에게 보냈던 편지가 도착한 것이었다.1년 전 미국에서 온 청년 volunteer들과 함께 보냈던 편지였다.
나에게 읽어 주었다. 감동이었다.1년 후의 자신에게 보낸 멋진 격려의 말이었다. 나도 1년 후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과거의 나는 어떠했는지 궁금해서 퇴근 후에 일기장을 뒤적여 보았다. 2014년 1월 12일에 시편23편으로 기도한 내용이 있었다. 내용을 보면서 그 심정이 어떠했는지,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2017년 6월 어느날에 "없다 마라"라는 이재규 시인의 시를 적어 놓았다. 그 시절 나를 잠시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다.
미래의 나에게 뿐 아니라 과거의 나에게도 말을 걸어본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 [안네의 일기]를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다.
안네 프랑크가 일기를 기록할 때 늘 "키티"를 부르고 그에게 편지를 쓰듯이 일기를 기록했다.
안네의 '키티' 같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 며칠밤을 끙끙거리면서 일기 친구의 이름을 지었던 적이 있다. 그 이름은 "쑨'이었다. 왜 '쑨'이라고 이름 붙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는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영어를 한참 배울때였으니 영어로 이름을 지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든다.
초등학교 때부터 기록했던 일기장과 이후의 일기장을 결혼 후에도 한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사를 많이 하다보니까 잃어버리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여 남아 있는 것이 없어 아쉽다.
지금은 기록물을 통해 어릴적 나를 만나기가 힘들어서 기억을 더듬으면서 기록을 하고 있다. Daum 브런치 작가가 되어서 어릴적 이야기인 "소리와의 추억"이라는 작품을 만든 것도 어릴 적 나를 기억하고 싶어서이다. 발길 닿지 않는 곳에 피어 있는 들꽃도 사연이 있다. 들꽃 같은 나의 인생의 이야기를, 마음 한 조각을 기록해 본다.
[안네의 일기]의 안네 프랑크가 그 당시에 비슷한 연배여서 더 공감이 많이 갔었던 것 같다. 안네 프랑크가 생각나서 안네 프랑크를 검색해 보았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이트에 잘 설명이 되어 있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
『안네 프랑크의 일기(The diary of Anne Frank)』는 안네 프랑크(1929~1945)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끄는 내용이다. 이 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가족 및 다른 4명과 함께 2년 동안 숨어 지내던 생활을 사춘기 소녀의 입장에서 묘사한 글이다. 그의 일기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혀진 10권의 책 가운데 하나이다. 영문 구글 사이트에서 ‘Anne Frank’를 검색하면 500만 건 이상의 검색결과가 나오고, ‘diary of Anne Frank’는 60만 건이 나올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는 기록물이다. (2008년 기준).
안네 프랑크는 2007년 7월 3일에 발표된 ‘네덜란드의 주요 문헌(De Canon van Nederland)’의 목록에 올라 있다. 그에 관한 내용은 ‘세계대전(1914~1945) 당시의 네덜란드’라는 11번째 설명문 아래에서 발견된다. 그는 또 ‘암스테르담―세계의 책의 수도 2008’의 3개 상징 가운데 하나였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 흰색과 빨간색 체크무늬가 있는 일기장(1942년 6월부터 12월까지 기록된 일기). – 표지가 두꺼운 학교 공책 2권(1944년 8월 1일까지 기록된 일기). – 일기를 쓰고 고쳤던 얇은 종이 360장. 그 밖에 숨어 지내던 동안 안네 프랑크가 쓴 것. – 그가 좋아하는 명언이 적혀 있는 장부책(아버지의 사무실에서 가져온 것) 1권. – 자신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 몇 편을 적어 놓은 다른 장부책 1권.
이 일기는 1942년 6월 14일부터 1944년 8월 1일까지 안네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다. 사춘기 소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일상생활을 1인칭시점으로 이야기하면서 독일의 네덜란드 점령이 유대인들의 생활에 미친 영향을 보여 주고 있다.
1942년 7월에 부모와 두 딸로 구성된 프랑크 가족은 다른 네 사람과 함께 전체 면적 약 100m²의 은밀한 부속 건물에 은신하였다. 이 은신처는 지금도 그대로 존재하며, 1960년 5월 3일 이후 안네 프랑크 박물관(Anne Frank House)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라는 특별한 시기에 한정된 공간에서 살았던 유대인 8명의 일상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그 내용은 모든 사춘기 소녀가 경험하는 문제들을 다루지만, 또한 세계대전 동안 고통 받고 죽어간 수백만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일기는 전쟁 동안 일기장을 잃어버렸거나 일기를 쓰지 못한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다.
작가의 꿈을 품고 있었던 안네 프랑크는 전쟁이 끝난 후 일기를 출판하고 싶었다. 이런 목적으로 일기를 다시 쓰는 과정을 시작하였지만 끝낼 수는 없었다. 어린 십대 소녀로서 그들 세대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그 이야기에 공감하고, 수십 년 전에 기록된 그의 일기 속에서 그들 자신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일기가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주는 감화의 가치는 결코 적지 않다. 오늘날 이 일기는 전 세계의 학교들에서 집단 학살과 인종 차별을 가르치는 데 사용된다.
세계적 중요성·고유성·대체 불가능성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전 세계 65개 언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다. 일기는 사춘기의 소녀가 쓴 것이므로 특히 청소년들은 더욱 공감하였다. 이 일기를 통해 청소년들은 오늘날에도 인종차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배울 수 있다. 안네 프랑크 재단(Anne Frank Stichting)에는 안네의 이야기에 감화한 청소년들의 편지가 지속적으로 답지하고 있다. 그 책을 읽은 수많은 독자가 그 일이 모두 일어났던 곳과 일기장의 실물을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다(해마다 1,000,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고 있다). 그리고 일기장이 바로 박물관 관람의 하이라이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