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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l 12. 2023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를 가다.

 유럽여행_3. 둘째날2

 



바이마르에서 출발해 루터(1483-1546)의 도시 비텐베르크에 도착했다. 루터시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 비텐베르크의 정식 명칭이다.




비텐베르크 성의 입장 마감 시간이 오후 4시여서 일찍 서둘렀던 것이 보람이 있었다.  부헨발트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패싱했기에 비텐베르크 성에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일의 변화무쌍한 날씨는 비바람을 선사했다. 우산을 챙긴 사람, 후트티를 입은 사람, 모자를 쓴 사람과 어떤 것으로도 비를 피할 수 없는 사람의 추억이 다르리라 생각된다. 나는 모자와 스카프 덕을 보았다.




비텐베르크는 독일 작센 안할트주에 있는 도시이다. 1517년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에 불을 붙인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한 곳이다. 루터의 도시라는 호칭을 얻었다. 19세기 말부터 산업도시로 발전했다. 개신교 예배가 처음 열린 도시교회 등 4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독일의 주요 관광지로 매년 6월에 루터의 결혼식 축제가 펼쳐진다.




비텐베르크 성의 정원이 아름다웠다. 찬송을 제창하며 걸어 갔다. 금방 성 입구에 다다랐고, 비텐베르크 성교회와 기념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비텐베르크 성




입장권을 구매해 들어간 입구에는 각종 기념품들이 놓여 있었다. 비텐베르크 성교회로 내려갔다. 성교회 안에는 루터의 무덤이 있다. 다른 곳에서 임종했으나 후대에 루터의 무덤을 조성했다고 한다.




비텐베르크 성교회 입장권_기념관, 성교회 입구




비텐베르크 성교회 내부




비텐베르크 성교회는 루터가 목회를 했고, 종교개혁의 불씨가 일어난 곳이라 소중한 유산인 것 같다. 구석구석 돌아보며 사진으로 담고 계단을 올라 기념관으로 갔다.



루터(1483~1516)는 독일의 신학자이고, 종교개혁가이다.  본래 로마 가톨릭 수도회인 아우구스티노회 소속 수도사제였으나, 가톨릭 교리에 반발하여 파문당하고,  평생 종교개혁가의 삶을 살았다. 모든 개신교 교파들이 루터의 영향을 받았고,  루터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계승하는 교파로는 독일의 국교인 루터교회이다.




루터의 95개 반박문_비텐베르크 성교회 기념관



루터가 95개 반박문을 붙였다는 테제문으로 나왔다. 테제문에는 루터의 95개 반박문이 새겨져 있었다.




95개 반박문이 새겨진 테제문_비텐베르크 성




성교회를 둘러보고 호텔에 짐을 풀었다. 구름이 숨박꼭질하는 변화무쌍한 독일 날씨를 경험하며 독일 사람들의 특성인 '기다림', '인내'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숙소는 깔끔하고 아늑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향한 곳은 비텐베르크 대학과 루터의 생가, 멜랑히톤의 생가다.  루터하우스는 루터가 공부하고 살던 곳이다. 루터하우스는 수도원 건물이었고 비텐베르크 대학의 일부이고, 루터박물관이 있다. 도시교회는 1521년 크리스마스에 루터가 개신교 예배 최초로 개최한 곳이며, 시민마리아 교회는 루터와 폰보라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고, 자녀들이 세례를 받은 곳이다. 주기적으로 이곳에서 설교도 했다고 한다.




매년 6월 두번째 주말에 루터의 결혼식 축제가 열린다. 독일에서 가장 큰 테마 도시축제의 하나로서 비텐베르크 종교개혁 장소에서 열린다. 루터는 도망다닐 때를 제외하면 계속 비텐베르크에 살았다. 그리고 여기서 결혼식도 올린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가톨릭 사제의 결혼은 금기시되었다. 루터의  결혼은 개신교가 교황청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루터는 수녀원에서 탈출하여 비텐베르크로 도망친 수녀를 거두어들여 여기저기 혼인 자리도 알아봐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는 루터가 주선한 혼인이 틀어졌고, 이에 책임감을 느낀 루터가 카타리나와 직접 결혼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1525년 6월 13일 루터는 16세 연하의 카타리나 폰 보라(1499~1552년)와 결혼식을 올렸다.  마르틴 루터와 카타리나 폰 보라의 결혼을 기념해서 토요일의 퍼레이드가 루터 결혼식 축제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




라틴어에 능통했던 폰 보라는 루터의 저작을 직접 읽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신앙에 정통했다. 루터와 결혼하면서 루터하우스에 머물던 수많은 식솔을 먹여 살렸다. 루터하우스 마당에는 카타리나 폰 보라의 동상이 집 전체를 바라보고 있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이 상당했던 시절, 루터가 자신의 아내를 ‘비텐베르크의 샛별’로 칭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단순히 루터의 아내가 아닌 한 사람의 종교개혁가로서 삶을 살았다.




비텐베르크 루터하우스



루터와 폰보라 결혼식_루터하우스 정원 내 포토존




폰보라 동상_루터하우스 정원




멜랑히톤 하우스는 종교개혁을 이끈 개신교 학자 필립 멜링히톤의 거주지였다. 지금은 박물관이다. 멜랑히톤은 루터의 성경번역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친구이자 조력자이다.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쳤다.  




멜랑히톤 하우스
멜랑히톤 하우스 정문에서




멜랑히톤의 생가를 지나 광장으로 향했는데, 멜랑히톤의 동상이 있는 곳이다. 멜랑히톤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는 종교개혁가들을  하나로 뭉치게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신앙고백서는 신앙에 관해서 동일한 생각을 가진사람들로 여기게 하였다.




멜랑히톤 동상_비텐베르크 광장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찬바람 부는 늦은  오후.  설레는 맘 가득 안고 찾아간 식당은 지역 특산품 맥주를 직접 만드는 곳이었다. 루터의 도시답게 컵받침대에도 루터가 새겨져 있었다. 여러가지 음식을 주문해서 나눠먹었다. 수프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짠맛이었다.




밝은 밤에 식사를 마치고, 비텐베르크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식당의 컵받침대_루터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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