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아침을 맞이했다. 호텔의 백미는 조식. 요쿠르트로 장을 위하고, 빵과 치즈를 맘껏 고를 수 있는 만족감에 더하여 모닝 커피는 행복감을 선사했다. 커피는 감미롭고, 부드럽고, 깊고 진했다. 버스를 타고 바이마르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광활한 유채꽃밭이 인상적이었다.
풀다의 숙소를 떠나면서
커피의 맛에 취해 주저앉고 싶은 유혹을 이기고 풀다에서 2시간 30분을 달려 요한 헤르더 목사, 괴테와 쉴러, 바우하우스의 도시 바이마르에 도착했다.
먼저 헤르더 광장에 있는 헤르더 교회를 방문했다.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목사(1744.8.25 ~ 1803.12.18)는 18세기 독일의 '슈투름 운트 드랑(Strum und Dr ang)' 시대의 대표적 사상가이며 신학자·문예비평가이다.
질풍노도 문학 운동의 주역이자, 역사주의의 창시자이다. 민족의 상대적 개체성을 주장하면서도 역사 발전은 보편적 인간성을 최종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여, 괴테, 셸링, 슐레겔, 헤겔 등 동시대의 수많은 철학자와 문학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헤르더 교회_헤르더목사의 동상이 서 있다.
헤르더 동상 앞에서
괴테와 쉴러가 오랜시간 작품활동을 한 도시답게 바이마르 광장에 괴테와 쉴러의 동상이 서 있었다. 고교시절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몇날며칠 가슴앓이를 한 기억을 잠시 떠올려 보았다.
괴테(1749.8.28~1832.3.22)는 독일의 시인·극작가·정치가·과학자. 세계적인 문학가이며 자연연구가이다. 독일문학의 최고봉이라고 일컫는다. 80년이 넘는 긴 생애 동안 활동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같은 베스트셀러에서 [파우스트] 같은 대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도 폭넓은 작품을 내놓았다. 바이마르 공국(公國)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쉴러(1759.11.10~1805.5.9)는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의 2대 문호로 일컬어진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바탕으로하여, 1800년대와 1848년 혁명기의 독일인들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에는 베토벤의 <제9교향곡>에서 노래한 <환희의 송가>와 역사극 《돈 카를로스》, 《발렌슈타인》 3부작, 《빌헬름 텔》 등이 있다.
괴테와 쉴러 동상_바이마르 광장
괴테와 쉴러 동상 앞에서
든든하게 조식을 먹은 탓에 배고픔은 없었지만 바이마르의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골목에 위치한 맛집인 MAGGI 에서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감자튀김과 고구마튀김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는 유럽에서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유난히 붉은 색에 큼직한 고구마는 달콤하고, 먹기 좋은 짠맛에 고소함까지 더해 나를 만족시켰고, 베리음료는 상큼했다.
식당 내부_바이마르
비텐베르크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서 만난 약국 건물은 한자, 영어 외 다른 언어로 약국이라는 표시를 했다. 한국어로도 '약국'이라고 간판에 적시되어 있었다. 바이마르에서 만난 한국어는 무척 반가운 친구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