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 대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by 휴사



이것은 한 책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이렇다 할 목적이 없다.

감상으로 표현하자면 결말로 나아가기 위한 책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책의 초반을 읽을 때

(소설을 읽으면서는 이례적으로) 정말 이렇게까지 내용에 집중이 되지 않는 게 '맞는 걸까'라고 정해버렸다.

그러나 이 감정은 전체 페이지의 7분의 1을 넘어서며 서서히 사라졌다.


왜 사라졌냐 하면 난 도중부터 이 책에 쓰여 있는게 현실에 있는 누군가의 삶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이란 대개는 멀리서, 내 기준대로 바라볼 때 이토록 기묘하고도 동시에 지루하며,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렇기에 알 필요도 없기에 내용을 읽어내는 게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껏 내가 읽어본 모든 책과 나 사이엔 멀든 가깝든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내가 세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감각을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다.그래서인지 특유의 거리감을 느끼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내 일기를 보듯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내용들이 인식됐다.

이는 특정한 등장인물이 나와 비슷한 행동양상을 띄기에 가능하다기보단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느끼는 의문과 같이 외부에서 제공되는 감정들이 내가 겪었던 것들과 성격이 겹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말하니 감이 온다.

소설이라는, 그리고 책이라는 한 장르를 읽을때 느낀 이유 모를 기분 나쁜 감각의 이름을. 그놈은 내가 이야기를 읽으며 겪었던 모든 미시감의 정체였다. 그것은 소외감이다.


내가 읽었던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결국은 착실히 결말과 책에 담긴 뜻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책의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난 소설 속의 그들과 멀어진다. 거기엔 내가 있지 않았으니까.

울면서 그들의 다음을 응원하며 멀어져 왔다.


그러나 난 이번에 읽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평소와는 다르게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고, 어떤 감상도 가지지 않은 채로 책을 전부 읽고 나서 근처에 있던 거울만을 잠깐동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책의 내용처럼 이토록 기묘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

눈앞의 명확한 형태를 갖춘 현실과는 반대로 정해진 바 없이 요동치는 내 심상의 특성을 이 책이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난 왜 가끔씩 이렇게 종잡을 수 없이 흔들릴까? 한번 다시 되짚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발붙인 도시와 나는 그 성질부터 다르기 때문이라고.


나와 다른 이들이 거의 그렇듯

한번 정한 목표를 바탕으로 그에 따라와야 하는 행동을하며 살아갈 모습을 정하지만


원래 사람의 유전자에는 세상에 있는 다양한 목표들이 실려있지 않다.

그저 생존하고 너를 이으라는 하나의 목적뿐.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정한 목표는 거의 대부분이 선구자들이 이미 터놓은 좀 더 우월한 생존방식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끝에 가서는 허무함을 표현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영혼에 목표란 없다. 그렇게 배웠고 믿어왔다.

이 작가가 책을 쓰며 느낀 감정들이 지금으로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이전의 나였다면 이것들을 온전하게 해석하고 나에게 흡수시키는데에 많은 시간을 들였을 테지만

지금에 와서는 세상에 퍼져있는 형체 없는 의미들에서 잠깐씩 눈을 돌려 지금 똑똑히 존재하고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명확히 바라볼 필요를 이 책을 통하여 얻게 되었다.

그뿐인 결론인데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지. 웃음이 다 나오게 하는 책이다.



여기서부턴 내 사족으로. 책에서는 나의 그림자와 나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그림자란 나의 물리적인 육체를 제외하고 나를 이루는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 정체성은 결국 다른 곳에서 베껴온 것이다. 애초부터 내 정체성에 오리지널이란 선택지는 없다.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린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을 까먹고 허무에 빠지는 순간 정말로 죽고 마리라.


이 핵심적 키워드 외에도 책에선 두 가지를 더 깊게 조명한다.

'그녀'와 '도시'.(책의 내용을 몰라도 이 두 가지 단어만으로 각자가 다른 것을 떠올릴 것이다.)



그녀는 나의 이상향, 내지 마음을 둔 곳, 것이다. 잊히지 않는 첫사랑(꼭 사람이 아니더라도)에 가깝다고 말하면 좋을 것 같다고 정했다.


그리고 도시는 그런 이상향과 함께 만들어낸 가치이자 그 첫사랑이 존재했다는 증거이다. 그렇기에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은 곧 이상향을 다시 조우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생각했다.


일단 내 구구절절한 사족은 여기까지면 될 것 같다. 사람들이 이 난해한 책에서 거울 없이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되면 이 책은 주어진 역할을 뛰어넘어 이것을 본 당신에게 무언가를 쥐여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책의 진정한 쓸모가 아닐까 조심스레 나 혼자 외친다.


(내가 이 책에게 받은 것은 상쾌함이다. 표현하자면 극도로 푸른빛을 발하는 신록을 한 입에 삼킨듯한.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아득한 정도의 상쾌함.아마 오랫동안 이 감각이 내게 남지는 않겠지만 그렇기에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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