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죽음의 공포가 이윽고 내일을 살게 해줄 발전소가 되기까지.
내게는 맞지 않는 것이 내 사이즈에 맞는 것보다 많은 이놈의 세상.
이 세상에서 힘차게만 살아가고 싶은데 지병은 날 도와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병과 함께 작동하는 썩어빠진 마인드에 의하여 나는 오늘도 정지했다.
조금이라도 더 강해질 법을 찾아보고 추진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강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가정이나 해보는 이런 마인드와 함께하는 버거운 일상들과 때론 부조리하게만 느껴지는 세상의 모습에서 자신의 체급을 키우려 이젠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심상의 공간을 환기시키는 마인드와 함께 내 루틴을 이어나가니 병과 함께하는 일상이란 게 그다지 어렵지만은 않다 최근에서야 느꼈다.
솔직히 좀 오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여
지금껏 살아온 삶의 비율에서 바라본. 길다면 긴 6년간의 공병생활 중에서도 가치 있다 느낀 마음가짐들을 보여주겠다. 정의 내리는 것은 쉽지만 서술하기는 어려운 그런 사상들이다.
difficult level- hard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이 과정을 겪으며 생기는 오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평소 자신을 예쁘고 보기 좋게 포장해 타인으로부터 내게 향할 감정을 보다 많이 이끌어 내기 위함의 나약함에 빠져드는 오류와 더 암울하게 과장하여 자신의 나약하고 게으른 행실을 포장함으로써 자기 합리화를 시켜버리는 꼴불견의 오류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를 둘 다 겪어보니 끝에 가서 유의미함을 남기는 것은 오직 진중한 태도였고 그러기 위해선 솔직해져야 했기에 먼저 자신의 마음속에서만 하는 말들을 밖으로 꺼내놓으니 비로소 다음 걸음이 떼어졌다.
편법으로는 남들도 다 가는 곳에 위치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지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무의식적으로 내 편한 대로 살고 있었다니.
이런 경험을 순도 백퍼센트로 글로 적어 박제시키니 가슴 안쪽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에 어떤 지점을 돌파하였다 느꼈고 조금씩 답답했던 마음들이 투명해져 갔다.
다들 자신만의 경험을 살려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글을 써보면 어떨까? 산문으로도, 에세이로도 좋다. 이러한 글은 쓰기만 하는 것으로도 평소에 찾지 못했던 진심이 어느 순간에 정제되고, 명확해지니 확실한 성장점이 되어준다고 개인적으로 정한 대목이다.
difficult level- Easy
다음으론 특정한 대상이 정해져 있는. 타인이 되기 싫다고 느껴야 한다.
- 다다익선.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정이다.
아마 어리고 미숙한 과거에 한 번쯤 해본 생각이 있을 것이다. 어떤 특정한 인물을 빗대어 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이다. 한 번쯤 돼보면 어떨까 하는 그런 가벼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진심으로 그 사람이 되어 내일을 살아가고 싶다는 마인드를 말하는 것이다. 그 생각은 반대로 말하면 지금까지의 자신을 내다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가장 주의하여야 하고 멀리해야만 하는 끔찍한 사상이지만 내 경우에는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저편의 마음 가득히 빠져들어 있고, 사랑하게 되는 취미와 업이 있었고 그 일 자체가 나를 표현하는 과정이 담겨있었던 덕분에 자신을 싫어하는 감정과 좋아하는 감정이 매번 옥신각신하며 내 몸을 점유하는 바람에 내게 있어 부러워할만한 타인이란. 그저 배경화면과 엇비슷한 것들이 되어버렸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니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을 확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느껴 차츰 부정사를 가지치기하고 긍정적인 것의 가짓수를 늘리니 끝에 가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이 훨씬 더 많이 남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모습 중에서 싫은 모습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런 식으로 공존하고 인정해 보니 그렇게 꺼려지는 점들이라고 해도 내가 세상에 존재했다는 심증으로써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difficult level- Expert
마지막으로 자신의 주변에 힘을 들일 차례이다.
-이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다. 타인을 신경 쓰고 아껴주고 이해해 주려 노력하는 이가 어른이라 일컬어지는 만큼 이 과정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나에 있어서는 조금이라도 주의의 끈을 놓는 순간 소홀해지는 부분이다. 과연 절망의 시기에서 누가 자신의 주위에 신경을 쓸까 싶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신이 안 좋은 상황에 빠져들수록 주변인들은 그런 나에게 더 많이 자신의 일부-시간, 감정, 물질-을 할애하는데 그걸 그렇게 버려놓고 내 살길만 찾는 행동방식이 과연 옳은 걸까 싶어 타인을 신경 쓰는 행위 자체가 내 건강하고 충실한 삶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할 파츠임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타인 또한 소중한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보다 많은 부분을 포용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다 보니 전보다는 입체적인 시선이 길러지고 그것이 곧 혈기를 다스리는 과정이 되어갔다. 비록 내 고등학생 시절의 공부 수준처럼 형편없지만.
실제론 이와 같은 다스림과 진정감이 같잖은 심장병에 있어서도 이득으로 작용할뿐더러 세상을 선명하게 보는 방법 중에 하나이니 어찌 보면 가장 심화적인 과정이기도 한 셈이다. 어찌 됐건 지구는, 대한민국은 한 덩어리의 촌락이고 이러한 곳에서 혼자만 꾸역대며 살아갈 수 없는 점은 불변의 법칙이니 이런 식으로 타인을 소중하게만 대할 수 있다면야 어떻든 상관없다 느껴졌다.
여기까지가 고민 들여 디뎌본 족적이다.
모든 이는 죽는다.
1. 그러나 무덤밑의 어떠한 이도 한때 선명하게 세상을 살아갔을 것이다.
2. 그렇다면 무언가가 남아 있을 것이다.
3. 그렇기에 진정으로 죽어버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란 게 오늘의 결론이다.
앞선 세 가지 생각들은 서로가 서로의 머리와 꼬리인 한 덩어리의 사상이 되기에 마치 삼단논법과 같이 순서를 밟아야만 성립하게 되는 과정들이다.
여기까지 오면 기어코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들이미는데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살아있을 만하니까 할 수 있는 자기 위안에 그칠 뿐 역시 마지막을 밟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보게 된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은 내겐 너무나 비싸고 사치스럽다고 정해놓았다. 유언장을 쓴다느니 묏자리 예약이라느니 병을 맞이하고 있는 나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심히 오버스러운. 주접에 가까운 행동을 취할 자격도 없다.
고통이 끝도 없이 커져 삶의 템포를 잠재우기 전에
해야 할 것을 묵묵히 하고 싶을 시기에서의 죽음이란 딱 이런 정도이다.
사실은 죽음에 고맙다. 여기까지 생각하게 해주다니.
절망스럽기만 한 죽음이라 정해놓고. 회피하고 부정할수록 따가워지는 고통으로 변질되어서는 나와 내 주변의 타인에게 다가가는 죽음의 못된 특성 그 자체가 비로소 죽음이란게 공포스러울 수 있는 이유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즐기지 못하면 피하라는 흔한 문단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만큼 확실하게 인지한 상태로 맞설수록 내 세상은 더 건강해지고 단지 물리적인 통각에 그칠 뿐인 병은 이 이상으로 날 괴롭히지 못하는 한정적인 존재라고만 느껴지게 해주는 내 소중한 마음가짐들을 여기에 써보았다.
그럼에도 격통이 사라지지 않고 죽음으로 다가가는 몸을 멈출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영혼만큼은 온존 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오늘도 구태여 노력하는 불특정 다수의 여러분들에게 나 혼자 구석에서 조용히 박수 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