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만든 시간, 시간이 낳은 생명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가벼운 고찰

by 휴사


세상에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무수한 이론이 있다.


일부 이론들은 너무도 훌륭하기에

우리의 일상 곳곳에 깊게 침투하여

때때론 한 사람의 생각, 나아가 인생까지 송두리째 바꿀정도로 큰 존재감을 지니기도 하는 논리로 무장하여 때론 통상의 이론에 그치는 대상을 당연한 상식으로 치부할 때가 있다.

세상의 모습을 관찰하는 데 있어 어떤 예하의 이유가 있을 거라 의심이 들 정도로 모든 것에 필요 이상의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의 특징을 십분 살려내고 싶은 오늘

지금 끄집어내고자 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시간이라는 개념

감히 사람이 정의 내려놓은 형태인 기본적인 상식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어 참지 못하고 나 좋을 대로 휘갈긴 갈필이다.




서기 이래. 인간이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모든 체계가 하나씩 조립되어 가는 시기가 있었겠다.

그러한 시기에서 수많은 불안정을 정립하기 위해 그에 따른 수많은 탁상공론이 오고 갔을 것이고

추상적인 개념의 으뜸인 시간조차도 그 영향력을 비껴가지 못해 분명 정립당했을 것이다.

시간은 결국 흐름이다. 그렇기에 크게 두 가지로 나뉘지 않았을까 싶은데


사람만이 갖고 있을 인간 특유의 이성과 감성이 정의하는 흐름과

세상의 본질과 형태의 해석에 초점을 맞춘 물리, 과학, 수학 등등 우리가 속해있는 세상에서의 흐름.

이 두 가지 개념으로 정립됐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분류는 쉽게 표현하자면 문과와 이과가 가진 생각의 차이쯤으로 정의될 것이다.

서로 다른 것을 추구하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멈추지 못하는 전진.

즉. 과거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시간 앞에서도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판이한 시선으로 그 개념을 수립해 나갔을 것이다.


난 그들이 정한 개념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결코 오답은 없었다.

무엇에도 들어맞는 퍼즐 조각처럼 수많은 관념이 하나같이 정답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일련의 오류를 겪는 과정들을 계속 다듬다 보니

나는 누군가가 한 번쯤 가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혼자서 정립하게 된 정답을 내 라이브러리에 쓰기 시작했다.


인간은 부족한 존재이다.

뇌의 이 능력이 무궁무진한 것과는 별개로 아직 원시적인 모습을 벗지 못한 미숙함이 지금에 와서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전하다.

어찌 보면 참 단순한 이 세상에서

우리의 뇌는 충분히 개화하지 못하였으니.


그렇기에 과거의 사람들은 생명이 왜 죽는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나아가 그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적어놓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쉽게 찾아보지는 못했다.

그렇게 나는 부족한 지식선에서 우리는 왜 태어나는가에 대한 의문 또한 조금이라도 정의할 수 없었다.

과거의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생각을 펼쳐놓았을 것이다.

앞으로 흘러가는 세상을 억지로 정의하여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그래서 흐름에 time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당장의 오늘의 모습을 기록하여

우리의 인식선에서 반복되는 포인트를 찾아 그것을 '하루'로 기록하였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 평소라면 눈치채지 못할 자그마한 것들은 끊임없이 하루의 기준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를 만들었다.

세상 만물의 모든 것엔 나이가 존재하며 그렇기에 그 끝이 존재하게 되었다.

개념은 이성이 부여했기에 본능이 부정하는 형태로써 남긴 했지만 그 또한 훌륭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결국 그 자그만 오차에서 발생한 틈 때문에 시간 또한 불완전한 것들이 만들어낸 단편일륜적인 개념으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은 아닐까.

시간의 쓸모란 결국 부족한 뇌가 세상을 편하게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한 모습에 지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난 개인적으론 이 세상은 순환하기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이 미미한 식견으로써는

물리학이 증명하고 싶어 하는 시간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이론을 끝끝내 받아들이지 못했고.
내 비좁은 감수성으로써는 모든 이성적 사고에 따른 감성의 작동 트리거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똑똑히 보이는 현실에 기대를 걸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은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속부터 천천히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소모된다.

그 끝에서 남은 찌꺼기들을 먹어치워 오늘날 모든 생명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다만 이성이 우리의 행동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모든 생명이 소중하단 것을 이해시키고 있었으니

순환함에 이어지며 그것을 넘겨받아 반복되는 굴레가

오른쪽으로만 넘어가는 시계 초침의 불문율이 가지는 부자연스러움에 이유를 부여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아가며 모든 진리를 탐구할 수는 없다고 내 분수가 말해주니

나는 내가 살아감에 있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진실 속에서만 흘러가다가

적어도 가끔은 눈을 환기시켜서 결국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남기는 발걸음을 영감으로 삶의 의지를 이어나가는

이 모습에 만족하며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