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생각하는 죽음은 무해하다.

맑고 행복한 하늘 아래 목을 매달 용기.

by 휴사


'어김없이 늪과 같이 느껴지는 새벽의 침대에서 나는 이제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찾는 충동도 사라져 버려 허공을 향해 눈을 치뜨게만 되어버렸다.'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잠에서 벗어나 눈을 뜨는 그 순간에 자살에 대한 미약한 욕구가 하루 전체를 거무죽죽하게 만들곤 한다.

그 충동이 점심시간이 오기 전까지 지속되어 본 적이 아닌 적보다 많을 정도라 그저 내버려 두기에도 좀 그렇다.


눈을 뜨는 순간 끝도 없이 밀려드는 피곤과 침대에만 박혀있고 싶은 본능이 전날에 한 행동과는 관계없이

기어코 내게 기어 오는 아침들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과 사람의 dna에 새겨진 본능이 서로 상충되어 낳은 결과가 아닐까 하여 가볍게 무시하고 싶었지만 가끔씩 정도가 너무나 강렬하여 누가 건드리는 순간 일선을 넘어버릴 것만 같은 민감함에 소름이 돋았지만

뭐. 어김없이 점심에 허기를 달래면 약간 가라앉기도 하고.

또 어쩔 때는 저녁 식사시간 전의 잠깐의 여유에 완전히 무너지기도 하는. 명줄이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하는 하루살이 같은 자학의 감정을 잠들기 전에 묵묵히 넘겨버리고

아침이 오기 전에 잊어버리는 나날이 연속되니 이제는 이런 과정의 반복을 무디게만 대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간과하면 안 될 것만 같다고 짧은 생각을 거치지만 이미 종말의 생각은 일상의 일부가 되어 그렇게 목으로 넘기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기약 없이 반복됨에 다행이라고 할지 위험하다고 해야 할지 아직까지도 확답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처음에는 길거리에 매캐한 공기들이 만연한 아침이 그러한 생각들을 걷히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단정해서 바로 환경 탓으로 돌려본 적도 있으나 현시점. 전방의 군부대에서 온몸으로 맞는 시골짝의 상쾌하기 그지없는 멍청한 공기에도 충동은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있으니 주변의 환경에 대한 탓은 그리 유의미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역시 답이란 놈은 언제나 회피하고 싶은 곳에서 떡하니 자리 잡고 있겠지.


나의 지병. 나의 무력. 매일의 반복. 그것들은 내게 있어서는 너무도 당연해져 버린 것들.

내 무의식의 귀퉁이에 미처 치워내지 못할 정도로 나에게 깊이도 박혀있는 것들이 진짜배기 이유들 되시겠다.

사람은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리 쉽게 자멸의 감정을 품지 않는다.

많고 많은 것들이 실타래처럼 꼬여버려 이내 포기하는 게 편하다고 정해버리고야 마는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개인의 사정이란 끝도 없이 다양하니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는 소리이다.


죽음의 예언이 한 차례 지나간 점심때쯤에는 이런 식의 다양한 생각을 하는 요즘.

지금 내가 사회에 있었다면 분명 조금이라도 더 바빠서 이러한 사치를 부릴 허락이 떨어지지 않겠지.

그래서인지 나는 한편으로는 군대라는 곳에 갇혀있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1부터 8까지 군대라는 곳은 감옥의 특성을 띄고 있지만 나머지 2의 여유가 있는 감옥이라서 할 수 있는 생각도 있나 보다.

때론 너무나 바빠 내 몸을 보고 달라붙으려 마음먹은 죽음조차 저 뒤편으로 제쳐버리기도 하고.

이렇게 때로는 infp 스럽게 끝없이 이어지는 독백도 하게 해 줄 여유 또한 분명하게 있는 공간이니 말이다.


이러한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설득력 없는 이유란 끝도 없이 있었다.

바쁜 아침은 죽음을 미루게 해 주고

미뤄둔 죽음은 이윽고 음울한 밤에 휘감겨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니

시작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아침에만 남겨두어야 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밤을 꿈속에서 지새워서 필연적으로 목이 건조해지는 아침에 그저 하루의 시작이란 이유로 딱 오늘까지만 살아볼까. 하는 목마름으로부터 초연히 하루를 넘기게 해주는것이 늘 아침이기도 하고.


또 어쩔 때는 잠자리에서 일어난 내 주변에 있어주는 이의 지겹기만 한 얼굴에서 가끔씩 그리운 얼굴이 비치는 아침에 감사할 때도 있으니까

아침에는 역시 죽음 따위란 무해하다.









나의 지병. 나의 무력. 나의 반복. 오늘도 시작 되겠지만 이젠 별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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