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충의 가치보존법
벌레와 인간의 너무나도 다른 면모를 쳐다보자니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by
휴사
Mar 30. 2023
곤충의
여
생을 자세히 보고 있자면 그들은 참으로 솔직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 생물의
초안을 구상한 신이 있다면 어떤 의미를 담아 그렇게 설계하였을지 참으로 궁금했다.
나의 관점으로 보자면 벌레란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 자신들로 지구를 덮는 게 삶의 목적처럼 보이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벌레들의 사회에선 유충이 성충 이상으로 대접받고
성충 이상으로 가치 있게 여겨진다.
성충은 그저 유충만을 낳기 위한 매개에 지나지 않음에도
난 대부분의 곤충을 성체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왜일까?
모든 벌레들은 새끼를 길러내고 지구를 자신들로 점유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생물처럼 보이지만
매미의 성충도, 벌의 성충도, 나방의 성충도 마치 그들만의 고충이 있는 것처럼 하나같이 화려하고, 또한 정밀하다.
어릴 때는 별 다를 것 없이 비슷비슷한 모습이었고 그런 미숙의 시기를 벗어나서 각자가 새롭게 변태한다.
마치 어렸을 때는 다들 통통했지만 크고 나서 다시 만나니 각자 너무나 달라져 있는
나의 옛 인연들처럼 말이다.
내 삶이 그런 모습이어서인지 나는 벌레들조차 성체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아무리 발전한다 한들.
끝끝내 생물 특유의 생존만을 위한 이기적이고 순수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아무리 아이를 낳아대
도, 세상에 나의 족적을
남겨대
도 그것은 언젠가 스러진다.
다만
나의 것
을 기억해 주는 다른 존재가 있기에 아주 잠깐일지라도
내 부스러기들은 유의미한 형체를 지니게 된다.
그것이 우리와 벌레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나는
(당연히)
나의 아이가 없다. 그래서 내가 세상을 살아갔다는 증거는 글과 그림이 대신해 주었다.
죽어가고 약해지고 지병 때문에 아프다 하더라도 고통스럽지만은 않았다.
두 손과 양쪽의 뇌가 오늘도 열일하는 삶 속에서 풍요롭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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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가치
벌레
Brunch Book
초년생의 관
01
나만의 절멸 우회로
02
성충의 가치보존법
03
"아파 죽겠는데 뭐하러 살아?"
04
생명이 만든 시간, 시간이 낳은 생명
05
아침에 생각하는 죽음은 무해하다.
초년생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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