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불에 멈춰 서는 것은 실로 답답해

초록까지 기다리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by 휴사


기분이 나빠지는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횡단보도 앞에서 언제까지고 황망히 서있었던 기억이.

횡단보도 간의 간격이 널찍이 떨어져 있어 구태여 돌아가고 싶지 않은 도시의 외곽에서 나는 맞은편으로 건너가 목적지로 향하는 걸어가야만 했던 평소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뇌 시물레이션 안쪽의 오차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에서 고장 나버린 보도용 신호등이 내뿜는 끊길 기세가 보이지 않는 붉은빛에 의해 나는 점점 답답함에 잠식되었고 이윽고 전진의 충동에 휩싸였지만 결국엔 그 길을 우회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고장 난 줄도 몰랐던 신호등이 색을 바꾸지 않자 그냥 무단횡단을 할까 했지만 주변 사람들도 타인의 눈치를 신경 쓰는 듯 그 자리를 피해 저 너머의 건널목으로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건너가길래 나도 자연스레 행렬을 따라가 건너갔던 기억이 있다.

대충 그런 식의 기억이 책을 읽다 얻은 영감과 겹쳐져 수많은 생각으로 분할되었다.

나를 멈춰있게 할 만한 이유는 내 주변에 만연하여 있고

그 이유들을 무심코 받아들여 멈춰 서면 이윽고 무의미한 죽음으로 가속하는 꼴이 된다.

마치 바이크만 탔다 하면 빨간불 따위 지나치고 쭉 가속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멈춰서는 게 죽음으로 더 빠르게 달려가는 행동처럼 느껴지는 데에는 내 개인적인 사정들이 일조했다.

트렌드에 민감하여 지금도 끊임없이 변화하며 날 기다려주지 않는 내 전공과는 반대로 무엇을 배울지 갈피를 잡지 못해 정체된 내 성장세가 날 죄어온 이다.

고여버린 물은 필연적으로 썩어버리고야 만다. 그런 식으로 상해 가는 건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잔잔한 강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활동성을 지닌 사람이란 존재가 억지로 틀어박혀 있는 상황이라면 고여있다는 것만으로 썩는 정도가 아니라 깎여나가고, 무너지고, 황폐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목에 이르러선 다른 이들의 행동에 대한 근거를 본받아볼까 싶어 몇 가지 변화를 추구해 보았다.

먼저 내 삶의 빈 자리에 충족되어야 하는 물욕과 마음의 풍요로움을 위한 생각을 굴렸다.


새 폰

새 몸

새 사상

새 그림

새 알람


즉흥을 쥐어짜니 위의 다섯 가지 요소들이 스멀거리며 떠올랐다.

이놈들은 어디까지나 +

플러스적인 요소들이다.

비어있는 사람에게 더하기란 임시방편이 되어주지만

나처럼 쓸데없는 생각이 스스로를 잡아먹고 있는 타입은

빼줌으로써 성장하니 여기까지 온 이상 마이너스도 열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어지럽힌 채의 방

음험한 사상을 담은 책들

더럽고 게으른 버릇과 습관들

지갑 속의 돈

너저분한 머리

사이즈가 맞지 않는 낡은 신발들

일방통행의 인간관계

비관으로 가득 찬 비판

냉장고 속에서 몇 주째 뒹구는 식품들

너저분한 쓰레기


나열해 보니 빼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이런 상황을 마주함으로써 얻은 건 나는 결국 빼야지 성장하는 인간이라는 확신만 굳혀진 결과다.

아. 물론 그 점이 불만스러운 것은 아니다.

정체 돼버린 삶은 이렇게 앉은자리에서도 바로바로 쓸 수 있을 정도로 명확히 보이는 이유에서부터 만들어지고 그런 것은 날 부패시키는 지름길이니 앞으로 취해야 할 행동도 정하게 되었으니 불만은 추호도 없다.

앞으로는 거북이 발걸음으로 걸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언제가 되었든 도달하기만 한다면야 아무런 상관이 없기에 밑줄을 쫙쫙 그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훗날 나는 이 생각을 빨간불이나 다름없다고 정의내린다. 언제가 되었든 도달할 수 있다는 자만감은

나에 대한 주관적 고평가에서 비롯된 다분한 미숙함이기에 다시 정정하겠다.

천천히 가도 도달한다는 말은 불변함의 썩은내이다. 다시 반복한다. 내가 사람이,사회가 세운 특정한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썩은내를 풍길 불변함의 오류이다.)


사족으로 한 가지 더 추가할게 방금 막 떠올랐다.

냄새도 빼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