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다 보면 어느새 저며든다
시기보다 이른 더위가 찾아온 건 아닐까 되뇔정도로
햇살만 따사로웠던 요즘.
그 더위라는 녀석 덕분에 여름만 찾아오면 어김없이 한 번은 내뱉는 생각을 끄집어내주어
새삼스럽게도 작년을 건너왔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줬다.
어느덧 해가 지려한다. 그럼에도 후덥지근한 공기가 아직 가득하니 마치 여름을 내 몸에 새기는 느낌이다.
이리 가득이 내 몸에 새겨지는 더위가 뿌리는 노을이.
저 해가 만드는 그림자에 덮인 창록색 잎에 이제부터 점점 주황색이 스며들 거란 느낌을 주는 매력이
여름에는 있다.
내게 있어 여름이란
매번 짜증 나는 더위가 덮쳐대도 그 더위로 하여금 초록색이 익어가는 계절이니까.
다양한 것들에 지쳐 집으로 돌아와 나의 흑색 방에 시선을 돌렸다.
문득 예전에 재밌게 읽고 버려 둔 책이 떠올라 아무 곳이나 펼쳐 페이지에 코를 대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 단풍과 봉숭아의 향이 종이를 타고 흐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오지도 않은 다음 가을을 떠올린다.
이렇게나 쉴 새 없이 작용하고 변화하는 세상에서 잠깐만이라도 눈을 떠보자고 다짐함에도 피로에 몸을 담그고 있다 보면 이와 같은 소소한 것들과 점점 멀어진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선
어떤 것도 날 압박하지 않는데도 나는 보이지 않는 압박에 떠밀린다. 아마 정말 힘든 시기가 찾아오면 우산으로 눈물을 가릴 정도로 울어버릴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직 그런 눈물을 흘릴 자격은 없다.
그런 세찬 울음은 굳이 여름에 장맛비가 내리는 이유와 겹칠 정도쯤은 되어야 그제서야 나오지 않을까?
냉각할 스트레스조차 아직 찾아오지 않았지만
아마 조금만 더 지나면 더위가 푹 익혀버린 가을이 찾아오겠지. 하면서 오늘도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