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주어진다면 그 의문이 들지 않는 순간들을 느끼며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어린 시절에 무엇이든 “왜?”라며 호기심을 품고 질문을 하던 버릇은 어른이 되어서도 “왜?”라는 질문을 삶에 붙여 의문을 품는다.
이 어리석은 의문은 끝이 없을 것이다. 결국 정답도 없을 것이다. 정답이 없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것.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어린 시절 모든 것이 호기심으로 인한 새로움에 하루하루가 마냥 신기하고 즐거웠었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새로움을 잃어가며 많은 것들에 흥미도 사라져 가고 목적도 희미해져 간다. 그러기에 마음 한구석 숨겨져 있는 어린 시절 호기심은 삶 자체를 타깃 삼아 새로움을 찾으려 자꾸만 의문을 품는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굳이 바라지 않아도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새로운 세상과 충분한 자극들은 언제라도 찾아올 수 있다.
당신이 태어난 것처럼.
삶이라는 영화 한 편.
삶을 설계할 때에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삶을 개척할 때에는 감독이 되며, 자연스레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 앞에서는 배우가 된다. 세상은 촬영장이고 집착하게 되는 물건들은 소품들일뿐. 함께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주연이나 조연, 혹은 엑스트라. 그러기에 호흡을 잘 맞춰야 한다. 내게 기대하는 눈빛으로 보는 사람들은 카메라맨,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람들은 관객들. 그러기에 더욱 긴장을 놓을 수는 없다. 사람들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길 바라며 원하던 장르에 맞는 각본으로. 아침 녘 언제나 제시각 시간을 지켜주는 새들의 화음으로 시작하는 BGM도 빠질 수 없다. 되도록 NG 없이 cue.
살아간다는 것.
내 마음대로 된다면 운명은 만드는 것.
내 마음과 같지 않다면 운명은 정해진 것.
어쨌든 내 마음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