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

by 예네

생명은 모두 고통 속에서만 죽으란 법은 없다.

죽을 때에 여러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그중 엔도르핀과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있다.

사랑할 때에 나오는 호르몬과 같은 호르몬이다.

죽음은 사랑할 때처럼 향긋할 수 있으며 편안함을 가져다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과 이별할 때처럼 마음 한구석이 크게 메여올 것이다. 사랑할 때와 같이 진정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죽을 때가 삶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이고 싶다.

죽음이 살아가며 온갖 오르내리는 과정 끝에 맞게 되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아닌 애초부터 마지막 목적으로 삼고 순간들에 의미를 담아 그 피날레를 향해 나아가고 싶다.

삶이라는 영화 한 편을 다 찍고 나면 장례식의 조문록은 엔딩 크레디트가 되고 조문객의 울음소리와 망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엔딩곡으로 들리며 한 껏 시끌벅적 해진 후에 고요함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죽음이라는 지금의 끝이 있기에 우리의 살아감은 하루하루가 더 소중해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인간뿐 아니라 몇 고등 동물들에 의해서도 행해지지만 유독 인간만이 그토록 많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다. 현재의 삶보다 더 평안해지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사후에 아픔도 슬픔도 느끼지 못한다면 평안하다는 느낌조차 느낄 수 있을까.

차라리 현재의 99%의 불행 중 1%의 행복이라도 느끼기 위해 살아가는 게 나을 것이다. 오히려 99%의 불행에 비한 1%의 행복은 매우 희귀하고 드물기에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겠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그 1%의 큰 행복으로부터 도피한 것이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세상을 등지게 된다면 99%의 불행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뿐이다.

어쨌든 죽음에 대하여 작게나마라도 죽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삶의 행복이 있어 우리를 이곳에 머물게 하고 결국 불행과 고통으로부터 자유케 할 것이다.


한편으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의 죽음은 ‘최후의 선택’이 아닌 ‘최선의 방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무섭고 무겁다. 그래도 두려워 말라.

태어난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죽는 순간 또한 기억에는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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