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e

공허한 평온함

by 예네

해가 저물어 간다. 길게 뻗친 뭉게구름은 서쪽 하늘에 얹혀 핑크빛과 주황빛을 띤다.

TV에서는 프라임 타임이 시작되고, 사진작가에게는 하루 중 두 번째 골든아워가 찾아온다.

고흐의 눈동자에는 어떠한 빛깔로 비추어졌을까. 황색 변병증을 앓았던 그의 눈빛에는 샛노란 뭉게구름으로, 레몬맛 솜사탕처럼 새콤해 보였을까. 맥주를 머금은 솜뭉치처럼 보였을까.


나에게 이 시간대는 구름이 축 늘어져 한껏 게을러 보이는 빛바랜 황혼이며, 반대편 하늘에서는 은은하고 짙게 푸르스름 해지며 달과 별들이 어둠으로 바뀌는 세상을 밝혀주려 희미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파란 시간이기도 하다.

난 하루 중 다른 시간대에 비해 이런 양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조화로운 이 시간대가 무척 좋다.


하루를 마무리 해가는 시간임과 동시에 새로운 밤을 맞이하는 시간이다.

아침에 분주했던 출근길에 비해 한 껏 가벼워진 발걸음의 퇴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입가에는 하루의 고됨 속에 숨겨진 여유로운 미소가 담겨 있기도 하다. 시원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직 후덥 한 온도의 낮 시간에 미처 하지 못한 강아지와의 산책을 하는 이들, 어떤 저녁식사를 해 먹을까 궁금하게 하는 장거리를 한 보따리 가득 들고 가는 사람들.

건물이 곳곳마다 아무리 높게 솟아 벽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네온사인이 거리마다 어지럽게 빛나고 있다고 해도 이 하늘은 어느 곳에서라도 모두에게는 똑같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이며 풍경임을 증명한다.


그리고는 이내 그런 하늘을 바라다보면 평온한 마음과 함께 공허한 느낌이 밀려온다. 저물어가는 석양을 보며 평온했던 마음이 반대편 하늘에서 짙푸르게 엄습해 오는 모습에 묻힐까 공허해지기라도 하는 걸까.

그 공허한 느낌은 내 마음을 꽉 채워버려 이미 내 마음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처럼 온전한 내가 된다. 중력 없이 머무르지 못하고 붕 떠 있는 느낌.


이 공허한 느낌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평온함에 그저 쓸모없는 무의식의 이기적인 욕구들과 두려움, 비이성적인 소망들이 살짝 얹혀 느껴지는 것뿐이다. 공허한 평온함. 이 텅 빈 느낌은 그저 평온한 것이다.


평온하다는 것은 속이 시끄럽지 않고 아무렇지 않다는 것인데 공허한 느낌이 이런 느낌과 다를게 무얼까.

지는 해를 보며 평온해지는 마음에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달과 별들이 수 놓여가는 짙푸른 하늘은 마치 공허한 느낌을 다른 많은 것들로 채우기 위해 주어진 내 마음에 마련된 크나 큰 공간으로 느끼게 해 준다.

우리는 그 공허함을 채우려 중독을 바라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저무는 석양도, 자연스럽게 짙어져 가는 파란 하늘도 같은 하늘에서 아직 섞이지 않은 믹스 커피처럼 곧 내 마음을 잘 저어준다.

공허함과 평온함이 공존하는 이 자연의 순간은 일상에 긴장하고 조급해하고 있는 내게 좀 더 유연함과 자연스러움을 안겨 준다.

해가 다 지고 나면 세상은 어둠으로 묻힐 것이고, 다시금 달이 지고 나면 세상은 밝게 빛날 것이다.


이제 나는 내일 하루의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을 기다린다.

‘늘’과 ‘새로움’이 서로 사랑한 아침이라는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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