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오프로드 여행 31

초원의 生과 死

by 만보

초원의 生과 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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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지지 않는 죽음의 풍경


여행길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 흩어진 하얀 뼈들, 그리고 바람에 식어가는 죽은 가축의 사체였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나에게는 어색하고 서먹한 풍경이었다. 이곳에서는 삶과 죽음이 감추어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을. 초원은 생명의 무대이자 죽음의 장이며, 두 세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순환의 공간이었다.


유목민들에게 가축은 그저 셈할 수 있는 재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하늘이 내린 선물이며, 죽음조차 자연에 돌려주는 귀환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땅과 하늘과 공동체로 이어지는 귀속이다. 초원에 드러난 뼈는 방치된 흔적이라기보다, 생명의 순환이 남긴 필연의 문장이다.


그 풍경 앞에서 나는 가만히 오래 서 있었다. 뼈만 남은 자리에 바람이 스치고, 새들이 날아와 한 조각을 물고 갔다.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의 시작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문화는 죽음을 감추고, 장례식장에 가려두려 하지만, 초원은 죽음을 삶 속에 당당히 놓아두고 있었다. 마치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이 더욱 깊어진다.’라는 자연의 섭리를 묵묵히 말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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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몽골 개 방하르의 죽음은 유목민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방하르는 게르와 가축 무리를 지킨다. 위협하는 늑대와 맞서는 전사적 존재다 죽은 방하르는 집안의 수호자으로 남아, 그 영혼이 가축을 지켜준다고 믿으며, 초원의 바람 속에서 떠돌다가 환생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몽골 속담에는 ‘말 없는 사람은 날개 없는 새와 같다.’라는 말이 있다. 주인과 함께 한 말은 영웅적 희생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인간의 죽음과 다르지 않게, 그 죽음에도 존엄과 사명이 깃들어 있음이다. 때문에 사체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선조 때부터 만든 어워에 뼈를 장식하듯 올려놓는다.



내려놓음과 빌려온 시간


이러한 풍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미묘하게 울렸다. 정년퇴직을 마치고 예순이 넘어선 지금, 나 역시 주변인들의 부고 소식을 접할 때 생과 사의 경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 ”

“정의롭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무겁게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길에서 거창한 물음에 대한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내가 쓰는 글 한 줄,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잠시 생각의 여백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족하다.”

라는 의미를 새삼 곱씹게 되었다.


또 하나 내 가슴을 치고 간 것이 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가슴속에 남아 있는 돌멩이 같은 숙제를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지금까지 쌓아두었던 미련과 후회, 이루지 못한 바람들이 마음속에 돌멩이처럼 남아 있다. 초원에 드러난 뼈들이 결국 바람과 흙 속으로 스며들듯, 나도 언젠가 그 돌멩이들을 내려놓을 날, 그날이 오기 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고 싶었음을, 초원의 바람에 맡기려 하는 마음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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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초원의 바람을 가슴으로 안았다. 그 바람 속에는 죽음의 냄새와 함께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섞여 있었다. 메마른 대지에 어느 작은 생명의 새싹이 움트는 모습을 보면서, 삶은 결국 자연으로부터 빌려온 시간이고, 죽음은 그것을 되돌려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았다.

이제 남은 여정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빌려온 시간 동안 글 한 줄, 사진 한 장, 말 한마디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덮어주고, 내 가슴속 돌멩이를 하나씩 내려놓는 것.

이것이 몽골 초원이 나에게 가르침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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