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에서 멈출 때, ‘채근담’을 읽고서
초원의 밤은 고요하다. 게르 안에 누워 하루의 먼지를 털어내듯, 가만히 채근담 책장을 펼쳤다. 오래전부터 옆에 들고 다니던 책이다.
옆자리에 있던 기후씨가,
“책 읽고 계시네요. 무슨 책이에요?”
“채근담이란 책인데, 한가할 때 읽기 편해요.”
낯선 대지 위에서, 길 없는 길을 달려온 하루 끝에 읽은 채근담의 문구는 이상하게도 꼭 제자리를 찾은 듯 스며들었다.
초원은 그저 드넒은 공간일 뿐이다. 그 위에 홀로 울려 퍼지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들을 때, 채근담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靜中養德 閒裏修心.’
‘고요 속에서 덕을 기르고, 한가로움 속에서 마음을 닦는다.’
도시민의 삶은 늘 바쁘고 시끄럽다. 스마트폰 알람이 하루를 깨우고, 스케줄 앱 속의 빼곡한 일정은 손과 눈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초원 언덕 위에 차를 멈추고 서 있으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린다. 풀잎을 스치는 바람, 멀리서 양 떼의 움직임, 그리고 내호흡이 어우러진 고요. 그것은 무의미한 침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고요다. 그 안에서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욕심도 두려움도 바람에 흩날려가고, 남은 것은 맑고 단순한 마음뿐이다. 채근담이 말하는 고요 속의 성숙이란, 바로 이런 순간에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프로드 여행이 여유롭고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깊게 파인 차바퀴 흔적, 돌로 가득한 언덕길, 순간의 부주의로 빠져버리는 진흙탕은 우리를 시험한다. 길 없는 길을 헤치다 보면 방향을 잃고, 지쳐 멈춰 서고 싶어질 때도 많다. 그럴 때 채근담의 문구가 스친다.
“履窮途之險 益知行路之難.”
‘험한 길을 걸어보아야, 비로소 길을 걷는 어려움을 알게 된다.’
평소 달리고 걷는 아스팔트 보도블록 길은 누군가 이미 닦아놓은 길이다. 그래서 길이란 늘 당연히 있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오프로드는 그 착각을 단숨에 깨뜨린다. 차체가 기울고 바퀴가 헛도는 순간, 길이란 결코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게 된다. 길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길을 걷는 법을 다시 배운다. 이 배움은 누군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갈 때는 알지 못했던 ‘길을 걷는 어려움’을 깨닫는 과정이다.
오프로드는 그저 그렇게 바퀴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이 아니다. 매 순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어디로 달릴지, 어떤 흔적을 믿어야 할지, 어느 순간 멈춰야 할지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험난한 길에서, 성급한 사람은 파인 곳에 빠지고, 두려움 많은 사람은 멈춘다. 하지만, 아무리 험난해도, 주변을 차분하게 살피며 길을 찾아가는 사람은 멀리 간다. 채근담의 이 구절은 결국 삶의 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려준다.
오프로드 여행은 두 가지 극단의 체험이다. 고요 속에서 욕망을 비워내는 것과, 험난한 길에서 배우며 단단해지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질 때 비로소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 된다.
초원의 길은 정해진 것이 없다. 정답이 없다고 표현해야 옳을 것 같다. 오히려 그렇기에 길 위에서 배움은 더 분명하다. 고요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험난한 길에서 삶을 다시 배우는 것. 그것이 오프로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며, 수백 년 전 채근담이 일러주던 지혜와도 맞닿아 있음이다.
게르의 등잔불 아래 책장을 덮자, 하루 달려온 길과 책 속 한 구절이 묘하게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것이야말로 오프로드 여정이 내게 건네는 또 다른 풍경이 아닐는지.
후기 : 채근담 한 줄 한 줄이, 여행을 마친 나에게 이렇게 글을 남긴다.
眼前放得寬大 後日回頭不至悔吝.
當前著得清醒 異時追想不致昏迷.
눈앞에서 넓고 크게 보아야, 훗날 돌이켜보아도 후회하지 않고,
지금 일을 맑고 분명히 해야, 훗날 떠올릴 때에도 흐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