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죄송합니다 이런 글을 썼기에
#일상글 2
텅 빈 강의실이 하나 둘 사람들로 채워지고,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높아질 무렵 교수님께서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셨다. 정규 학기 중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저번과 똑같은 옷차림을 한 교수님의 손에 들려 있는 두꺼운 전공책이 가느다란 체형에 비해 너무 버거워 보인다. 교수님께서 천천히 학생들을 둘러보시는 와중에도, 학생들은 교수님이 마치 게임 속 NPC인 마냥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태블릿 PC로 오늘 강의에 쓰일 ppt를 미리 띄워 놓았다. 물론 예습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강의를 듣기 전에는 그림만 삽입되어 있는 이 불친절한 ppt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몇몇 이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눈치를 주고 나서야, 강의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교수님께서 온화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네셨고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한 20분 정도 흘렀을까. 오늘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있는데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며칠 전에 직장인들을 상대로 강의를 했었는데.. 여러분들이랑 많이 다르더라고. 앞 줄이 꽉 차 있어, 꽉. 그리고 내가 질문을 하면, 다들 손을 번쩍 들고 자기가 대답하고 싶어서 난리야 아주. 왜 여러분들이랑 다를까 생각해 보니, 여러분은 졸업이 목적이고 그 사람들은 학업이 목적이잖아? 그래서 차이가 큰 건 아닐까 싶어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대학교에 입학하고 강의를 들으면서 진정 무언가를 배워가는 보람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시험만을 목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강의 시간에 배운 내용이 온전히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다. 누가 족보를 많이 얻느냐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시험 기간에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족보를 참고하여 무지성으로 암기할 뿐이었다. 사실 이렇게 공부하면 학점은 잘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항상 시험이 끝나고 드는 의문점은, '그래서 난 이 과목을 통해 대체 뭘 배웠느냐?'라는 것이었다. 공학용 계산기를 빨리 두드리는 법? 족보에 있던 연습 문제의 풀이 과정을 재빨리 상기시켜 그대로 옮겨 적는 법?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다. 내가 이 전공과목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탐구했다는 뿌듯함은 전혀 없고, 시험 시간 75분 동안 혹사시켜 욱신거리는 손목과 시험 전날까지 사용해 너덜너덜해진 연습장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이었다. 교수님의 말씀과 같이 직장인들은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크고, 학부생들은 좋은 학점으로 졸업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 크니 강의를 듣는 태도의 차이가 큰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지 학부생들의 신념에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 수업과 시험의 시스템에도 고질병이 있다고 생각한다. 강의 시간에 강조된 내용이 시험 문제로 많이 출제된다면, 지금과 같은 간극이 조금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진정으로 수업을 열심히 들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쉽게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교 시험은 그렇지 않다. 노력보다는 정보력을 요구한다. 물론 대학교도 사회 집단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인맥과 정보력이 중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학업 시스템의 주를 이루게 되면 학문을 배우고자 하는 주된 목적이 흐려지고, 이로 인한 악순환으로 학구열은 낮아지게 된다.
학생들이 스스로 도움이 되는 지식을 쌓고자 하는 노력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은 학교와 교수님의 도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스스로 무언가를 바꿔볼 노력조차 하지 않는 알량한 나는 남은 학교 생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똑같이 하겠지만, 언젠가는 이 썩어 문드러진 시스템이 꼭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교수님, 감히 이런 글을 써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교수님도 저희에게 죄송하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