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달리기 클럽활동
교사들은 모두 자신의 교과 외에 특별활동(지금은 동아리 활동, 한때 CA- club activity라고 불렀다.)을 하나씩 맡아야 한다. 자신의 교과와 관련된 동아리 활동을 해도 되지만, 그 활동만큼은 교과와 관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관심분야를 찾아 동아리를 개설하는 것이 약간의 일탈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2시간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학교를 잠시 벗어나 등산을 갈 수도 있고 영화 감상을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신청하는 학생들의 선호도 고려해야 해서 신청자가 없으면 폐강되기도 하고 너무 뻔한 동아리는 학생들이 몰려서 운영하기 어렵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20년 전부터 시작한 달리기 동아리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한동안 여학교에만 있어서 하고 싶어도 과연 학생들이 올까 걱정이 되어 지레 포기하기도 했었는데, 생각을 달리 하다 보니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에게 의외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건강달리기반' 이라는 이름으로 동아리를 개설하게 되었다.
애초에 걱정과는 달리 2학년 학생들 17명이 모였다. 왜 왔는지 물어보니 운동해서 살빼야겠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온 아이들 대부분은 비만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정도인데, 아마 내가 모르는 살이 있기는 있는가 보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한 건강 달리기는 처음에는 각오가 보이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힘들다며 아우성이다. 사실 여학생 눈높이에 맞추어서 강약을 조절하고 있지만, 꾀병인지 정말 힘든지 가다가 주저앉기 일쑤고, 그렇다고 운동부처럼 강하게 몰아붙일 수도 없어서, 어떤 때는 목표 지점까지 먼저 도착한 사람에게 아이스크림을 쏘겠다며 미끼를 던지기도 하면서 으르고 달래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건강 달리기이지만 달리기만 할 수는 없고 걷기와 등산과 달리기를 적절하게 병행하였다. 마침 학교 앞에는 외부의 체육센터까지 가는 길에 긴 오르막이 있어 계단 오르기부터 하고 또 올라가면 부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멋진 전망대도 있어 이런 기회에 학교 주변의 모습을 볼 수도 있었고, 또 학교 주변 마을의 주민들의 사는 모습이나 자연환경도 접할 수 있어서 어찌 보면 진정한 교육의 장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연습만 하다 문득 달리기반 아이들이 부산의 마라톤대회에 참여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마라톤대회를 목표로 연습을 하게 하면서 각자의 목표를 정하게 하였다. 마라톤대회라고는 하지만 5km부터 풀코스까지 다양하게 있어 열심히 한 아이들은 3-4명은 10km를, 나머지는 5km를 신청하였다. 마라톤 대회 내내 아이들이 힘들어서 중간에 퍼져서 앉아서 쉬기도 하고, 10km를 완주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부산의 광안대교 상판을 차 없이 달려보는 소중한 경험을 갖게 되어 모두들 보람되고 벅찬 감동을 진하게 느끼게 된 것 같아 그동안의 노력과 고생이 한 번에 날아간 기분이었다.
건강달리기반은 학교를 옮겨서 다른 학교로 갔을 때도 계속 이어졌다. 물론 아이들은 다르지만 다이어트용으로 달리기반을 신청한 거랑 하면서 징징거리고 힘들어하는 건 똑같았다. 그래도 마치고 나면 늘 하긴 잘했다고 해주어서 고마웠다. 아마 그 시간만큼은 달리기를 떠나서 학교와 멀어지고 싶은 마음은 나와 같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아리를 발전시켜서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하고, 더불어 학교에 달리기 붐을 일으킨 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확이었다.(학생 지도용으로 교육청에서 지원해 준 예산을 마라톤 대회 참가비로 활용한 것도 좋은 사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전근 간 학교는 남학교였다. 내심 이제 본격적으로 달리기 동아리를 만들어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달리기반을 모집하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지원자가 거의 없어 폐강되었다. 어째 이런 일이... 달리기를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와서 정말 의아스러웠다. 남학생에게는 달리기가 너무 쉬웠나? 하는 생각도 하고, 도대체 이 아이들은 내신으로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달리기로 시간 낭비가 싫은가? 하는 생각도 하였다. 하지만 싫다면 어쩔 수 없겠다. 아마 처음 달리기 동아리를 만들 때와 거의 10년이 지나서 이전 세대와 다른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기를 학교에 전파시킨 그간의 추억과 즐거움을 생각하면 정말 그때가 참 행복했던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