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찍기 여행 무의미해진 시대… 세계 일주 여행도 태반
어떻게 다녀왔느냐가 더 중요한 ‘여행 등로주의’ 시대 올 것
‘머메리즘’은 일본 산악인이 만든 신조어… “잘 만들었네”
등로주의(Mummerism)는 등정주의(peak hunting)와 구별 되는 개념이다. 세상의 모든 산의 정상에 사람의 발자국이 찍혀 ‘정상에 갔다 왔다’는 것만으로는 더이상 의미 찾기가 무색해졌을 때, 등장한 것이 ‘어떻게 갔다 왔느냐’를 더 중요하게 본다는 의미의 등로주의다. 산악의 역사는 등정주의에서 시작한 산악등반의 역사가 등로주의로 바뀌어 가는 이야기의 기술이기도 하다. 해외 여행이 보편화된 오늘, 코로나19 상황이 여지없이 해외 여행 의지를 삭감해버렸지만, 코로나19는 언젠가는 끝이날 것이다. 그 다음 등장할 것은 바로 ‘어떻게 다녀왔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여행의 방식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정글 마추픽추 트레킹= ‘여행 등로주의’라는 단어를 페루에서 처음으로 떠올렸던 것은 마추픽추를 갔을 때다. 마추픽추 관광을 마치고 쿠스코로 가는 차량을 타기 위해 오얀따이땀보까지 약 세시간이 걸리는 길을 일행들과 걸어 내려오는 중에 나스카에서 만났던 브라질 친구 호르헤를 만났다. 호르헤는 쿠스코에서 나흘 전에 출발해 텐트를 치고 비박을 하는 코스를 따라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차량으로 8시간 가량이 걸리는 쿠스코-아구에스깔린데 까지를 걸어서 왔다고 했다.
“힘들지 않아?”라는 나의 질문에 호르헤는 “너무 재밌어. 너도 다음번에 온다면 걸어오는 방법을 강력히 추천한다”고 했다. 간단히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마추픽추를 그는 나보다 3배나 더 비싼 관광코스를 골라 굳이 어렵게 그 먼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마추픽추를 갔다 오겠다’고만 생각했었지 ‘어떻게 갔다 오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내게 그는 ‘인생을 닮은 여행’의 정수를 송글송글 땀이 솟은 이마를 통해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한번 죽는 것, 인생은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다녀왔다는 것은 사실 죽음 앞에 그 어떤 의미값도 없는 어떤 것이 아닐까.
마추픽추 정글 트레킹은 쿠스코에서 출발해 2박 3일 동안 텐트 숙박을 하면서 마추픽추까지 가는 코스다. 구간구간엔 액티비티도 있다. 짚라인이 설치된 곳에서는 강을 건너는 200미터 넘는 길이의 짚 라인을 타고 강을 건널 수도 있고, 산 정상까지 차량을 타고 올라갔다가 하산할 때엔 자전거를 타고 내려올 수도 있다. 대략 10명 안팎의 사람들이 한 팀이 돼 마추픽추까지 걸어가는 동안 각 국에서 온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나처럼 일정이 빡빡하지 않은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일정이 마추픽추 정글 트레킹이다.
▶‘어떻게’가 중요해= 2010년 산악인 오은선씨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이 논란이 됐었다. 칸첸중가에 올랐느냐 못올랐느냐가 핵심이었다. 결론은 오은선은 칸첸중가에 오르지 않았다로 결론(한국산악연맹)이 났다. 15개월동안 8000미터 이상 14개 봉우리를 모두 올랐다는 것이 오은선 논란의 시작이었는데, 오은선은 여전히 “산을 어떤 마음으로 갔느냐가 중요하다”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기억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말씀과도 겹친다. 오은선 논란이 빚어진 이후 국내 산악계에선 오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돼버린 한국 산악계의 ‘등정 지상주의’가 문제의 시작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안타까운 지점은 고난을 이겨낸 이들에게 대중이 보내는 ‘경외’가 곧바로 돈이 돼 돌아오던 사회적 분위기가 오은선 논란의 시작이었다는 점이다. 엄홍길은 밀레의 이사가 됐었고, 박영석은 노스페이스의 이사가 됐으며, 오은선은 블랙야크의 이사로 등재됐었다. 죽을 고생을 한 사람에게 주어졌던 대중의 경외가 돈이 돼버리는 상황에서, 히말라야 등정의 최종 목적은 명예 보다는 돈이 되버리는 슬픈 상황이 현실이 된 것이다. 세계에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등정한 사람은 27명인데 그 가운데 한국인은 무려 4명이나 된다.
1989년 한국에서 여행 자유화가 된 이후 휴가와 방학은 해외 여행을 위한 일정으로 비워지게 됐고, 어지간하면 비행기 한번 타보지 않은 사람이 없게된 것이 오늘의 한국의 상황이다. 개중에는 세계일주를 했다는 분들도 적지 않고 나처럼 먼나라 또는 여행 비선호국을 즐겨 찾는 분들도 많아졌다. 코로나19가 끝이나면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과거처럼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날 전망이다. 코로나19 이전의 여행과 이후의 여행이 달라질 점이라면 이제는 어떻게 다녀오느냐가 중요해지는 여행이 될 것란 점이다.
중국인들의 ‘떼관광’이 논란이 되는 지점들이 많다. 가게를 전세 내서 다니는 중국인들은 명품 쇼핑과 떼관광의 힘 덕에 한국에선 주요 외화 벌이의 대상쯤으로 여겨진다. 따지고 보면 여행자유화 초기 한국인들의 여행 방법도 비슷했다. 패키지 관광 상품이 다수 팔려나갔고 어디를 가느냐가 월등히 중요했던 시기였다. 한국의 여행이 바뀐 것은 젊은이들의 여행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면서다. ‘배낭여행’이란 단어로 압축되는 한국인들의 여행엔 개인의 자유로운 여행이 중요해졌고, 그래서 대한항공의 ‘어디까지 가봤니?’와 ‘누구나 자기만의 여행이 있다’는 여행카피도 나오게 됐다.
▶인생을 닮은 여행= ‘등로주의’란 단어에 정이 갔던 이유는 그 단어가 인생을 닮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태어남 그 자체가 목적이었고, 때문에 죽음 역시 목적이 된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으 사랑하자’는 주장은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자는 말과 같은 말이다. 여행을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는, 삶을 어떻게 사느냐와 같은 말이다.
우리의 종착지는 모두 같다. 죽음이다. 여행에서 ‘갔다 왔다’는 것은 자체로 완벽무결하기에 도리어 무용하다. ‘갔다 왔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어떻게 갔다 왔느냐’,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느꼈느냐’여야 한다. 모두가 같은 종착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을 인지할 때 우리는 삶과 죽음 사이에 ‘어떻게 살 것이냐’는 여지를 질문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등로주의가 지향하는 ‘어떻게 다냐왔느냐’와 맞닿아 있을 수 있게 된다. 등로주의는 인생을 닮은 단어다. 그래서 정이 간다.
▶등로주의(Mummerism)란 단어는 일본의 오시마 료키치(大島亮吉, 1899~1928)가 만든 신조어라 주장한 칼럼. 읽어볼만 하다.
http://www.mountain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