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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우리가 살 집은 여기에요!

올보르의 작은 아파트가 우리의 보금자리

by 꼽슬이

덴마크에서는 살 집을 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온라인 중개 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집들을 고르고, 부동산 업체나 집주인에게 연락해서 집을 볼 시간을 정한 뒤 직접 집을 본 후 계약서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 역시 그렇게 집을 구한다는 방법론만을 숙지한 채로 일단 에어비앤비만 10일을 잡아놓고 덴마크에 입국했다. 공항에서 에어비앤비까지 가는 길에도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밤늦게 도착해서 이민 가방만 옮겨놓고는 피곤함에 지쳐 쉽게 잠들었다. 새벽에 갈매기들이 깨우기 전까지는….


강인 것 같지만, 해협인 Limfjord가 보였던 그 집은 동향이라 열흘 내내 낮에는 무척 더웠고, 갈매기들이 엄청나게 큰 소리로 새벽 단잠을 깨웠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한강 전망 아파트 가격이 어마어마한 것과는 달리 이곳은 시내 중심부와 해협 뷰가 크게 차이는 없었다.




우리가 살게 될 올보르(Aalborg)라는 도시는 덴마크에서 4번째로 큰 도시로, 도시 안에 같은 이름의 대학이 있고 그곳이 바로 남편의 연수지였다. 그리고 이 도시에 국제학교는 딱 하나이고 어려운 덴마크어로 수업을 듣게 할 생각이 없어 공립학교는 제외하니 학교는 바로 결정되었다.


올보르 대학교와 아이가 다닐 Skipper Clement School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서 그 사이 어디쯤 집을 구하면 되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주 1~2회만 출근하고 나머지는 재택인 남편보다는 매일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가 다니기 쉬운 지역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차를 빌리게 될지 확실치 않았고, 빌리더라도 매일 등하교를 시켜주기에는 무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아이 걸음으로 15분 이내에 학교에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범위를 좁히니 선택지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그 점이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이다.


한국에서도 내내 아파트에 살면서 '나도 한 번쯤은 (전원) 주택에서 살아보고 싶다'라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를 실현하게 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너무 쉽게 날려버린 것이다. 남편은 한 달쯤 지나 차를 빌렸고, 지금까지 쓰고 있다. 그리고 트램이나 메트로는 없지만 버스 노선이 매우 잘 되어 있는 도시라서 대중교통으로 등하교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네덜란드와 자전거로 1, 2위를 다투는 나라인 만큼 자전거 도로 시스템이 정말 훌륭했고, 여차하면 자전거로 다닐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 달 정도로 좀 길게 에어비앤비를 잡고, 좀 더 여유를 갖고 집을 구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나는 아파트를 선택했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사람이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면 꽤 큰 용기가 필요한데, 우리는 이미 외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현실에 그 용기를 다 써버린 상태였을지도. 그래서 그나마 한국과 비슷한 신축 (2016년에 지어진 곳인데, 주변의 최소 5~60년 이상은 되어 보이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건물들과 비교하면 매우 신축이다) 아파트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몇몇 아파트를 점찍고, 약속을 정하고, 둘러보다 한 곳이 마음에 들어 계약하기로 했는데 입주하려면 최소한 2주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막판에 들었다. 이 시점이 우리의 에어비앤비 기간이 4일쯤 남았을 때였을 것이다. 집이 결정됐다는 생각에 마음을 놓고 있다가 갑자기 속이 타기 시작했다. 묵고 있던 숙소를 연장할 수 있냐고 알아봤는데 어렵다고 했고, 주변에 마땅한 에어비앤비도 없었다.


잠자려고 누워서 스마트폰을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원래 알아보던 중개 사이트 말고, 부동산 회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월세 물건들을 보게 되었다. 그중 마음에 쏙 드는 집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기차역도 가깝고 아이가 다닐 학교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는 위치였고, 가장 좋았던 점은 먼저 와서 살고 있던 친구네 집이 바로 맞은편 아파트라는 것이었다. 당장 채팅으로 연락을 보냈고, 다음 날 집을 보기로 했다.


직접 볼 때도 사진과 비슷했고, 방 두 개에 거실과 주방, 테라스가 꽤 넓고 창고도 있는 집이라 세 식구가 살기에는 딱 맞았다. 계약하겠다고 하니, 이런…. 우리가 보기 직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보고 마음에 든다고 했기에, 그들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먼저 계약금을 보내는 사람이 임자가 아니었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들이 부디 이 집을 고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기도했다.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셨으니, 살 곳도 잘 인도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다음날 부동산 중개인의 전화에 나는 환호했고,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그 사람들이 계약하지 않기로 해서 우리에게 순서가 넘어온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에어비앤비 체크아웃과 동시에, 일 년간 살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유럽 다른 나라 여행을 하고 돌아와 현관을 열면, 너무나도 반가운 우리 집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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