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살이의 시작
남편의 덴마크 연수 1년이 결정되고 나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을 들고 가고 무엇을 버리고 가느냐였다. 해외 이사 비용이 생각보다 비쌌고, 미리 연수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빌트인 가전제품과 붙박이장이 있는 집을 찾아서 렌트하면 최소한의 가구와 물건들을 현지에서 사서 지내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최소한의 짐을 최대한 들고 갈 수 있는 가방의 숫자에 맞추어 나눠 담고 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이제는 취사선택할 일이 남았다. 살고 있는 집은 월세를 주기로 했고, 그래서 결혼 후 15년 간 쌓인 우리의 추억도 정리를 해야 했다.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다행히 지하 창고가 세대별로 있는 아파트이고, 세입자를 정할 때 창고는 쓰지 않아도 될 사람으로 찾았기 때문에 2평 정도의 창고를 한국에 돌아왔을 때 쓸 짐들로 채워두고 갈 수는 있었다. 여기저기 부모님과 형제자매의 집에 물건들을 맡겨놓고 나오는 사람들에 비하면, 참 감사할 일이긴 하다.
신혼집에서부터 썼던 침대, 냉장고, 세탁기는 버리고, 산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식기세척기와 건조기는 동서네로 보냈다. 그리 비싸지 않았던 오래된 책장들도 버렸다. TV는 창고에 보관 가능할 것 같아 그러기로 했고, 거실 탁자도 분리해서 창고에 넣었다. 옷 정리, 아이 짐 정리, 책 정리 등 차근차근한다고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짐을 정리하고 버리는 일이 훨씬 더 힘들었다. 물론 일도 하고 아이도 봐 가면서 하려니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가는 게 사실이기도 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친정 식구들이 총동원되었다. 출국 전날 엄마, 아빠, 남동생까지 와서 짐을 정리하고 버리는 것을 도와주었는데 비행기 타러 가기 직전까지도 집 안에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남아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남은 짐은 알아서 버리고, 정리해 주시겠다고 하신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우린 아마 비행기를 못 탔을지도 모른다.
3단 이민가방 3개에 28인치 하드 캐리어 하나, 남편의 골프백, 기내용 캐리어 3개, 백팩 3개에 우리가 실어온 짐들은 1년 간 우리가 먹을 일용할 양식과 입을 옷들과 약간의 책, 전기밥솥, 헤어 드라이기, 핸드 블렌더 정도였다. 그리고 두 사람 각자의 노트북과 텀블러, 나의 전자책, 아이의 취미 용품 몇 가지와 리코더 관련된 것도 포함되어 있고, 콩나물 키우기 세트도 있었다. 그러고 보면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한 것은 먹을 것들이었는데 그중 가장 유용했던 것은 김과 블록국 종류였고, 들기름과 된장, 고추장, 그리고 엄마가 직접 만들어 준 김치양념은 정말 아껴가며 썼다.
엄마가 고춧가루, 마늘, 액젓 등을 넣고 갈아서 만들어 주신 양념을 베이스로 이것저것 추가해서 레시피를 찾아가며 겨우겨우 김치를 담그는 동안, 엄마표 김치를 그리워한 덴마크에서의 시간들이 벌써 일 년이 넘었다.
이제는 돌아갈 짐을 싸고, 덴마크에서 살던 집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생각하며 최대한 미니멀하게 살아보고자 했지만, 미니멀하게 사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물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충동적으로 사거나 한 적은 없고, 여행 다니며 기념품 하나를 사도 최소한으로, 사이즈 큰 것은 배제하고 고민고민하며 샀었다. 한국에 비하면 훨씬 적은 짐이지만 그래도 일 년 간 쌓인 짐이 꽤 많아졌다.
누군가는 결혼식보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어서 두 번은 못하겠다고 했던가.
나는 집정리하고 짐 싸고 푸는 이 과정이 힘들어 외국살이 두 번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몇 년 지나면 힘든 시간은 다 잊고 즐거운 추억만 기억하며 또 가고 싶다고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