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보르 클라이밍 클럽을 소개합니다.
나의 딸은 어릴 때부터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철봉에 매달리는 것도 좋아하고 킥보드나 인라인스케이트도 곧잘 타는 등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걸 더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태권도나 발레 같은 운동은 조금 하다가 지겨워하며 학원에 다니기 싫어해서 어떤 운동을 하면 꾸준히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은 것이 실내 암벽등반(클라이밍)이었다.
한국에서 살 때, 일일 체험이 가능한 클라이밍장이 집 근처에 있어서 23년 1월 겨울방학 때 한 번 데리고 가봤는데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잘하고, 아이가 좋아했다. 그래서 4학년 1학기부터 주 2회 수업을 등록해서 1년 반을 쉬지 않고 배우다가 덴마크에 왔으니, 여기서도 가능하다면 계속하게 해주고 싶었다.
올보르에서 집을 구해서 이것저것 사고, 짐도 대충 정리한 뒤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내가 제일 먼저 알아본 것이 클라이밍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는가였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게 Aalborg klatreklub (올보르 클라이밍 동호회)로 회원제로 운영하는 곳이었다. 아쉽게도 24년 하반기의 학생 수업은 이미 마감된 때였고, 이메일로 내년 1월부터 시작하는 수업에 등록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답장을 받고 살짝 실망했다.
나도 아이와 몇 달은 같이 클라이밍을 배우고 있던 터라, 어른들은 어떻게 이용할 수 있나 하고 알아보니, 회원으로 가입하면 3개월에 한 번씩 회비를 내고, 열쇠를 받으면 끝이었다. 열쇠가 있는 사람은 365일 24시간 아무 때나 원할 때 가서 클라이밍 할 수 있는데, 따로 수업이 있지는 않았고 회원들끼리 시간을 정해서 정기 모임을 하며 서로 알려주는 식이었다.
일단 나라도 회원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입 신청을 하니 대기가 100명 가까이 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한국 돌아가기 전에 회원 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는데 두 달쯤 지나니 회원 등록을 하라는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가입하고, 회비를 내고 첫 모임에 나갔는데 정말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당연히 대부분 덴마크인이었는데, 나는 덴마크어를 못 한다고 했더니 감사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영어로 소개를 해주었다. 그렇게 모여서 이용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기본자세 교육을 받았다.
그 이후 일주일에 한두 번 가서 볼더링 했는데, 모임에 참여하기는 뻘쭘하고 혼자 하려니 실력이 늘지 않았다. 한국에서 배웠던 것을 복습하는 정도에서 발전이 없고 재미도 없어서 점점 흐지부지되려던 중에 25년 1월부터 시작하는 주니어 강습 공고가 났다. 또 마감될까 싶어 얼른 아이를 등록했다.
주니어반은 주 2회 수업인데 준비운동과 마무리 스트레칭을 포함해서 한 번에 2시간 반이나 되었다. 2시간이 온전히 클라이밍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평균 15명 정도가 매번 참석했다.
2명씩 짝을 지어 리드 클라이밍 (장치에 줄을 걸고 한 명이 줄을 잡아주면서 높이 올라가는 것)을 먼저 하고, 이후 볼더링하는 방식이었는데 코치가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특히 볼더링 할 때 성공한 친구가 다음 도전하는 친구에게 자기가 했던 루트를 알려주면서 모두가 완등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 그랬다. 코치가 알려주거나 시범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자기들끼리 고민하여 루트를 찾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교학상장이란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아이가 다니게 되면서는 내가 차로 데려다줘야 했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주 2회 따라가서 나도 조금 볼더링 하고, 나머지 시간은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하며 보냈다.
덴마크는 학교 방학 기간에는 이런 수업들도 모두 방학이다. 그래서 여름 방학을 빼면 대략 8개월 정도를 다녔는데, 덴마크 아이들 속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는데도 영어로 대화해 가며 여행 갈 때 빼고는 빠지지 않고 다녔다는 사실이 참 대견하다. 아마 덴마크 입국 초기부터 다니라고 했으면 언어 문제 때문에 조금 하다가 그만뒀을 것이다. 그런데 영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1월부터 참여하게 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게 전화위복인가 싶었다.
수업이라고 하기에는 무척 자유로운 분위기여서 하다 힘들면 친구들과 매트에서 텀블링도 하고 수다도 떨며 쉬다가 또 볼더링 도전하고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엄마로서 참 좋았다. 학교만 다닌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꾸준히 이 나라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해 봤다는 것, 그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