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관과 우촌(Utzon) 센터
올보르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전거를 빌려 도시 이곳저곳을 남편과 돌아다녔다.
그때 눈에 들어온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두 곳 있었는데 바로 현대미술관인 쿤스텐 (Kunsten Museum of Modern Art Aalborg)과 우촌 센터 (Utzon Center)였다. 쿤스텐은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 (Alvar Aalto)가 설계했고, 우촌센터는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의 설계자인 우촌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로 그의 고향인 올보르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쿤스텐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많은 현대미술 작품 수에 놀라고 자연채광을 이용한 간접조명이 잘 되어있는 건축형태에 다시 한번 놀란다. 상설 전시 작품도 주기적으로 바뀌는데 처음에 갔을 때는 피카소의 작품도 몇 개 있었다. 유럽 대도시 여러 곳을 여행한 뒤인 지금은 얼마나 많은 피카소 작품이 세계 곳곳 유명 미술관에 있는지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참 신기하기만 했다. 이런 작은 도시 미술관에 피카소의 작품이 있다니.
주말에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었다. 지척에 두고도 뭐가 바쁜지 두 번밖에 못 갔지만.
이 두 곳의 입장권을 각각 사면 적은 돈이 아닌데 둘 중 한 곳에서 연간회원권을 사면 1+1으로 일 년 내내 두 곳 모두 친구동반이 가능하다. 18세 이하의 미성년자는 덴마크의 많은 미술관, 박물관에서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데, 이 두 곳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연간회원권 한 장을 사서 이곳에 있는 1년 2개월 간 관람도 하고, 체험도 하며 이 두 곳을 정말 잘 이용했다.
우촌센터 안에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고 미니어처가 전시되어 있는 상설 전시관이 있고, 일 년에 두세 번 바뀌는 특별 전시관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덴마크의 자랑인 레고를 만들 수 있는 방이 있는데, 엄청난 양의 흰색 레고블록이 쌓여있고, 그것으로 만든 자신만의 건축물을 삽입해서 마인 크래프트 게임을 하고, 또한 VR 체험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다. 방학이면 아이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도 열리는데, 덴마크어를 능숙하게 할 수 없어서 참여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이외에도 회원권의 혜택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정말 잘 이용한 것이 코펜하겐 근교에 있는 루이지애나 미술관을 무료로 이용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 미술관 중에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나는 두 번을 갔는데 확실히 맑은 날 가는 것이 훨씬 좋았다. 바닷가에 세워진 미술관 자체도 멋지고, 미술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숲, 조형물이 어우러진 풍경이 정말 예술이다. 코펜하겐 시내가 아닌데도 항상 주차장이 만차이고, 입장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인기가 좋은 미술관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코펜하겐을 제외한 다른 도시들을 방문하며 즐긴 문화생활을 곁들여 소개할까 한다.
덴마크 두 번째 도시인 오르후스 미술관(ARos Aarhus art Museum)은 북유럽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하나라고 하는데 옥상에 설치된 '무지개 파노라마 (Your rainbow panorama)'가 건물 밖 멀리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는 이곳도 두 번 이상 가게 될 것 같아서 연간 회원권을 구입했는데, 올보르에서 기차로 1시간 10분 밖에 안 걸리는 곳인데도 딱 두 번밖에 못 간 것과 제임스 터렐의 설치작품인 ‘스카이스페이스(Skyspace)’가 한참 만들어지는 중이었는데, 내년에 개관이라 못 보고 온 것이 정말 아쉬웠다. 만약 내가 덴마크를 다시 찾게 된다면 꼭 가고 싶은 곳이 바로 이 미술관이다.
그리고 덴마크 세 번째 도시인 오덴세는 작가 안데르센의 고향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그의 생가와 안데르센 박물관이 가장 유명하다. 안데르센 박물관은 그의 생애와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과 아이들이 동화를 몸으로 즐길 수 있는 체험형 전시공간, 동화 속 주인공이 되어 역할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 이젤을 놓여 있고, 물감과 붓을 마음대로 가져다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틀리에가 있었다. 곳곳의 작은 소품 하나하나 그 디자인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보며, 이런 곳을 자유롭게 즐기고 수시로 다녀갈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서 덴마크가 디자인으로 유명한 나라가 되었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코펜하겐은 워낙 유명한 도시이고, 덴마크의 수도라서 엄청나게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 그리고 궁전들이 있다. 그 외에는 도서관도 유병하고, 미슐랭 별을 받은 레스토랑들도 많다. 그런데 내가 코펜하겐에 머문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겉핥기식으로 본 지라 소개할 정도도 안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여행기로 많이 소개하고 있기에 나까지 더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덴마크에 있을 때는 이곳을 떠나고 나면 다시 오기 힘든 곳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명소들을 찾아다니려 애썼던 것 같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에도 아이와 함께, 가족끼리 가 볼만한 곳이 참 많은데 찾아다니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척에 두고도 못 간 곳이 있을 것도 같다. 그런데 또 주말마다 여기저기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 이제는 좀 피곤하다는 느낌도 있다.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면, 적당히 쉬면서 여행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풍경을 즐기며 하루에 한 곳 정도만 진득하니 보기로 하자. 그런 생각을 하며, 올보르 문화생활 이야기의 끝은 우리나라의 어딘가를 딸아이 손을 잡고 걷는 상상을 해 보는 것으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