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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에서 문맹으로 산다는 것

구글번역기, 너 없었으면 어떡할 뻔!

by 꼽슬이

드디어 출국 날, 마일리지 비행기표를 부다페스트행으로 끊어서,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그곳에서 3박 여행을 했다. 그리고 덴마크 올보르로 넘어온 지 3주째에 나는 문맹으로 살아가는 것의 불편함, 눈치껏 살아가기의 어려움에 대해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나는 덴마크 1년 살이가 결정된 후 덴마크어를 배워보려고 잠시 노력했었다. 책을 보려고 했으나 찾기 어려워서 듀오링고라는 앱을 통해서 배우기로 하고 결제까지 했는데, 매일 앱을 여는데는 엄청난 의지가 필요했다.


매일 듀오링고를 실행한다는 것은 습관이 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3월에 잠시 열정을 불태우며 매일 최소 10분은 했지만, 덴마크어는 국경을 접하는 독일어랑도 비슷하지 않고, 그렇다고 영어랑 비슷한 것도 아니며, 발음을 따라 하기도 매우 어렵다는 사실만 깨달은 채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한국을 떠나기 얼마 전 TV에서 선전한 요구르트 광고에서 Hej라는 반가운 단어를 보고, '저거 덴마크어로 안녕이라는 뜻인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게 다였다.


그렇게 덴마크어는 서서히 내 기억에 남은 몇 안 되는 단어들마저 잊혔고, 나는 그 상태로 덴마크에 도착했다. 수많은 간판과 상점 벽면에 적힌 글자들의 모양은 알파벳에 가깝지만, 알파벳에는 없는 모음도 있으며, aa처럼 모음을 연달아 두 번 쓰는 단어도 있었다. 보이는 글자를 제대로 읽기라도 하려면 발음법(phonics)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 상태인데, 초반에 정착하기 위해 할 일이 생각보다 많아서 언어에 대한 것은 일단 제쳐두었다.


어느 정도 집이 정리가 되고, 마음에 안정이 온다면, 일단 읽기부터 시작해서 말하고 듣기까지 해 보자고 생각하고, 외국인을 위한 덴마크 어학원에 등록을 할까 하는 고민까지 했었는데...




한국에서는 설치하지도 않았던 구글 렌즈와 구글 번역기는 덴마크에서 살기 위한 외국인에게 꼭 필요한 문명의 이기이자 언어 학습 방해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1년 2개월이 지나는 동안 마트에 있는 물건/식료품의 덴마크어 이름 외에는 언어가 거의 늘지 않았다. 늘 수가 없었던 것이 배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장이라도 볼라치면 스마트폰은 항상 손에 들려있어야 했고, 팸플릿 한 장을 보려고 해도 구글번역기를 돌려야 했지만 말이다. 그렇기만 하다면 나는 덴마크어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 전화기가 덴마크어를 한국어 혹은 영어로 순식간에 바꿔주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덴마크 이주 초기에 자전거를 탄 상태에서 핸드폰이 방전되어 꺼져버렸을 때, 나는 완전한 문맹을 경험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정확히 모르는 상태였으며, 간판이나 도로명을 읽지도, 잘 기억하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에서 전화기가 꺼지니 나는 완전히 패닉에 빠졌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잠시 공황상태에 빠져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타고난(?) 방향감각과 용감무쌍함으로 자전거를 타고 5분이면 갈 거리를 돌고 돌아 20분 만에 집에 도착했다. 등이 땀으로 흥건했고,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우리 집이 있는 건물이 눈앞에 나타난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눈물이 날 뻔했다.


올보르 시내가 넓지 않은 것이, 그리고 우리 집이 시내에서 가까웠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구글번역기가 없었다면, 이런 순간을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좀 더 열심히 언어 공부를 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기 충전상태만 잘 유지한다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기에, 나의 덴마크어는 지금도 문맹에 가깝다.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의 외주화를 전혀 할 수 없는 곳에서 언어를 배우는 데 들이는 시간을 나는 다른 곳에 썼다고, 내가 게을러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핑계를 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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