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봉과 의상봉, 이름에 얽힌 짧은 추측
북한산엔 제법 많은 봉우리가 있지요.
그 가운데 의상봉과 원효봉.
원효와 의상.
도대체 누가 어떤 연유로 이리 오묘한 네이밍을 했을까 오래전부터 궁금했지요.
이땅의 불교가 큰 물줄기를 만들 무렵 등장했던 두 고승.
둘이 손잡고 당나라로 유학가던 길, 어느 동굴에서의 하룻밤.
동굴안 해골바가지에 담겼던 물과 얽힌 사연.
그리고 그 후 크게 갈린 행보.
원효는 한순간 불법의 요체를 깨닫고 유학길을 아예 접었습니다. 발길을 돌려 신라로 돌아와 민중 속으로 불교를 전파했습니다.
의상은 당나라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유학 후 돌아와 화엄종을 열었습니다. 전국을 다니며 여기저기 절도 많이 지었습니다.
승려로서 업적도 업적이지만 그 둘은 웬만한 멜로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사랑 이야기도 만들어냅니다.
원효는 왕족인 요석공주와 정분을 나눴습니다.
작업 중 남긴 유명한 한 마디.
"누가 내게 자루없는 도끼를 빌려주겠는가. 하늘 받칠 기둥을 깍으리로다."
그렇게 훗날 대학자가 될 아들 설총이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주제와 관계없는 정보 하나, 원효의 본명은 '설사'였습니다.
의상은 유학중 여염집 처자 선묘를 만났습니다.
선묘는 의상을 깊이 사랑했지만, 의상은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의상이 공부를 마치고 신라로 돌아가버리자, 상심한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의상이 영주 부석사를 지을 때 어려움을 겪자 용으로 변한 선묘가 나타나 크게 도움을 주었다는 전설은 유명합니다.
불교사적으로나 러브스토리로나 큰 족적을 남긴 두 사람.
이들은 어찌하여 뜬금없이 북한산 서쪽 입구에 솟은 두 봉우리의 이름을 차지하게 되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북한산의 봉우리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불가와 연관된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이름들이 붙었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설명하고 있는 자료는 찾기 어렵습니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제 뇌피셜일 뿐, 사실관계를 확인할 길은 없다는 점을 먼저 밝혀둡니다.
원효봉은 염초봉을 사이에 두고 주봉인 백운대와 가깝게 마주하고 있습니다.
반면 의상봉은 의상능선과 북한산 주능선을 이어붙인 후에야 백운대에 이르게 됩니다. (아래 사진 참고)
이 거리의 차이는 원효와 의상이 불법의 요체에 다다른 시간을 의미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벼락처럼 깨달은 일체유심조. 그 일갈과 같이 염초봉만 극복하면 바로 백운대에 이를 수 있는 원효봉.
오랜 시간 당나라에서 유학하며 불심과 불법을 갈고 닦았듯이, 묵묵히 능선을 길게 오래 탄 후에 정상인 백운대에 다다를 수 있는 의상봉.
또한 원효와 의상이 남긴 로맨스는 그 사랑을 펼친 시간의 길이와 봉우리들 사이 거리의 관계로 볼 때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적극적인 원효는 요석공주와 불같이 사랑하고 과속으로 설총을 낳았습니다. 원효봉과 백운대의 거리만큼 짧은 시간.
차분한 의상은 영주 부석사를 통해 선묘낭자와 사후까지 길게 끈을 이었습니다. 의상봉과 백운대의 거리만큼 긴 시간.
원효봉과 의상봉의 이름을 붙인 최초의 누군가는 어쩌면 이와 같은 내용들을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닐런지...
억지스럽나요? 뭐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