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다른 그들을 보며, 또 우리 부부를 보며...
여자 나이 마흔 중반이라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지요. 마흔 중반이라는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미모와 소녀 감성을 지닌 그녀는 작고 마른 체격이라 20대 아가씨들이나 입을 법한 옷들도 멋스럽게 잘 소화해냅니다.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있는 그녀와 함께 있으면 유쾌하고 즐겁습니다. 아이 같은 소녀 감성을 지닌 그녀는 모르긴 몰라도 그 모습 그대로, 노년을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녀를 처음 보았던 10년 전의 모습과 크게 차이가 없거든요.
어쨌든 사랑스러운 소녀 감성은 그녀의 매력입니다. 그런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는 그의 남편은 묵직하고 과묵합니다. 표현을 격하게 해야 직성을 풀리는 그녀 곁을 지키는 그녀의 남편이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다며 전부터 힘들어했는데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잘 표현하지 않는 남편의 영향으로 인해서 아이들의 속내도 잘 모르겠다며 답답해합니다. 사랑스러운 잔소리와 수다와 애교를 퍼부을 그녀 곁에서 어떤 표현도 잘 하지 않고 묵묵히 침묵을 지키는 참 다른, 두 남녀의 모습이 참 재미있습니다.
몇일 전, 중학교 2학년인 아이가 학교에서 치른 중간고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공부 머리가 있는 것 같은데, 조금만 노력하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며 내심 아쉬워하는 그녀의 아이는 다행히 2문제만 틀리고 다 맞는, 좋게 생각하면 좋은 시험 결과를 받았습니다. 문제는 100점을 맞은 친구들이 반에서 20명이 넘는 다는 사실입니다.
100점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한 그녀의 결론은 아이가 조금 더 노력해서 100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안타깝다는 것 입니다. 그럴 만한 능력이 아이에게 있는데 그 능력을 끌어내주지 못하는 남편에게 원망 아닌 원망의 화살이 박혀있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들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아이에게 제시하는 성적의 기준이 너무 낮다는 것 입니다.
남편은 아이의 현재의 행복과 안녕을 더 추구하며 아이의 사지를 매정하게 공부의 세계로 내몰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80점 이상은 유지" 하는 것이 남편의 조건이라고 합니다. 아이는 정말 80점 이상은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보며 남편이 조금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해준다면 아이가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안타까워하며, 남편이 성적 욕심을 내지 않자 아내인 그녀가 성적 욕심에 안달이 나 있는, 참 다른 두 남녀의 모습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녀는 여리여리해보이지만 내면이 다부지고 강한 여장부 스타일입니다. 냉철한 카리스마가 안경 너머로 빛이 나면서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해 놓고도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을 만큼 황당한 허당 짓을똑같이 반복하며 함께 복닥복닥 아이들을 키우고 케어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난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굉장히 풍부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 상처 받고 그 상처를 오래 지니고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남편은 그녀에게 늘 버거운 존재였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을 너무 좋아해서 저녁을 먹고 집 근처라도 꼭 함께 산책을 나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런 시간을 좋아하느냐' 며 혼자 집에서 쉬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참 다른 두 남녀의 모습이 참 색다르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꾸미고 가꾸는 데에 크게 흥미가 없습니다. 시각에 민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멋진 마인드가 그녀를 더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합니다. 하지만 당당하고 멋진 커리우먼 여성 같은 그녀의 집과 부엌은 엉망진창입니다. 살림을 너무 못해서 갈 때마다 참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그녀와 반대로 그녀의 남편은 시각에 민감하고 보이는 것에 너무 예민한 사람입니다. 멋진 패션을 동경하고 신상품이나 마음에 드는 옷을 고민 없이 사기도 하고 그녀에게 사 입히기도 합니다. 쇼핑을 좋아하지 않고, 옷차림이나 외모를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내면의 당당함이 있는 그녀와는 다르게 그녀의 남편은 쇼핑을 좋아하고, 즉흥적인 여행을 좋아하고 집에 있는 것 보다 밖에서 그 무엇이라도 돈을 쓰며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참 좋아하는, 참 다른 두 남녀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급하게 인테리어 작업을 하게 된 그녀는 잘못 만난 인테리어 업체로 인해서 골머리를 썩고 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듯한 일 못하는 인테리어 업체와 여자인 그녀가 맨몸으로 싸우고 버티며 전쟁아닌 전쟁 통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그녀를 보며 이럴 땐 남편이 좀 나서줘야 한다며, 남편에게 위임하라고 어줍잖은 조언을 해주었더니 남편은 그런 말도 잘 하지 못하고, 큰 소리도 잘 내지 못한다며 자신이 할 수 밖에 없음을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 그래서 큰 대외적인 일들은 늘 자신이 처리했고 해결했다고 말하는 그녀의 뒤에서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참 다른두남녀의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참 다른 부부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과 나 또한 참 다르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서로의 참 다름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참 다름 때문에, 함께 즐길 수 있는 공통점이 참 하나도 없다는 사실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계속 사는 게 맞는 건가?' 싶은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감성적이고 남편은 이성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남편은 철저히 계획적인 것을 추구하고 계획을 세우고 그 안에서 흐트러지는 것을 못 견뎌하는 남편을 보며 즉흥적인것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나는 참 힘들었고, 자신과 다른 나를 보며 남편도 참 힘들어했습니다. 나는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고, 핫 플레이스를 찾아다니며 사진 찍고 그 시간을 만끽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남편은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고, 사진 찍는 나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며 한 번도 진심을 담아 나를 예쁜 샷에 찍어준 적 없는 남편이 가끔은 밉기도 했습니다. 남편의 사진에 찍혀 있는 내 모습은 아직 예쁜 척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셔터가 눌러져 있는 모습이던지, 흔들리던지, 너무 멀어 얼굴이 보이지 않던지... 였으니까요.
이런 사소한 것들로 시작해서 쌓인 앙금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곪게 되어 있지요. 서로 다른 것에 대해서 이해하고 배려하려고 노력하지만 순간의 물거품처럼 결심들이 사라지는 날들 속에서 아이들을 복닥복닥 키워내며 어느새 결혼 12년차가 되었습니다.
몇 번의 위기를 겪어내고 그래도 주의 은혜로 잘 이겨내고 나니 이제야 온전히 나와는 다른 남편을 마주보고 이해하고 사랑할 용기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계속 원망 아닌 원망이 내 안에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원망이라는 것은 ' 나를 좀 더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생기는 원망이였습니다. 나 또한 나와는 다른 남편을 더 이해하고 사랑해주지 못했으면서 말입니다. 이러니 참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나와 다른 남편이 참 좋습니다.
나에게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메워주는 남편이 참 좋습니다.
나도 남편에게 그런 존재였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없는 부분을 바라보며 기대하며 무너지기보다는 나에게 있는 좋은 점을 발견해주고 그 것이 본인에겐 없는 것 들을 채워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서로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부부의 진정한 의미란 다름인 것 같습니다.
그 다름이 때로는 나를 너무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다시 안오길 바라며 멀리 던져보지만 어김 없이 나에게 다시 날아드는 부메랑처럼, 수차례 다시 돌아온다 할지라도 다시 날려 버리고 또 날려버리다 보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나에게 없는 남편의 모습을, 남편에게는 없는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하게 됩니다. 그 다름을 함께 버무려나가다 보면 나의 맛과 남편의 맛이 잘 섞인 일품요리가 탄생하게 됩니다. 바로 우리의 자녀들입니다. 그 맛이 때로는 싱거울 때도 있을 거고, 짜게 느껴지기도 할 것 입니다. 간을 맞춰나가며 우리 자녀들이 완벽하진 못해도 그럴 듯한 맛을 낼 수 있도록, 조금 욕심을 내면 그 매력적인 맛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맛이 날 수 있도록 남편과 나를 절묘히 섞어냅니다.
그렇게 나와 다른 타인과 맞추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이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또 성장합니다. 그게 싫다고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훌쩍 떠난다고 절대 행복하지 못합니다. 나는 여전히 나이고, 나와 또 너무나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살게 될 것이 분명하지 않나요?
그렇게 나와 다른 남편과 살다보니, 서로 너무 다른 모습으로 내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을 보니 너무 똑같으면 재미도 없을 것 같고 잘 살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르니까 맞춰가며 사는 것이고 다름으로 인해서 서로 조금씩 숨을 고르며 살 수 있습니다. 쇼핑을 좋아하는 제가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과 살면 행복할까요? 돈이 남아나지 않을 것 입니다. 감성적인 제가 저처럼 감수성 풍부한 사람과 살면 행복할까요? 늘 눈물바다 속에서 서로의 풍부한 감정에 숨이 턱까지 차올라 숨도 쉬지 못하고 살지도 모릅니다. 즉흥적인 제가 즉흥적인 남편을 만나 즉흥적으로 살면 살림살이가 남아나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저와 참 다른 남편이 너무 좋은 것 입니다.
또 이것은 비단 우리 부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처음에 얘기했듯이 내 주변에 있는 모든 부부가 참 서로 다르더라는 것 입니다. 많은 부부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아이의 성적에 욕심을 내지 않으니 그녀가 아이의 성적에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말 많고 수다스러움이 그녀의 남편의 입을 닫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녀의 남편이 항상 원했던 집 앞 산책으로 인해서 그녀는 더 집에 머무르고 싶어지진 않았을까... 그 마음에 동요되기 보다는 이상하게 반대로 더 하고 싶은 청개구리 본능이 작동한 건 아닐까요?
인스타에서 유명한 오디오 릴스 중에 이런 릴스가 있더라구요.
"남편은 사모님 인생에서 어떤 존재인가요?
"로또!"
"아! 남편이 사모님에게 로또 같은 행운의 존재인가요?"
"아니!
안 맞아!
참 안 맞아! 그렇게 안 맞을 수가 없어!"
참 안 맞는 것이 남편이고 부부입니다.
정말 신의 한수 입니다.
참 안 맞음으로 인해서 잘 살 수 있습니다.
나랑 너무 똑같으면 잘 살 수 없습니다.
나랑 똑같은 사람과 살면 어떻게 다른 목소리가 나겠습니까?
다른 목소리를 가진 남편과 살면서 참 잘 살 수 있는 것 입니다.
어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참 다른 남녀를 부부로 묶어주셨는지 그 지혜로움에 입이 벌어집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온통 참 안 맞는 부부 뿐이거든요.
그 안 맞음' 을 버리든 취하든 선택권도 우리에겐 늘 주어져 있습니다.
정말 죽을 만큼 힘든 상황과 신체적인, 언어적인, 정신적인 폭력이 넘나드는 부부관계는 점검을 해봐야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안맞음' 의 카드를 쥐고 버릴까 취할까 고민중이라면 버리지 마세요.
원래 부부는 안 맞는 거거든요.
맞추면서 산다고 했나요?
맞추면서 사는 것이 인생의 스트레스가 아니라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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