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쓰는핑거 Jul 17. 2022

나는 예쁜 꽃한다발보다 들풀을 더 사랑한다.

꽃이 주는 놀라운 선물





나는 꽃을 좋아한다. 40대 중반에 접어들며 자연스러운 자연의 순리에 따라 관심 없던 꽃에 한번 더 눈길이 가는 시기가 맞아떨어지기도 했고, 코로나가 한참이던 그 때, 갈곳 없이 집에만 머물던 그 시간에 지치지 말자고 나에게 선물하던 꽃 한다발이 결국 꽃과 사랑에 빠지게 하고야 말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문앞으로 싱싱하고 예쁜 정성스러운 꽃 한발을 문 앞으로 직접 받아보았던 '꽃구독서비스'를 통해 나는 꽃을 통해서도 이런 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에 놀라게 되었고, 예쁜 꽃잎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어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느냐며 정성스럽게 꽃꽃이를 하는 새로운 나를 보게 되었다.









딱 일주일이다.

꽃을 예쁘게 볼 수 있는 기간..

좀더 풍성한 꽃다발을 구매하면 그 중에 남아있는 한 두송이를 일주일 후 에도 바라볼 수 있었지만 대개는 일주일안에 시들시들 볼품없어졌다.







이제 그만 사야지 하면서도 나는 자꾸 꽃가게를 향했고, 예쁜 꽃 한다발 안아들고 있는 내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예뻤고 부자였다. 작은 사치라고 생각하며 즐겼다. 생소했던 꽃이름이 눈에 들어왔고, 꽃꽃이를 하는 순간을 즐겼고, 이런 예쁜 꽃과 늘 함께 있고 싶다는 지경까지 이르자 이른새벽시장 죽노동과 다름 없다는 꽃시장을 누비며 꽃을 공수해야하는 노동까지도 매력있게 다가오며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직도 그 꿈을 접진 않았다. 새로운 나를 발견해주었고 향기로운 감성을 배웠기에 나는 아직도 꽃이 좋고 꽃에게 고맙다.










하지만 이제 나는 들풀을 보는 것 만으로도 만족하게 되었다. 일주일만에 시들어버린 꽃잎이 아까워서, 버리기 미안해서 꽃이 늘 있는 예쁜 집을 잠시 포기했다.



거친 들판 속에서 아름다운 꽃몽우리를 터트리며 피어난 들풀을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속에서도 꽃을 피워 몽글몽글 피어있는 토끼풀들이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이제 꽃을 돈주고 사지 않는다. 길에 핀 예쁜 들꽃을 보는 재미도 나에게는 큰 기쁨이고 작은 사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철저히 인간중심적인 관점이고  이름은  자자체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꽃에 이름을 붙이는 우리 인간의 행위는 분류를 위해서라지만, 동시에 자본주의화된 가치로 꽃들 사이의 위계주의를 끊임없이 재생산해낸다는 문제(56p) 지적 앞에 나나는 깊이 공감할  밖에 없었다.  (배움에 관하여)









사람들의 이기적인 위계 구조와 자본주의적 가치 구조그대로 꽃들에게전이된다는 사실이 새삼 슬펐다. 장미나 튤립, 백합, 국화 등은 고가의 꽃이고 비싸게 돈을 주고  장미  다발을 선물 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선물이 되지만, 반대로 이름 없는 들꽃은 사고 파는 행위 자체도 없으며 들꽃을  묶음 선물받는 것과 장미꽃 한다발 선물받는 것과는 동일한 반응을 기대할  없다는 저자의 날카로운 지적에 깊이 공감된다.





가끔은 예쁜 꽃 한다발이 그리워지고, 곁에 두고 보고 싶어지는 순간에 나는 어김 없이 꽃집으로 달려가게 되겠지만 전보다는 더 많이 이름 모를 들풀과 그 속에서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는 들꽃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