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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Dec 07. 2022

내 감성 건드리지 마시라!

주부에세이) 그냥 감성으로 먹고 살게 나.




“안돼. 그 불 끄지마.

내 감성이야. 방해하지마.“



어둑어둑한 새벽. 내 감성에 쏙 드는 간접등을 밝혔다. 그런 내 감성을 무시하고 불을 끄려는 남편에게 다급하게 던진 말이다







.





나는 감성적인 여자이고 엄마이다.

감성이라는 것이 어떤 때는 한 없이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따라다니는 귀찮은 동생을 떼어내고 싶듯 거추장스럽기도 하다.






나들이 계획이 없던 날, 화창하고 맑은 햇살이 창 밖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면 볕 좋은 곳을 찾아 훌쩍 나가고 싶어진다. 예쁜 꽃을 보고 가슴이 벅차 오른다. 꽃을 만지고 있는 내 모습이,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 각기 다른 형태를 띄고 하늘은 가득 메운 구름 사이사이로 넘실거리는 석양이나 햇살을 바라보면 잠시 넋놓고 바라보며 짧은 한탄과 경이로움이 쏟아져나온다. 예쁜 공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고, 예쁜 순간과 찰나를 꼭 남겨야 한다. 남는 건 사진 뿐이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특별한 공간, 그 순간 그 곳에 머물러 있는 나를, 아이들을 폰 속에 담아 저장해두고 두고두고 보기를 즐겨한다.







때로는 눈물이 차 올라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이 구슬프게 목놓아 울기도 한다. 내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 방울 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나는 내 일도 아닌 ,일에 이렇게 눈물을 쏟고 있는지... 이웃의 아픔과 어려움을 생각하며 함께 아파해줄 수 있는 나의 따뜻한 감성이 좋다.





이런 감성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가도, 영 울고 싶지 않은 날, 영락없이 눈물샘이 터지면 ‘울지마. 절대 울지마. 또 울지마.‘ 주문을 걸어 봐도 영락없이  터져나오는 그 연민과 감성이 때론 거추장스럽고 지치고 힘이 들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지성보다 감성으로, 이성보다 감성으로, 논리적인 사고보다 감성으로 먹고 사는 여자이다.






이런 나를 남편은 힘들어 했다.

그래, 그럴 수 있다.

남편은 철저하게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이니...






감성적인 나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남편 덕분에 현실의 상황과 감각을 더듬으며 그 이성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남편을 꼭 닮은 큰 아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논리적인 사고와 변론으로 나를 몰아세워 가끔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그냥 감성으로 먹고 살고 감성에 죽고 감성에 살기로 했다. 현실적이고 철저하게 이성적인 남편과 아들의 성원에 힘 입어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온통 어둠과 한기로 뒤덮인 거실로 문을 열고 나온다. 그 짙게 깔린 어둠을 바로 밝은 빛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좀더 어둠에 적응하고 싶다. 이른 새벽, 졸린 눈을 비비고 더 자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고 나온 나는 그렇게 좀더 어둠을 즐기고 싶다.







하지만 너무 어둡다.

빛이 필요하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간접등이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을 내는 간접등의 매력은 꼭 나처럼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좋아하겠지만 나 같이 감성적인 사람이 온 거실을 환하게 비추는 하얗고 차가운 백열등 불빛 보다는 은은하게 거실을 비춰주는 간접등을 선호할 것이다.







우리집에는 간접등이 없다.

아쉬운대로 집에 곳곳에 붙어 있는 간접등으로 내 감성을 살려본다.






책장에 붙어 있는 간접등과 싱크대에 붙어 있는 간접등 두 개로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시간 속에 감성을 불태워 글을 쓰고 있었다.






현실적인 남편이 그 모습을 본다.

불을 켜라며 구박한다.

이런 간접등이 전기세가 더 나간다고 전부터 구박했다. 가끔 켜놓고 감성을 즐길라 치며 현실적인 남편은 전기세를 걱정하며 불을 껐고 내 감성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남편이 하도 싫어하니 그냥 포기하고 살았다.







“안돼. 절대 끄지마.

이건 내 감성이야.

내 감성을 이제 방해하지마.

이제 앞으로 주목받고 각광받는 시대는 고정되어 있는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독창적인 감성과 스토리래.





나는 그런 감성이 넘치는 여자야.

그러니까 이제 내 감성 건드리지 마.

나는 이 감성을 즐기고 살릴거야.

알겠지.“







남편 앞에 내 감성은 지독히도  쓸 데 없는 그런 것이었는데, 이제 나는 그 감성을 좀 대우받기로 했다.







사람마다 저 마다의 감성과 지성이 있다. 고유하고 특색 있는 것 이다. 많은 것이 로봇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디지털화 된 세상 속에서 인간의 손으로 할 수 있는 것들도 다 대체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손으로 글씨를 쓰고, 수기로 가계부와 감사노트를 쓰고, 성경필사를 한다. 수기로 일기장에 일기를 써 본다. 손으로 빨래를 널고 개고 손으로 설거지를 일일이 해댄다. 밀키트나 배달음식보다는 집밥을 부지런히 지어낸다. 기념일마다 꽃을 한 다발 사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내 감성을 더 사랑하고 즐기기로 했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감성과 지성을 더 사랑하고 키워주자.






이 글을 본 남편이 서프라이즈로 거실에 간접등을 해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하트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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