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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Dec 06. 2022

첫눈이 내렸는데 낮잠이라니!

주부에세이 ) 고독한 아름다움.






첫 눈이 내렸다.

아이들이 그렇게도 기다렸던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세상. 주방 창가 쪽에 서서 아침을 준비하려던 찰나에 발견한 새하얀 풍경. 아이들에게 알려주니 우당탕탕 창가에 매달려 감탄과 환호를 쏟아낸다.




조금 내리다 그친 줄 알았는데 펑펑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이들 등교 길에 새하얀 눈을 맞으며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하얀 바닥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겨본다.





학교에 가는 짧은 시간, 아이들은 눈을 만지고 던지고 굴려본다. 이미 그럴 줄 알고 넉넉하게 시간을 계산해서 나왔기에 조급함이 우리를 방해하지 못한다. 학교에 가는 길, 하늘에서 눈가루가 휘날린다.






눈이 내리는 날은 춥지 않아서 좋다. 요 며칠 옷깃을 여미는 매서운 동장군은 사라지고 기분좋은 겨울 바람에 실려 하얀 함박눈이 소리 없이 쌓여간다. 쌓여가는 눈이 금새 아이들 머리 위로, 가방 위로 수북해진다.






둘째아이는 고새 눈사람을 만들었다.

짧은 시간이라 크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냥 두고 가기 내심 아까운 아이의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하지 못한다. 누가 망가뜨릴까봐, 녹아버릴까봐 걱정이 되는 아이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작은 눈덩이를 학교 앞에 두고 들어간다.





집으로 돌아와 집안 가지들을 정리하고 청소를 마친다. 드립커피 한 잔을 내린다. 지금까지는 아이스커피가 좋았는데 오늘은 어쩐지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블로그 포스팅도 하나 남기고 싶은데, 나는 어제 읽던 책을 주워 들었다. 오랜만에 읽는 감성 넘치는 따뜻한 문체를 만났다. 그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이자 한 가정의 엄마이다. 저자의 프롤로그에서 “매일 매일 손수 빵을 구워 저녁 식탁을 차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때때로 우울해 하는 아내이자 엄마이다.‘ 라는 문구에서 그녀의 감성이 충만하게 느껴졌다.





바다를 사랑하고, 오래된 책 냄새를 좋아하고, 비 오는 날 뜨거운 차 한잔에 책 한권이면 금새 행복해지는 사람이라며 자기를 표현한다.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나오는 따뜻한 문체는 그녀가 얼마나 감성적인 사람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고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다.






그녀의 글은 주부이며 작가로써, 모든 일상을 아름답게 소화했고, 아이를 키우며 틈나는 대로 글을 쓰는 작업이 얼마나 고단한지, 그런데도 왜 놓을 수 없는지, 계속 쓰려면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풍부한 감성과 지성과 문체로 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건가.

언제쯤 나는 이렇게 따뜻하고 감성적인 문체를 남길 수 있을까.

내 안에 감성이 넘친다고 생각했는데 손 끝에서 나오는 내 글들은 어쩐지 딱딱하고 고정된 느낌이 든다.





나른한 겨울 햇살이 거실 가득 찬 이 공간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참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다른 무언가를 하지 않고, 시간이 있을 때 책과 커피를 손에 쥐고 글을 쓰는 나에게 만족한다.






특별함 없이 잔잔한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려니 졸음이 몰려온다. 하하

새벽에 일어나서 축구 경기를 본 탓이라고 둘러가며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춰본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원 없이 자고 일어났다.






겨울 햇살이 나를 깨운다.

문득 정신없이 자고 일어난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이 좋은 날, 집에서 책 이나 보다가 낮잠이나 자고 일어난 내 모습은 문득 ‘외로운 책벌레’같이 느껴진다.





친구도 없고 고독한, 책이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그런 책벌레가 된 듯한 느낌이다.






나는 건강한 것인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

이 시간을 즐기고 애정하면서도 한 번씩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괴롭히기도 하고 나는 그런 부정함에 당당하게 싸워 이기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잠을 깨자마자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다시 말한다.






아무튼 우리는 계속해서 여러 계절을 만날 것이다. 에너지 넘치는 계절이 있는가 하면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도 있다.

지금 당신이 어느 계절에 있든 당신의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은 시기는 없다. 때가 되면 그 이야기들이 당신의 글쓰기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글쓰기] 니콜 굴로타




그래. 만나는 여러 계절 앞에서, 그 계절만이 지니고 있는 밝음도, 어두움도, 햇살도, 빗방울도, 매서운 동장군도, 흩날리는 눈송이들도, 다 품어보자. 지금은 겨울잠을 자듯 나른하고 무거운 시간이다. 오늘은 이 나른한 무거움으로 오늘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본다.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되어간다.




눈사람을 만들지 못해서 내심 아쉬워 하는 아이가 학교에 늦지 않도록 고작 내가 선택한 뻔한 방법은 ‘이따가 다시 만들자’ 였다.






소복하게 쌓인 눈은 금새 다 녹아버렸다.



아이는 허무해할지, 속상해 할지, 개의치 않을 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 지 다시 또 나의 이야기와 아이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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