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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Jan 06. 2023

감정노동자 아내가 그 피해자 남편에게...

주부에세이) 감정보다 팩트에 집중하기!



“여보, 지금 퇴근합니다. ”


“어? 진짜?

빨리 퇴근하네. 잘 됐다~ 이따 성운이 태권도에서 공개심사 한다는 데 같이 가서 좀 봐줘.

아빠가 가면 성운이가 얼마나 좋겠어!”



“여보!

나는 어제 술을 먹고 하루종일 일 하고 와서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


“..................”





사실 피곤하고 가기 싫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찍 저녁을 먹고 치운다면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감하는 7시일 수도있고, 저녁밥이 늦어진다면  분주한 7시가 되기도 하는 그 때, 태권도에서 공개심사를 한다며 부모들을 초청한 것 이다. 셋째라서 그런가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부인하진 않겠다. 셋째아이라서 좀 패스하고 싶었는데 아이가 너무 가고 싶어하는 것 이다. 맞다,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태권도장에서도 준비하고 아이들과 계획했을 텐데 함께 가서 아이를 복돋아주어야지.





남편은 퇴근이 늦으니 당연히 못 갈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틈새독서와 글쓰기로 분주한 일상에 육아와 살림이 버무러져서 늘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는 나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릴 여유조차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남편은 퇴근이 늦어서 같이 못 갈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큰아이와 둘째아이에게 같이 가서 막내가 하는 공개심사봐주고 용기를 복돋아주고 오자고 제안했더니 형아들도 흔쾌히 승낙했던 것이다. 나는 어쩌면 내심 바쁜 남편 보다 큰 아이들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형아들.

내 태권도 학원에 같이 가서 나 하는 거 봐주주면 안돼?”


“응 알았어. 같이 갈게~”




아빠가 같이 못 가는 상황을 아이도 받아들였고 우리 나름대로 잘 극복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평소보다 많이 이른 남편의 퇴근이  반가워진 것 이다. 그러나 남편은 일찍 퇴근했는데도 불구하고 안 간다고 고집을 부린다.






“여보.

나 오늘 하루종일 너무 힘들었어.

가서 좀 쉬고 싶어서 일찍 퇴근하는 거야.

태권도 공개심사 한다고 나한테 얘기도 안 했잖아?

원래 당신 혼자 가려고 했잖아?

그러니까 원래 하려던 대로 혼자 갔다 와.

나는 힘들어서 못 가.“





단호하게 말하는 남편의 말에 서운함이 먼저 밀려왔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기왕 집에 일찍 왔고 갈 수있는 상황인데, 조금만 쉬다가 같이 가주면 되지 그게 뭐 그렇게 어렵나?’ 로 시작해서 서운한 감정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몰려와 안 그래도 여리고 여린 내 감정의 바다에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요소들이 소용돌이를 일으켜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남편은 일찍 돌아와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간다. 태권도 공개심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아직 시간이 있다. 조금 쉬다가 같이 가주겠지 내심 기대하면서 여전히 서운한 감정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정작 막내는 아빠가 집에 있는데도 ‘너무 힘들어서 집에서 쉬고 싶다.’는 아빠에게 전혀 서운한 내색이 없다. 원래대로 엄마와 형아들만 가게 되는 사실이 변하지 않았다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가족보다 자신을 더 중하게 여기는 듯한 이기적인 남편의 모습에 서운한 것은 여자인 나만 느끼는 기묘한 감정인 가 보다. 싸우기 싫어서 조용히 말을 아끼며 다녀왔다. 막상 가서 보니 엄마 혼자 온 집도 많았고, 그래도 꽤 많은 아빠들이 함께 참여했다. 한 시간 동안 이루어졌던 공개심사는 기대했던 것 과는 다르게 밋밋했다. ‘별로 준비를 안 했나?’ 싶은 생각이 들게끔 볼 것도 없었고 남편과 함께 보면서 감격할 만큼 스팩타클한 이벤트도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남편이 같이 안 오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드는 것 이다. 이런 시시한 공개심사를 보여주려고 소 고삐를 몰아세우듯 가기 싫어하는 남편을 몰아세워 왔다면 상황이 더 악화되었을 게 뻔하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서운함을 머금고 있는 내 감정에게 속삭였다.




‘그래 서운했지?

서운한 감정 너에게는 잘못이 없지만 사실 팩트는 그게 맞잖아.

남편은 태권도 공개심사를 보기 위해서 일찍 퇴근 한 것이 아니라 술 먹고 힘들어 피곤해서 집에서 쉬고 싶어 일찍 퇴근했다는 것이 사실이야.

그게 사실이고, 같이 안 가줘서 서운한 것은 그저 오늘 하루 잠깐 느끼는 내 감정이야. 서운함 너라는  감정에 마음을 빼앗겨  남편과 사사로이 싸울 뻔 했어 . 다음에도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여 팩트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겠어.

감정이 아닌 팩트에 더 집중하자.‘






모든 일이 일어난 과정을 보면 반드시 팩트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실 말이다. 하지만 그 사실과 결과를 맞닥뜨렸을 때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어렵게 만드는 것은 사사로운 감정이다.





(생각하는 힘, 스피노자의 인문학)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치우기지 마련이라고 말이다.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는 늘 예민한 감정과 정서의 문을 활짝 열어둔 채 생활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우리의 감정은 너무 쉽게 도둑맞는다는 것이다. 맞다. 내가 그랬다. 왜냐하면 밖에서 들어온 자극에 가장 먼저 노출되는 것은 이성적 판단보다는 늘 우리의 감정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





이렇게 보자면 감정은 우리 영혼의 무능력한 파수꾼입니다. 또 이 파수꾼은 정서적으로 극히 예민하여 쉽게 기뻐하고 쉽게 슬퍼합니다.

어이없게도 자신의 기쁨을 누군가에게 송두리째 도둑맞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리고는 곧 실의에 빠집니다. 삶의 의욕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칩니다.

이렇게 감정적 동요는 우리 삶의 의지에 직접적인 영행을 끼칩니다. 일견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정서적 변화가 얼마나 쉽게 그의 하루를 망쳐버리는 지를 생각해보면 아주 잘 아실 겁니다.


(생각하는 힘,스피노자의 인문학)









그래.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이성보다 감정에 이끌려 감정의 노예로 살아가는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말이구나.

나는 앞으로 감정보다는 팩트에 더 집중하는 것을 배우고 익히고 싶다. 무엇보다 이 글을 읽으며 무릎을 탁 치며 기뻐할 남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는 내 오랜 감정노동에 지칠대로 지친 직접적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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