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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핑거 Jan 11. 2023

그런날도 있지.  그래도 놓치기 싫은 것들

주부에세이) 계획, 추진, 결단.


새벽 2시 30분에 눈이 동그랗게 떠지고는 그 뒤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대로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볼까 잠시 고민이 되었다.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오후가 되면 후폭풍이 어마어마할 것 같아서 다시 눈을 붙여봐도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가수면 상태로 밤새 뒤척이다가 잠이 들어서 그런지 6시가 되어도, 7시가 되어도, 8시가 되어도 눈이 떠지질 않는다.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올려보아도 다시 따뜻한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본능의 몸짓 앞에 일어나보려는 나약한 의지는 무력하기만 하다.


‘오늘은 이비인후과 가는 날인데...

아이들 데리고 이비인후과 검진 갔다가  근처 도서관에 가기로 했는데 너무 귀찮네. 내일 갈까? 내일로 모든 일정을 미룰까?‘



이비인후과는 어차피 오늘 안가고 내일로 미루어도 어차피 가야 하는, 또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비인후과 가면서 집에 돌아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는 유명한 어린이 도서관도 아이들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 이다. 동선이 안성맞춤이다. 고민할 일이 아닌데 아침에 본의아니게 늦잠을 자고 새벽에 늘 해오던 일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자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싶어졌다. 그런데.



“아! 엄마. 오늘 엄마 이비인후과 갔다가 도서관 가기로 했지?


“ 아! 그럼 나 6학년 권장도서 목록 챙겨가서 가서 읽어봐야겠다.”


“나는 전에 엄마이비인후과 가봤었어. 그치 엄마?”


전부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해 놓았다. 수요일은 엄마 이비인후과 갔다가 근처에 있는 도서관에 가자고 말이다. 엄마는 미루고 싶었는데 뻐꾸기처럼 돌아가며 말한다. 늦잠까지 잔 엄마가 ‘오늘의 계획’을 미루기엔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져서 안되겠다 싶어 결단을 내렸다.


“가자. 이비인후과 갔다가 도서관!”







늦잠은 잤지만 내가 계획했던 시간에 집을 나설수는 있었다. 아침 먹은 설거지와 이불정리, 집안 정리 아무것도 하지 못한체 엉망이 된 집구석에 마음을 두지 않고 단호하게 아이들을 몰아서 집을 나섰다. 원래 패턴 같았으면 나는 새벽에 일어나 간단한 독서와 글쓰기와 성경필사와 성경읽기를 마치고, 부지런히 아침밥을 챙겨먹고 설거지와 이불정리, 가습기 정리, 집안 정리정돈까지 다 마친 상태여야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한체 집을 나선다. 오늘 내가 계획하고 아이들과 약속한 일과를 이루기 위해서. 그래야 내일을 또 계획한대로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단호하게 섰다. 오늘 귀찮다고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룬다면, 물론 미룰수도 있다. 하지만 못 할만한 상황이 아닌데 미룬다면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생각하고 계획한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이비인후과 진료를 보고 ‘국제어린이도서관’에 다녀왔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소소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방학 중 도서관 나들이라는 계획을 이루었고 나는 약속된 수요일에 이비인후과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비록 오늘 하루의 루틴과 패턴은 망가졌지만 생각하고 계획한대로 일과를 마친 것에 만족했다. 계획한 시간에 집에 돌아와 부지런히 점심을 먹여 아이들 학원에 보내고 엉망이 된 집안일을, 무너진 성을 쌓아나가듯이 하나하나 완성해나간다. 이부자리정리를 하고, 빨래를 개고 널고,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쓸고 닦고 내 손길을 타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가는 살림살이들이 제자리를 찾아 나가며 빛을 낸다.






가끔은 그럴수도 있지.

나는 로보트가 아닌데, 어떻게 딱딱 정해진 틀대로 살아간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답답한데 이미 형성된 루틴이 깨어진 하루는 어쩐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다시 시작한다.

비록 새벽이 아니라 오후시간이지만 시간이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것은 놓치지 않고 있는 것...





그렇게 놓치지 않고 계속 살고 싶다.

계획적인 삶과 이루어놓은 루틴을.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건강이 가장 중요하구나.

그렇게 건강하게 놓치지 않고 계속 성장하며 나아가고 싶다.





아이들이 아니였으면 나는 그나마도 오늘 그것을 놓칠 뻔 했다. 늘 아이들 덕분에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단단한 나로 변화되어 살아가지만도,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살 이유도 없는 듯 하다. 나의 성장이 곧 나의 유익이고 아이들의 유익이 된다. 나의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들도 자란다. 나도 아이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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